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 』 , 장류진

by Minimum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중고거래 스타트업 회사에서 앱 기획자로 일 하고 있는 안나. 그녀는 클래식 마니아로 특히 조성진의 열혈팬이다. 팬클럽 채팅방에 고퀄의 조성진 사진을 올리자 누군가 감사의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안나 또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퍼센트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또 한 명의 등장인물 '거북이알'은 안나의 사무실 근처 대기업 카드사 차장이다. 회장이 직접 지시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회장의 심기를 거슬러 찍혀버린 그녀는 월급 전액을 카드 포인트로 지급받게 되는 웃지 못할 사내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녀는 포인트를 다시 현금화하기 위해 직원가로 저렴하게 새 제품을 구입하여 안나의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고거래 앱에 올려서 팔고 있다. 그녀에게는 애완 거북이를 키우는 것이 삶의 큰 낙이다.


“나도 그래요. 사무실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예를 들면 거북이라든지, 거북이 사진이라든지, 거북이 동영상이라든지.”


실제로 월급을 상품권이나 포인트로 받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은 실재가 확인되지 않은 괴담처럼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갑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하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견뎌내는 을. 어디선가 많이 듣고 본 듯한 모습이다. 안나와 거북이알은 모욕과 허탈과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면서도 성실하게 회사에서 일을 한다. 일이 주는 기쁨도 분명히 있지만 슬픔이 더 큰 것이 사실이고, 요 근래 퇴사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지만 진정한 자아실현, 낭만과 자유를 선택하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꽤나 버겁다. 월급으로 조성진의 연주회와 홍콩 여행도 갈 수 있고, 애완 거북이를 키울 수도 있기에 정체성과 보람 따위는 적당히 짓눌러가며 최선을 다하지는 않을지라도 보통 이상의 성과를 내며 묵묵히 회사를 다닌다. 그렇게 그들은 일상의 자아와 직장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기를 원한다. 전문가들은 "스스로의 정체성과 취향에 일치하지 않는 일을 거부하는 첫 번째 세대가 등장했다"라고 분석한다.

작가는 하이퍼리얼리즘이라 불릴 만큼 스타트업 회사 내의 모습을 놀라운 디테일로 보여준다. 이 짧은 소설 한 편이 SNS와 판교 테크노밸리를 들썩이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 나의 일상을 들여다봐주고 자세히 묘사해주고 공감해줄 때 우리는 무릎을 탁 치며 깊은 위로를 받는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우리는 어떤 조직 내에서 핵심인재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주변인이 될 확률이 높다. 거대한 기계의 보잘것없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사는 것 같아서 출근길에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열화와 같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소설의 제목은 '일의 슬픔'이 아니라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더군다나 슬픔보다 기쁨이 떡하니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길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함께 육교에 올랐다. 그런데 계단을 다 올라가고 나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육교가 길 건너편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다시 우리가 있던 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육교가 도로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도로와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거북이알이 내게 물었다.
“이상하네. 이걸 육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설계를 잘못한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하면 육교 아래쪽에 그늘이 생기니까 비나 햇볕을 피하라고 만들어놓은 건 아닐까요.”
“직장인들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만 있으니까 잠깐이라도 운동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조형물일 수도 있어요. 법으로 정해두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만든 것 같은 성의 없는 조형물이 건물마다 하나씩 있으니까.”
“어떡할까요?”
“다시 내려가야죠, 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 있으니까 되게 잘 보이긴 하네요.”



실제로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육교로서의 기능을 저버린 육교(?)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의아해한다. 저 멀리 다른 편으로 이어져있지 않고 같은 길을 따라 설계된 육교처럼, 두 사람은 육교의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같은 ‘을’의 편에서 서로의 애환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거북이알은 안나가 기획한 중고거래 앱을 통해 생계에 도움을 받고 클래식 마니아인 안나는 거북이알이 기획한 공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이 짧은 소설에 보내는 수많은 독자들의 열광 또한 ‘을’의 견고한 연대를 의미한다.

일이 주는 고통과 슬픔을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위로받고, 슬픔보다는 크지는 않을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일의 기쁨과 보람도 때로는 느끼며, 사회 속의 자아와 철저하게 분리된 일상의 자아를 존중하고 즐기며...

2019년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바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