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싱거운 일상의 조각들만이 게으른 그녀를 시계추처럼 움직이게 했다. 늘 과한 감성이 현실을 질질 끌고 갔기에 그녀의 일상은 의미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지성에 대한 갈증도 활활 타오를라 치다가도 별 이유없이 스르르 불씨가 사그라들어 버렸다.
하지만 사람과 사랑에 대한 집착과 호기심만은 식을 줄을 몰랐다.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한 큰 고민 없이 만남을 시작했고 쉽게 둘만의 조그마한 울타리를 쳤다. 연애라는 이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울타리 안에서 결코 잡히지 않을 안정과 위로를 찾았다. 자신과 일상에 등을 돌린 채 상대방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기에 얼마안가 제 풀에 지쳐버렸고 시시한 이유로 애써 쳐놓은 울타리를 부수기를 반복했다. 습관처럼 곁에 있을 누군가를 원했고,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할 때는 불안함을 느꼈다.
가련한 그녀처럼 청춘은 늘 사랑에 목 마르다. 릴케는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에서 설익어 떫고 쓴 청춘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어려운 것을 향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을 향합니다...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어렵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 역시 훌륭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려우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최후의 과제이며 궁극적인 시험이자 시련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작업입니다. 다른 모든 작업은 사랑이라는 작업을 위한 준비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모든 면에서 초심자인 젊은이들은 아직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은 사랑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들의 전 존재를 다하여, 그들의 고독하고 소심하면서도 높은 곳을 향해 박동질 치는 심장의 근처로 모인 모든 힘을 쏟아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젊은이들은 그토록 빈번하게 그리고 그토록 통탄스럽게도 실수를 범합니다. 사랑이 그들에게 다가오면, 그들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자신을 내던지고 흩뿌려버립니다.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고, 질서도 잡히지 않고, 혼란스럽기만한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말입니다...그러나 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다? 이 반씩 부서진 존재이 더미를 가지고 그들의 삶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반씩 부서진 존재의 더미를 그들은 유대라고, 실제로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행복이라고 또 그들의 미래라고 부르지요. 따라서 그들 각자는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며 나아가서 앞으로 그들에게 다가올 많은 사람들을 잃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드넓은 공간과 많은 가능성을 잃는 것이며, 조용히 오가는 예감에 찬 것들을 포기하고 그 대신 결실도 없는 당혹감을 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당혹감에서 생기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약간의 구역질과 환멸과 빈곤뿐입니다...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서로의 경계를 짓지도 않고 구별하지도 않게 된 그들이,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고유성을 더 이상 지니지 못하게 된 그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들로 부터, 이미 막혀버린 고독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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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인간적인 사랑-한 없이 사려가 깊고 그윽하며, 묶고 푸는 것이 멋지고 분명한 사랑-은 우리가 지금 온갖 노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사랑을 닮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두 개 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아름다운 청춘에 이토록 지혜로운 릴케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던걸까? 상대방의 사랑의 크기를 계산하기 바빴고, 감각에만 치우친 채 금새 싫증을 느꼈으며 자신의 존재와 일상을 내던진 채 멍하니 그(그녀)만을 쳐다보다 지쳤던 날들...아무런 성찰 없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흩뿌리고(감탄이 절로 나오는 표현이다) 부서져 흩어져 버린 자신의 초라한 파편들을 부여 잡고 눈물 한번 쏟아보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 나만의 세계를 조금 더 견고히 만들기 위해 한 발자국만 앞으로 내딛었더라면 우리가 겪어야했던 아픔의 부피와 질량은 확 줄었을텐데...왜 나의 사랑, 나의 세계가 아닌 너의 사랑과 너의 세계에만 집착하며 허공에 나를 내던졌을까? 그런 모습이 보기 싫게 일상의 표면에 둥둥 떠다녔을테고 그 편린들이 뭉치고 또 뭉쳐 초라한 사랑의 끝을 앞당겼으리라. 외로움과 맞바꾼 싸구려 유대감의 댓가는 눈물과 신음 없이는 참아내기 버겁다. 릴케의 말처럼 인생의 모든 작업이 사랑이라는 작업을 위한 준비작업일진데 우리는 아름다운 젊음 뒤에 추한 영혼의 몰골을 감추고 고독이 주는 밀폐의 시간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타인에게 왈칵 빠져들었던 것이다. 소유와 집착이란 찌꺼기가 걸러진 사랑은 각자의 삶, 일과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진실한 사랑의 에너지는 상대방을 향하기 전 자신의 꼭 영혼을 통과해야 하기때문이다.
느닷없이 불혹을 맞이해버렸던 어느 날, 떡하니 기다리고 있던 우울과 불안을 피할 수 없었고 싸워야만 했다. 세속과 허영에 찌들어 있었기에 젊음을 놓아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세상에 인정 받고 싶다는 욕심 또한 놓기가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팔을 뻗어 그저 눈 앞의 책을 집어들고 닥치는대로 읽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마음 속 들끓는 생각들을 주체할 수 없어 펜을 들었다. 손에 닿았던 모든 책들이 하나의 입이 되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쌓여있는 헛된 욕심과 후회를 털어내라고 말해 주었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꼬박 40년의 세월을 낭비해야만 했다. 그제서야 나만의 작은 성을 짓기 위한 주춧돌 하나를 놓은 기분이 들었다. 겨우 얻은 깨달음을 놓지 않고 곱씹고 곱씹으며 부지런히 움직이면 어느 새 나의 작은 성벽에도 차곡차곡 벽돌이 쌓여가겠지. 몇백년을 초월하여 책을 타고 내게 날아와준 나의 스승들은 늘 가만히 고독과 아픔을 견디며 마음과 세상의 소리를 나만의 눈과 귀와 입으로 보고 듣고 말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인류는 결혼이란 인습으로 성숙하고 진실된 사랑을 묶어두려했으나 사랑의 성숙기와 결혼 적령기 싸이클은 이렇게 어긋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모두 사랑의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나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 행성을 향해 떠나는 여정이다.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을 떼지 않을 수 없는 여정이다. 나의 세계, 나의 몸과 마음이 견고하지 않으면 그 길고도 고통스런 여정을 시작할 수도 견뎌낼 수도 없다.
비바람에도 끄떡 없을 견고한 나만의 성을 짓기 위해 오늘부터 당장 읽기, 생각하기, 쓰기 딱 세가지 운동을 시작으로 마음의 근력을 단련해보자. 운동화 끈 질끈 묶고 묵묵히 세가지 벽돌을 차곡차곡 잘 쌓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릴케가 이야기했던 ‘한 없이 사려가 깊고 그윽하며, 묶고 푸는 것이 멋지고 분명한 사랑’을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문득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