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 알랭 드 보통
늘 걱정과 불안 때문에 투덜거리는 나를 보다 못한 이웃집 보통 아저씨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내 방문 틈으로 쓰윽 제법 두꺼운 편지 한 통을 들이밀어 넣고 홀연히 사라졌다. 『 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이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지루한 토론 정도로 치부했었기에 별 기대 없이 펼쳐 들었는데... 상처와 불안에 떠느라 흐리멍덩하게 제 구실을 못하던 영혼을 살살살 흔들어 깨우고 토닥토닥 어루만져줄 줄이야. 보통이 소개해준 많은 철학자들 중에 단연코 눈에 띄는 철학자 한 명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에피쿠로스! 타고난 이야기꾼 보통의 입을 빌려 그의 철학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려 한다.
‘쾌락 추구에 몰두하는; 그러므로 안일함을 좋아하고, 감각적이고, 탐욕스러운’
‘Epicurean’이란 단어에 대한 옥스퍼드 영어사전 상의 뜻이다. 그는 인생의 쾌락과 행복을 중요시 생각했기에 쾌락을 금기시하고 욕망에 엄격했던 대부분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쾌락주의, 감각주의 철학자라고 하였으며 화려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편견과 오해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행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인간의 행복과 인생을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소탈하고 치열했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는 기원전 341년에 소아시아 서쪽 해안에 위치한 사모스섬에서 태어나서 14살 때부터 철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플라톤주의자나 원자론자에게 철학을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곧 기존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동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십 대 후반부터는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한다.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이다.”
" 만약 미각의 쾌락을 빼앗고, 성적 쾌락을 빼앗고, 듣는 쾌락을 빼앗고, 또 아름다운 형태를 볼 때 일어나는 달콤한 감정들을 빼앗는다면, 나는 행복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행복의 시작과 뿌리는 위(胃)의 쾌락이다. 심지어 지혜와 문화까지도 여기에 귀착된다”
그 당시에는 이토록 특이한 철학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주장했던 철학자가 없었기에 그의 사상은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철학이라는 안내자를 통해 인간의 쾌락과 행복에 닿는 길에 평생을 바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하면 “쾌락(pleasure)”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숙제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나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즉 쾌락을 얻는 어떤 삶의 방식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쾌락주의 핵심에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에 대해 직관적으로 대답하는데 우리 모두가 서툴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쾌락주의자들은 인간은 자신이 앓는 병의 원인을 모르는 병자와 같고 그렇기에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는 것처럼 영혼이 편치 않을 때 철학자들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철학은 우리의 고통을 합리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우리의 병을 치유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그와 생각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쾌락을 연구하기 위해 아테네의 멜리트지구에 커다란 집을 거처로 정하고 남들과 다른 생활 방식을 추구했다. 그들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과 상상이 난무했지만 으리으리한 집도 화려한 음식도 없는 그들의 취향을 확인하고는 모두 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피쿠로스는 합리적인 분석을 통해 삶을 쾌락적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그것들은 비록 손에 넣기는 어렵지만 비싸지는 않은 것들이었다.
1. 우정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것이고, 친구들은 우리를 알아주고 돌봄으로써 우리에게 무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들은 우리를 직업이나 지위 또는 외모 같은 세속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내면적 자아, 진정한 내 모습이다.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도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를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높은 관심과 대접을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끼리는 큰 재산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서로 사랑과 존경을 베푼다는 점에서 그는 우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2. 자유
에피쿠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그들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싫어하는 자들을 위하여 일하지 않기 위해 아테네 상업 세계에 고용되지 않는 대신 검소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생활을 이어갔다. 그들은 텃밭의 채소를 가꾸어 자급자족했기에 그들의 식탁은 호화롭지는 않았으나 풍성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보잘것 없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물질적인 기준으로 자신들을 판단하지 않았기에 걱정도 불만도 없는 자유로운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3. 사색
“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하거나 글로 쓰게 되면 그 본질을 확인할 수 있고 문제들로 인한 혼란과 고통을 줄여나갈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공동체가 널리 알려지면서 그곳에서 토론하고 사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돈, 질병, 죽음, 그리고 초자연적인 두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죽음 뒤의 망각에 대해 깨닫는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이렇게 냉정한 분석과 세속으로부터의 자발적인 고립 덕분에 그들은 번민과 고통을 피할 수 있었다.
결국 호화롭고 사치스러움의 대명사로 오해받는 에피큐리즘의 본질은 오히려 사치스러움과 부와는 동떨어진 가치들 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친구와 자유와 사색이 없는 삶은 불행할 것이며 부를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친구와 자유와 사색이 풍족한 삶은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따로 있는데도 값비싼 물건이 그 해결책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래서 값비싼 무언가를 사고 싶을 때 그것을 사는 것이 과연 옳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보통은 이야기한다. 그 욕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를 추측하고 투사해보아야 한다. 물건들은 우리가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인 차원에서 보상해주는 듯한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세상 한쪽에는 불필요한 욕망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막대한 경제력을 획득하는 사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꼭 필요한 물질적 욕구만 만족시킬 뿐 생활수준이 생존의 차원밖에 되지 않는 에피쿠로스적인 사회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후자의 사회에는 비약적인 발전과 기념비적인 사건도 없고 자원도 부족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물질적 환상과 욕망을 자극하는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고 있지만 물질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우정, 자유, 사색), 이 두 가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그 섬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