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물이라는 장르가 있다. 주인공은 화물차에 치이거나 배신을 당하는 등의 클리셰를 겪고, 과거로 돌아가서 인생을 리셋(reset)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니 치트키를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무협이라면 온갖 영약과 기연을 얻고, 드라마라면 가격이 폭등할 코인과 주식을 매수하고, 로맨스라면 떠나간 연인을 붙잡기 위해 실수를 바로잡는다. 그리하여 전생에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이루고, 지우고 싶은 잘못과 실수를 고쳐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 번쯤은 생각하고, 회귀물은 그러한 독자들의 바람을 간접 경험하게 해 준다.
다만 회귀물이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기만 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 장르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초장부터 전환점을 겪는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이번 생을 잘 살기 위해서' 거의 모든 것을 바꾼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예견된 위험에 맞서고, 위기를 같이 헤쳐나갈 동료를 찾는다. 그저 죽었다가 살아났을 뿐인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회귀물은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잡아끌 때 좋은 작품이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의 삶이 180도 바뀌기를 원하면서도, 이전 삶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로 인해 고민하고 갈등하기를 원한다.
아쉽게도, 우리의 삶에 이런 기적은 없다. 설령 2회 차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것이므로 알 수 없다. 누군가가 그 금기를 깨고 과거이자 미래를 발설하더라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게 분명하다. 오히려 그들을 엉터리 예언가나 사기꾼으로 치부할 게 분명하다. 나는 삶에 기적이 없다는 걸 믿음으로써, 인간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신은 인간에게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며, 스스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설계했을 뿐이다. 인생에서 거친 파도가 몰아닥칠 때 부서지느냐, 뚫고 나가느냐는 순전히 본인 몫이란 것이다.
글쓰기는 인생을 퇴고하는, 가장 리스크가 적은 방법이다. 우리는 읽고 생각하고 쓰면서 삶을 다시 살게 된다. 쓰는 사람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장에서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문장에서 삶의 이면을 바라보고, 은유적인 표현을 익힘으로써 삶을 너무 가볍거나 무겁게만 생각지 않게 된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로 소모되는 글쓰기와 인성함양을 겸비한 글쓰기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에게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기대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미숙한 사람들이 많은 건 애석할 따름이다. 그건 글쓰기가 어떤 경지를 뛰어넘게 해주는 치트키가 아니라, 끝없는 수양의 과정이라서 그렇다. 글쓰기는 내 인생을 더 의미 있게 설계하도록 하고,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하며, 사람이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쓰는 사람들은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하면서 거칠게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문장을 찾아내려고 애쓰면서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이른바 빌런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서 평소 말을 거칠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에게 말조심을 하라고 한다면 '네가 예민한 탓'이라고 할지 모른다. 이들은 거칠게 말하고 거칠게 살아가기에, 어떤 점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말하면 방어적으로 나오기에, 때로는 에둘러서 표현하거나 청유형으로 말해야 할 수 있다. 단순히 목소리 높여서 꾸짖는 것보다야 훨씬 신사적인 대처다. 성숙한 사람들은 미숙한 이들을 상대로 져주면서도 이기고, 결국 그들이 나를 함부로 할 수 없게끔 선을 긋는다.
글쓰기는 타인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기도 하지만, 나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로 괴로워하고, 때때로 좌절하거나 기세가 꺾여서 무너져버린다. 결국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닥치는지'를 원망하며,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이나 상처마저도 소재 삼거나, 고된 시련을 겪어낸 사람으로서 그 증표를 글로 남긴다. 글쓰기를 통해 내 상처를 더 깊게 들여다보고,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글쓰기가 내 인생의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삶의 문제를 되새김질하는 습관이 나를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성숙할지는 몰라도, 자기 파괴적인 기질 또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삶의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연습은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근육이 미세한 손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듯이. 글쓰기는 나와 세상을 냉소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어중간한 글쓰기에서 멈춰 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는 소설이나 만화 속 주인공처럼 과거의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글을 씀으로써 삶을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