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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량한 Feb 15. 2023

책을 사서 쌓아두는 이유

소설가 김영하는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고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얼핏 출판 종사자로서 판매를 장려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책을 대책 없이 사들이는 사람 특유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이 말의 절반은 동의한다. 내 방에도 책이 산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읽고 싶은 책의 전부는 아니다. 책을 사서 쌓아놓는 이유는 이 말만으로는 충분히 표현이 되지 않는다.


책을 '구매'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확보'하는 데 있다.

반드시 소유할 필요는 없다. 확보만 되면 그만이다.​


근처 도서관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절반은 확보한 셈이다. 절반이라고 한 이유는 그 책이 항상 대출 중이고 앞선 예약자가 너무 밀려 예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읽을 차례가 오면 더럽고 너덜거리고 페이지가 유실된 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책은 확보된 게 아니다. 차라리 서점에 가서 사 오는 게 낫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책을 구입한다. 가장 확실한 확보 방법이기 때문이다.



책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베스트셀러이거나 유명한 고전이라면 쉽게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책은?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세상에 나오고 그보다 더 많은 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도서관도 확보하지 못한 책은 마치 애초에 없었던 책처럼 증발되고 만다. 애초에 그 책을 구매해 확보해두었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읽을 수 없더라도 언젠가 읽기 위해 책을 확보해야 한다. 어쩌면 도서관이란 기관은 이런 개념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애서가들은 집안의 공간이 부족함을 한탄한다. 읽고 싶은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내가 읽어내는 속도는 절대로 그 양을 따라잡지 못한다. 다시금 도서관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애서가들은 자신만의 도서관을 꿈꾼다.


책 욕심을 내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신만의 긴 목록을 가지고 있을 터다. 지금 당장 확보하지 못한 책들의 이름으로 된 목록 말이다. 공간은 아낄 수 있을지 모르나 목록이 한없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책과 사랑에 빠져 도무지 헤어질 수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서관에 확보됐다고 해도 괜찮을 리 없다. 꼭 구매를 해서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산더미 같은 책의 높이는 좀 더 높아진다. 사람 사는 집인지 책을 두는 서고인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조금 허황된 욕망처럼 느껴진다.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도 같다. 저장 강박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지경이다. 이러니 우리에겐 도서관이 필요하다. 지금 확보하지 못하면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위기감이 사라져야 한다. 독자들을 위해, 국민을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낙이라곤 독서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는 대신 확보해 줘야 한다. 이런 것도 복지다. 아니 이런 게 진짜 복지다. 그게 싫다면 모든 집에 개인 도서관을 만들어주던가.


개인 도서관. 그렇다. 결국은 어떤 것도 개인 도서관에 미치지 못한다. 확보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읽고 싶을 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내 속도로 읽어내는 것에 있으니까. 온전치 못하지만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책을 확보하고, 그런 사치를 누리려고 노력한다. 이게 진짜 책을 사서 쌓아두는 이유다.



(http://blog.naver.com/alrya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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