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작가가 되고 싶어요
나는 글과 사진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글 쓰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첫 문장의 시작처럼 의도하지 않아도 글과 사진 중에 먼저 적는 것이 항상 '글'이라는 점은 분명 사진보다 글을 더 쓰고 싶다는 것을 방증한다.
글과 사진의 경중을 따져본 적도 없고 글을 쓴 시간보다 사진을 찍고 만드는 시간이 많았지만, 나를 살아가게 했던 글을 보면서 누군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만난 세상은 아름다웠지만, 글로써 만난 세상은 경이로웠다고나 할까. 사실 내게 있어서 글과 사진은 하늘과 땅, 산과 바다, 숲과 강, 당신과 나와 같이 둘 모두 존재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진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글 쓰는 작가에 이끌렸다. 사진으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알고 있지만, 글은 아직도 무엇을 쓰려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 미지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다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서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출간되는 것.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내 글에는 당신들을 사로잡을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 무엇을 아직 잘 모른다. 아마도 평생 모를 것이다. 내 생각에 한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그 책에 담긴 세상이 당신들의 삶에 관여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세상은 새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며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평화로운 바다일 수도 있고, 바다 위에 떠 다니는 썩은 잔재들을 동반해 몰아치는 비바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어떤 것이 당신의 삶에 관여한다는 것은 좋든 싫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니까. 새로운 것은 언제나 당신을 변하게 한다. 베스트셀러란 좋든 싫든 당신의 삶을 관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을 변하게 한다.
나는 감히 당신의 삶에 관여하고 싶다.
사진을 찍으면서는 내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 특히 내가 제주에 살면서 만났던 아름다운 동화 속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그 섬의 전부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곳은 아주 작은 일부분 조차도 한 권의 동화책이 되는 세상이었다.
언젠가 내게 시간이 또 허락된다면 제주의 모든 색과 모든 세상을 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제주라는 동화를 모두 담아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이 여기 있노라 보여주고 싶다. 아마도 이 바람은 평생 제주에 살면서 사진을 찍어도 이루지 못할 소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이건 확신한다.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울게 하고, 나를 살게 했던 그 세상은 당신을 웃게 하고, 당신을 울게 하고, 당신을 살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운 세상은 어쩌면 당신과 내가 같이 살아가는 동화 속 세상인 것이다.
며칠 전, 내 고향의 예술촌에서 큐레이터로 생활하는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이번에 갤러리 한 곳에 비는 기간이 생긴다고 나에게 전시회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언젠가 그녀와 내가 나눴던 대화 중 분명 그 예술촌에서 내 전시회를 열자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그녀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시회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우리가 나눴던 시간을 기억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꿈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때로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나는 그녀의 연락을 받고 바둑기사가 바둑판을 보며 다음 수를 고민하듯, 내 사진을 보며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분명 사진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보다 그 이상의 '무엇'인지 모를 글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이 수를 두는 순간 되돌릴 수 없어서일까 쉽게 답을 내지 못했다. 삶도 바둑처럼 복기가 가능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쉽게 판단을 내렸을 텐데, 아쉽게도 내게는 바둑알 하나하나가 사활을 걸고 두는 것과 같았다.
고민했던 이유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차를 타고 4시간은 족히 달려야 하는 고향으로 가 사진을 걸고 매일 방문객들을 맞이할 자신이 없었다. 또 갤러리 대관료가 무료라는 최상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인화하고 액자를 거는 게 가난하게 살기로 한 내 삶에 경제적인 부담이 되었다. 며칠 굶는 것은 익숙하지만, 돈이 부족해 방세를 미루는 것처럼 내 이기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들은 모두 비겁한 변명에 불과했다. 갤러리는 주말에 내려가 자리를 지키면 되고, 돈은 빌려서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비겁한 변명으로 전시회를 안 할 방법을 찾고 자기합리화 중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내가 용서되지 않았다. 내 게으름으로 인해 꿈을 미루려 하다니. 나 자신에게. 내 꿈에게. 나를 살게 한 모든 것들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가장 미안했던 것은 바로 '글'이었다. 글 쓰는 사진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책 보다 먼저 사진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변명이 아닌 내 꿈에 대한 배신이었다.
책은커녕 글 쓰기를 멈추지 말자 다짐하고 매일 조금씩 적어나가는 것에 불과한 내가 글보다 사진을 먼저 보여준다면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글 쓰는 사진작가가 될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비겁해지기 싫다고, 나를 배신하기 싫다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전시회라는 유혹에 흔들렸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이것이야 말로 나를 고민하게 하는 진실된 이유였다.
혹자는 비웃기 딱 좋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나를 보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바라본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다시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준 J의 말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J와 동대문 DDP에서 청년 광복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로 '꿈톡'이라는 단체가 주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J의 표정은 사랑스러운 아기를 볼 때처럼 속일 수 없는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와 함께 J의 입에서 나오는 감동의 말들은 마치 그가 꿈꾸는 자유로운 여행을 말하듯 행복해 보였다.
그 강연을 다음으로 또 한 번의 강연 소식을 들은 나는 J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J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학교를 가야 한다고 거절한 것이다. J의 미소와 그 감동의 표정을 잊지 못한 나는 한 번 더 권유해 보았다. 학교 수업 하루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J에게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J가 이렇게 말했다.
"학교를 빠지지 않겠다는 건 나와의 약속이야. 미안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안했다. J의 말은 단순한 거절의 이유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과의 약속이며 소원이었다. 순간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J가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고 멋져 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힘들었을 것이다. J는 하고 싶은 것을 참고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것은 마치 자기 스스로 내 몸의 근육을 파괴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근육은 찢어지고 다시 재생하는 과정을 거쳐 전보다 더 단단해진다. 그녀는 그 시간을 이겨내고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J의 말을 떠올리고 나 조차도 명확히 하기 힘들었던 전시회 하지 않을 이유에 대해 이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글 쓰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그냥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었다. 사진전시회보다 우선적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은 것이다. 설사 그것이 내게 다가온 전시회라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도 이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며 나의 소원인 것이다.
'나는 글 쓰는 사진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 그저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면서 끈질기게 '무엇인가' 써 내려가는 한 청춘의 소원인 것이다.
시간은 말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른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무엇이든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써 내려가든, 젊음. 이 시간은 분명 청춘에게 허락된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