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그런 게 아니야

『오래된 연장통 』 전중환

by Minimum

일상 속에는 결코 마주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SNS의 새로운 메시지나 소식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최신 뉴스를 검색한다. 검색엔진 첫 화면에 노출되는 뉴스 기사 제목들은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본질과 다른 자극적인 제목들로 우리를 유인하고 여지없이 낚인다. 한 꼭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더 자극적인 기사를 찾아 손가락을 움직인다. 시사뉴스는 정보라도 전해주니 그나마 낫다. 어느새 연예면의 가십 기사를 읽고 있다. 누가 누구와 사귀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알아봐야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그런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진다. 연예면 기사라도 단식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어느새 또 들여다보고 있는 나... 연예인들의 가십뿐만 아니라 건너 건너 들려오는 동료나 친구, 이웃집들의 내밀한 개인사 등에 대해 초연하지 못하고 궁금증이 생기는 고약하고 세속적인 심보를 탓하며 그런 얘기들이 오고간 시시한 잡담 뒤에는 언제나 뒤돌아 서서 후회를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마땅치 않은 나의 모습은 쇼핑몰에서 드러난다. 한 가정의 주부이다 보니 쇼핑몰을 갈 일이 많다. 장도 봐야 하고 가족들의 옷, 화장품 등 생필품을 사야하고 때로는 사치품도 산다. 요즈음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대형 복합쇼핑몰이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기다보니 쇼핑은 물론 지인들과의 약속, 주차 편리 등의 이유로 자주 방문을 하게 된다. 한 번은 남편과 함께 대형 쇼핑몰을 갔는데 본인은 모르는 여기저기 매장이나 물건이나 화장실 등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나를 보며 "당신, 쇼핑몰 전문가야. 하하." 라며 농담 반 진담 반 농을 던진다. 매일 할 일 없이 쇼핑만 하고 다니는 여자가 된 것 같아 살짝 민망해져 "왜 그래..."하며 괜히 남편 옆구리를 찔렀다.



그동안 마음에 쌓아두었던 위와 같은 찜찜한 자책감을 『오래된 연장통 』을 통해 덜어낼 수 있어 책을 덮은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의 조상들이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그렇게 진화하였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행동했던 거라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손길로 어깨를 툭툭 쳐준다. 저자는 우리나라 1세대 진화심리학자로 우리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과 본성에 대해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진화심리학의 이론에 근거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모든 생물은 서로 경쟁하는 유전자들 가운데 개체군 내에 가장 잘 전파되는 유전자가 계속 선택되어 마침내 복잡한 설계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유전되는 형질 가운데 그 종의 생태적 환경에서 먹이를 잘 찾거나, 포식자를 잘 피하거나, 전염병에 잘 안 걸리게 하는 등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형질이 점차 개체군 내에 널리 퍼지게 된다. 생물학적 형질처럼 인간의 마음 또한 우리의 조상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부딪혔던 여러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이 설계해 낸 수많은 다양한 심리기제들의 묶음이라는 것이다. 그 심리기제들, 즉 인간의 본성을 저자는 ‘오래된 연장통’이라고 칭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상황에 따라 꺼내어질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심리기제라는 연장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전기드릴이나 슬라이드 만능각톱처럼 고차원적이고 첨단 도구가 아니라 망치나 드라이버처럼 수백만년전부터 있어왔던 오래된 연장들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잘 풀도록 진화했다고 말한다. 약 1만 1000년 전 시작된 농경사회나 200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산업사회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진 수렵-채집생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짧은 기간이기에 인간 본성에 있어 유의미한 진화를 이루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기저에는 수백만 년 동안 사용되어 온 오래된 심리도구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문제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서야 탄생한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이 설계된 목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거나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게끔 고차원적인 목표 아래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예를 들면 주변 사람들의 얼굴 잘 구별하기, 무서운 포식자 피하기,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매력적인 이성 고르기,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 구하기, 안전한 거처에서 지내기, 자식들을 잘 키우기,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기, 배우자의 바람기 다스리기, 외적의 침입 막기, 윗사람과 좋은 관계 유지하기 등등 생존에 필요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나의 두 가지 일상의 경험으로 돌아가 보자.

첫 번째, 왜 우리는 유명인이나 이웃의 가십 또는 허구인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가?

우리는 허구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소설이나 드라마의 엔딩이나 주인공의 생사에 집착한다. 속물 같다는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거두기 힘들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유별난 집착은 진화적 적응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갖추게 된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우리의 조상은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공동체 내에 누군가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아내는 일이 번식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와 누가 사귀다 헤어지고 결혼했다 이혼했다는 애정사뿐만 아니라 권력자에 대한 소문 등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나의 진화적 성공에 보탬이 되었기 때문에 가십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자연선택은 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정보를 얻는 활동에서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게끔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게되는 이유도 그것이 우리 삶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는 허구일 지언정 주인공이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헤져나가야 함에 있어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어떻게 난관을 헤져나가는지를 핍진성을 갖춘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인생에 투영할 유용한 가르침을 얻게 해준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의 삶이나 현재 우리의 삶이 험난하고 예측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왜 여성은 남성보다 길을 찾는 능력은 뒤지지만 공간 탐지 능력은 더 뛰어난가?

진화의 역사에서 남자들은 동물 수렵을 담당하고 여자들은 식물, 과일 등의 채집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비교적 넓고 낯선 장소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동물을 잡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으며 여자는 집 근처의 특정한 장소에서 영양가 높고 맛있는 식물이나 과일을 채집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쇼핑몰과 같은 특정한 공간에서 방향을 잡고 사물의 위치를 기억하는 공간 탐지 능력은 여자가 더 뛰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들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갖가지 사물을 판별하고 그 위치를 기억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우리의 행동이나 현상들을 '다윈의 렌즈'(저자의 연재 칼럼 제목)를 통해 과학적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준다. 태생이 문과생인 나 같은 사람들은 과학의 'ㄱ'자만 나와도 거리감부터 느끼고 가까이하기를 저어한다. 내 분야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서 생소하거나 어려운 다른 학문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이끌어주는 책들이 많아서 고마운 요즈음, 영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아서 끌리지 않는 분야라 할지라도 의도적으로 한 발짝 내디뎌볼 것을 적극 권한다. '너만 아픈 게 아니야'라고 인문학이 주는 위로만큼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라며 과학이 주는 위로와 깨침도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