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되고 싶어서 두근거렸고 뭔가가 되지 못해서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지금껏 해온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허무했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했다. 살면서 하고픈 일들은 하나같이 무모해 보였고, 당장 해야만 하는 일들은 모두 지겹기만 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매진하지 못했다. 그게 핑계라는 걸 알면서도, 내게 비겁해야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글이 좋다는 이유로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고, 책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출판편집자를 준비했고, 당장의 일자리가 필요해서 마케터가 되었다. 마케팅을 하면서 지겹고 지치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한번 정한 물길을 다른 방향으로 트는 건 쉽지 않았다. 실은 얼마든지 다른 직종으로 옮길 수 있는 나이였지만, 몇 년의 경력이 아까웠고 다시금 신입 딱지를 달기 두려웠다.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과 핑계만 가득했을 뿐이고, 변하려는 노력이나 내 인생을 제대로 살려는 설계는 부족했다. 결국 인생이라는 물살에 떠밀려갔고, 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조차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정말 하고픈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이 누구보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물론 잘 쓴다는 기준이야 명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쯤은 작가 소리를 듣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꾸준히 쓴다면 삼십 대 초반에는 등단할 수 있을 거라 말씀하셨던 전공 교수님의 격려는 전제부터 성립하지 못했고, 어쩌면 그는 내가 어영부영 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을 그때부터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 나는 허울뿐인 작가 소리가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잘 팔리든 팔리지 않든 내 책을 출간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출간 제의를 할 만한 책 한 권 쓰지 못했다. 그저 몇 년간 글 몇 자를 간간이 끄적였을 뿐이고, 책 한 권 분량을 집필할 끈기도 그만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게 글은 쓰고 싶을 때나 쓰는 취미였다. 잘 쓰지 못해서 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잘 쓰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도 이제는 희미했다. '작가'는 내가 직장 생활이 하기 싫어서 최후의 보루로 남겨둔 허황된 꿈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지금까지 내 삶이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글이 좋아서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도 시작점은 글이었는데...
다시 열심히 써보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써온 게 아까웠고, 뭐라도 되지 못한 게 억울했고, 남들에게 쓰는 척했던 게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잘하고픈 일이 있는데도, 그 일에 매진하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나는 글쓰기는 가망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의미 없이 시간만 축내는 일이라고 여겼고, 그럼에도 자꾸만 글을 써야만 하는 운명을 떠안은 사람처럼 썼다. 바닷속에서 살아가다가 물 위로 떠올라서 큰 숨을 들이쉬는 고래처럼 나는 다시는 안 쓸 것처럼 굴다가도 글쓰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글을 썼기에 힘든 순간들을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었고,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고, 나의 못난 모습을 발견하고도 후회로만 남지 않도록 스스로를 감싸주었다. 글쓰기의 세계에서 몇 번이나 좌절하고도 다시 돌아오는 습작생의 마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시작도 못하거나 끝내 그만두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지쳐서 펜을 놓으려고 할 때 함께 쓰는 사람으로서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글쓰기라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내려가는 기분이 든다면 고개를 돌려서 그 옆에 발버둥 치는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쓰고 있기에 더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