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했던 모든 곳에서 호칭만으로 평등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이내 어딘가에서 부유하던 이름 하나가 떠밀려 와닿았다. 나는 한 때 '단발 여자'였고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단발 여자'다.
지난 몇 년간 평어들의 호숫가에 머물렀었다. 그들은 수어라는 손짓으로 말을,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했다. 그곳에서 나는 '단발 여자'라는 얼굴 이름을 선물 받았다. 그들의 언어로만 불리는 그곳, 평어들의 호숫가에서 기꺼이 머무를 수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생긴 셈이었다.
농인들에게는 각자의 생김새나 이름의 특징을 담아 만드는 얼굴 이름이 더 익숙했고 그 표식은 되도록 영상통화 화면에서 벗어나지 않는 곳에 위치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새 이름은 더할 나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온전한 내 이름은 듣기가 힘들다. 아기와 동행하는 모든 곳에서 나는 '어머님'이고 주변인들은 길지도 않은 내 이름을 굳이 쪼개어 부른다. 친구들은 내 이름의 가운데 자만, 우리 엄마는 내 이름의 끝 자만 부르는 식이다. 반대로 이름의 길이는 불필요한 존칭과 짝지어져 늘어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내 본질이 왜곡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딱딱한 껍질을 벗겨놓은 생밤 알맹이 같은 내 이름 세 글자는 예약, 출석, 접수, 가입 때나 들으면 충분해졌다.
그래서인지 '단발 여자'로 불리는 시간들이 좋았다. 단발 여자일 때 나는 그 어떤 역할에도 갇혀있지 않았다. 말의 높임과 낮춤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간결한 핵심과 풍부한 감정 전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존댓말의 부재가 나의 의도를 왜곡하는 일은 없었다. 예의는 존댓말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님을 그때 깨달았다. 더 공손한 표현과 진중한 눈빛, 손말을 이어가는 태도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음을 표할 수 있었다.
나는 어쩌면 다시는 오르지 못할 시소 위에 앉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단발 여자였던 그때는 맞은편에 '코 큰 남자'가 와도 '쌍꺼풀 여자'가 와도 나와 무게가 같았다. 그래서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힘 조절을 할 필요도 없었고 누구 하나 상대방을 올려다보지도 내려다보지 않았다.
말의 길이가 말의 무게와 비례하지 않음은 단지 수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평어들의 호숫가에 들르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지면 어떨까. 평어들이 뛰노는 곳이 자그마한 호수가 아니라 드넓은 바다라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