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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 Dec 17. 2017

네 개의 기념상을 보며 걷는 길

Paseo de los Heroes

오늘은 티후아나의 중심부를 잇는 길을 걷는다.

길 이름은 Paseo de los Heroes (영웅들의 길)으로, 

네 개의 로터리마다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잠시 이곳에 살 때, 매일 차를 지날 때마다 "무슨 조각상이지? 왜 저기 있지?" 하고 궁금해했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사람도, 지나가던 사람도 모두 모르는 분위기였고, 인터넷을 뒤져봐도 속 시원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걸어보기로 한다.

영웅들의 길이라 불리는 길을.


처음 시작은 Monumento Mexico라고 불리는 조각상이 있는 사거리이다.

왼편엔 Cecut (문화, 예술회관) 그 건너편엔 규모가 꽤 큰 쇼핑몰 Plaza de Rio, 또 맞은편엔 여러 소도매 가게들이 모여있는데 그 한가운데 이 조각상이 우뚝 솟아 있다.


Monumento Mexico 


이 조각상은 한때는 고철, 가위, 멕시코의 M이라고도 불렸었다.

어떤 사람은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를 잇는 게 티후아나라는 뜻으로 두 조각상이 맞물려있는 것일 거라고도 추측했지만, 공식적으로 얻은 답변은 다음과 같다.


멕시코의 조각가 Ángela Gurría가 민족의 Mestizaje (혼혈) 를 표현한 작품으로,  

작품명은 Monumento Mexico.  

Zona Rio 동네가 처음 생길 때 기념비로 세워졌다는 것.



(출저 : 페이스북 Yoamotijuana, Foto: Omar Martínez)


티후아나 어디에서든 고개를 들어 유난히 뾰족한 이 Monumento의 끝이 보인다면 

문화, 예술 회관인 Cecut과 쇼핑몰 Plaza De Rio 근처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Cecut에서 열리는 여러 문화 전시회와 Plaza de Rio에서 파는 멕시코 현지인들의 쇼핑 아이템들은 저렴하면서도 좋은 것들이 많으니 꼭 가보길 추천한다.


십오 분가량 걷다 보니 두 번째 사거리가 나온다.

역시 동그란 로터리가 있고, 차들이 그 주위를 빙빙 돌며 무법자의 질주를 하는 모습이다.

고개를 들어보면 이번엔 누군가를 본떠 놓은 기념상이 있다.

Glorieta Cuaultemoc (콰우테모크), 

멕시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디언 추장이다.


Monumento a Cuauhtémoc


콰우테모크의 동상은 이곳 외에도 멕시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과달라 하라에서도, 멕시코 시티에서도.


한국이 이순신 장군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장군보다는 더 높은 지휘였지만. 


아주 간단히 콰우테모크의 삶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영화보다 더 슬프고 멋진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매우 짧고 강한.

결국 적에 의해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기예

콰우테모크의 생을  경솔히 '비극적인 결말'이라 정의하진 않겠다.


 Aztec ('멕시카' 로도 불림)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래로 향하는 독수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맑은 눈과 온정을 지닌 침착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스페인의 침략자들이 자꾸만 Aztec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삼촌이 통치자였던 시절 그가 할 수 있는 건 분노와 다짐, 그리고 강한 준비,

적에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갈고닦는 시간뿐이었다.

삼촌이 죽고 그가 황제로 지명됐을 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적과의 대립을 선포했다. 아군은 잠시 항복하는 듯했지만 더 강해져 돌아왔다.

황제로서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Aztec 제국을 지키고 싶었던 그는 최고의 저항을 했다.

이름처럼 아래로 향하는 독수리였지만, 분명 강한 독수리였다.

결국 스페인군에 체포됐을 때,

콰우테모크는 왕국을 재건해주겠다는 그들의 거짓 약속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멕시코의 보물에 눈이 멀어 잔인한 고문을 실행했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황제로서, 멕시카 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낸 것이다.

제국의 마지막 희망,

모두가 아플 때도 강해야 했던,

스페인의 침략에도 Aztec 제국의 정신만은 온전히 지켰던 콰우테모크. 슬픈 멕시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콰우테모크가 오늘날까지도 멕시코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지켰던 Aztec 제국의 자존심과 용기 때문이지 않을까.



(참고자료 : 권중현의 역사문화 이야기 http://blog.daum.net/peterk04/8408241)


El último emperador de los Mexicas, y defensor heroico de México (멕시카 족의 마지막 황제, 멕시코의 영웅 콰우테모크)


“Todo cae por su propio peso. Por eso esperamos que hagan pronto su trabajo y digan que aquíestá Cuauhtémoc para que puedan regresar a la capital, pero con cabeza…”

                                                                       -Rubén Figueroa, ex gobernador de Guerrero-


콰우테모크에 대한 책을 더 찾아봐야지, 결심하며 멈췄던 발걸음을 뗀다.
이다음에 찾아올 조각상은 누구일까,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서.


 

Monumento Abraham Lincoln


영웅의 길 세 번째 로터리에 도착하자 더 커다란 동상이 서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다.

끊긴 쇠줄을 쥐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걸 보면,

노예해방을 이룬 그의 업적을 기억하려는 것 같고.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을 반대했던 사람이어서 이 자리에 세워진 것 같기도 하다.


 정답은 미국과 멕시코가 우정을 기념하며 서로의 위대한 대통령 조각상을 선물로 주고받은 것으로, 

티후아나에는 아브라함 링컨이, 미국 San Fransisco 주와 San Diego 주에는 멕시코의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가 세워져 있다. (베니토 후아레즈 대통령 이야기와 기념상은 언젠가 다른 곳을 여행하며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


16대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통령.

하나님을 두려워하던 대통령

옆 나라에도 조각상으로 세워져 두고두고 그 정신세계를 들려주는 대통령.


그렇다면 다음 로터리에 나올 조각상은 당연히 멕시코의 위대한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이겠지?

하고 마지막 조각상을 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Gral. Ignacio Zaragozu, 이그나시오 장군이다.


Gral. Ignacio Zaragozu


이그나시오 장군은 베니토 후아레즈 대통령 임기 시절 프랑스전에서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그저 농부들이라고, 소작 떼뿐이라고 멕시코 군부대를 무시했던 프랑스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선 위인.

그래서 1862년, 그가 푸에블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5월 5일은 멕시코의 가장 큰 국경일이다. 현재까지 멕시코의 "역사"시간에, 학생들이 만나게 되는 위대한 영웅이기도 하다.

비록 33살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 그가 보여준 용기와 용맹함은, 어쩌면 앞에서 만나본 콰우테모크와 같은 멕시코인의 뜨거운 피가 아닐까 생각한다.


푸에블라 전투를 다룬 영화 <푸에블라 대전투 1862 싱코 데 마요>도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찾아가 보시길.


이렇게 'Paseos de los Heroes'의 짧은 산책이 끝났다.

영웅의 거리를 걷다 보니 멕시코의 굵직굵직한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들의 이야기가,

살아온 날들이,

투쟁과 눈물과 땀과 사랑이 더 궁금해지는 하루다.

아는 만큼 사랑에 빠진다고 했던가.


오늘 티후아나를, 멕시코를 조금 더 마음에 담게 됐다.

내일도 걸어야겠다. 많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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