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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 Dec 01. 2017

Playas de Tijuana

태평양의 파도가 반짝이는 마을


오늘은 바다에 다녀왔다.

티후아나의 첫 바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Playas de Tijuana (티후아나의 해변, 이하 쁠라야쓰)인 곳.


보통 이런곳에 포스팅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세번 이상 그 장소를 방문하는 편이다.

처음엔 온전히 탐험을 하기 위해, 두번째는 사랑하는 사람과,

그리고 세번째는 무엇이 좋고 특별한지 체크를 하기 때문이다.


쁠라야쓰는 아마 열번도 넘게 찾은 바다이지 않을까.

그런데도 선뜻 소개하지 못한 이유는.... 이 바다의 모습이 지금 내 마음과 너무나 닮아서이다.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파도처럼 나도 무너지는 순간을 지나고 있어서.


생기와 고요함, 평온과 불안함이 공존하는 티후아나의 해변 마을.

이 바다에 마음을 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음을 열어보리라. 한참이 걸리더라도 기다려보리라.

괜히 저릿저릿한 마음을 안고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국경을 넘어 쁠라야스로 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를 넘어 처음 만나는 도시 바하 캘리포니아,

미국의 임페리얼 바다와 연결돼 있는 티후아나의 바다가 바로 Playas de Tijuana이다.

이곳은 꼭 우리나라처럼 긴장감과 신기함이 묘하게 흐르는 곳.


하지만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리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쁠라야스를 지나 Rosarito 나 Ensenada의 해변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훨씬"멕시코스러운" 관광지를 원한다면, 그래, 그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 내가 찾은 곳은 

티후아나 사람들이 애정 하는 곳,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바다 쁠라야스다.

이 곳에 오고 싶었다.

조용히 걷고, 울음을 쏟아내고 싶었다. 


멕시코와 미국의 바다를 나누는 벽. 


그렇다고 쁠라야스가 서울의 한강 공원처럼 쾌적한 산책로가 있지는 않다.

청춘과 낭만이 공존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없다.

사실 쁠라야스를 거니는 내내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 그런 시늉을 해야만 했다. 

근처에 누가 오면 빠르게 걷고 눈이 마주치면 피했다.

카메라도 속 안에 꽁꽁 감춰두고 이곳이 멕시코 인 걸 난 잘 알고 있어,라고 보호막을 치듯 태연해야 했다.

마음은 부서질 듯했지만 "난 너네 안 무서워! 난 호구가 아니다!!"라고 강해져야 했다.



오래오래 바라본 바다. (음악 : 더클래식의 "종이피아노")


홀로 찾은 바다에서도 즐거워보기

아니 즐겁지는 않더라도 무너지지는 말기

바다한테 쏟아내기

꾹꾹 내 발자국과 함께 버리고 싶은 마음 남겨놓기

시시한 어른으로 남지 않기를

겁쟁이가 되지 않기를


-오늘 바다를 찾으며 적은 다짐들-


하얀 등대 앞에는 Tijuana 라는 커다란 글씨가 사람들을 반긴다.


모래사장을 걷다 주택가로 걸어올라오면 허름한 집 몇채를 지나 예쁜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사실 티후아나 내에서 쁠라야스 동네는 부촌에 속한다.

바다 전망이 가장 좋은 대지는 대부분이 개인 소유. 또  동네를 걷다 보면 몇몇 헌 집을 제외한 다른 집들은 모두 예쁜 정원을 갖고 있었는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캘리포니아,바하캘리포니아에서 정원을 예쁘게 가꾸며 살아간다는 것이 부의 증명인걸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걸 구경하는 것도 참 재밌었다. 집 대문들도. (미국이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통일되지 않은 저마다의 대문  장식과 색깔들도 눈에 띈다) 화려하면서도 든든한, 시선을 부르면서도 절대 타인을 허용하지 않도록 굳게 닫힌 문들은 딱 멕시코다. 


 즐기고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항상 경계해야 하는 이 나라와 참 많이  닮았다.




 



하지만 조금 더 걷다 보니 역시 아쉬워졌다.

낡아빠진 건물과 새 건물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젊은이들이 머리를 맞대 오픈한 해변의 비건 카페,

그 옆엔 다 허물어져가는 판잣집,

또 그 옆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

그리고 또 허물어져가는 집.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하는 것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꼭 바다를 찾는 사람들 같다.

정확히 말해 연인들.

둘이 오면 단내가 넘치고 햇빛에 반짝이지만

실연 후 찾은 바다의 모습은, 바다도 그 사람도 너무나 검고 서슬 퍼렇다.




파도는 바다로 돌아가려는 물방울과 

세차게 해변으로 달려오는 물방울의 눈부신 축제를 보여준다.


찰나의 순간에 반짝이고 부서지고 또 거품이 되어버리는 그 쓸쓸한 아름다움이,

이곳에 있다.

그제야 알 것 같다.

이 곳이 이렇게 조촐한 이유.

어쩌면 나만 알고 있는 비밀장소로 남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저녁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걷고 싶은 산책로,

때론 홀로 이곳을 찾아 눈부신 파도를 마주하며 괴로움을 씻어내고

외로움을 토해내고 침착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곳.


집 앞에 위치한 바다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티후아나 사람들은 이 바다를 더 개발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한때는 영광의 시대도 있었겠지.

사람들도 참 많이 붐비던 곳이었을 것이다.

1960년에 세워진 투우 경기장이 그대로 보존 중인걸 보면, 쁠라야스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By Phil Konstantin (Philkon)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org)


위의 사진은 위키 백과사전에서 퍼왔는데, 경기장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티후아나의 바다가 위치해 있다.

헤이, 어디가 한국 아가씨,

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터벅터벅 자갈길을 걸어 들어갔다.  

 


Plaza Monumental de Playas de Tijuana


투우 경기장 주변엔 문을 닫은 바와 음식점들이 간판도 떼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2만 명 이상을 수용하던 한때 티후아나의 명물.

현재는 아주아주 잘 나가는 가수들의 콘서트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개장하는 곳.

큰 규모만큼 티켓을 파는 창구도 여러 개 있는데  Sombras (그늘)과 Sol (태양) 자리별로 줄을 서게 돼 있다.

그게 재밌었다.

햇빛도 그늘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예전에 이곳에 찾은 사람들은,

어쩌면 누구도 죽지 않길 바라면서 누군가가 누굴 죽이는 모습을 구경했을 것이다.

돈을 내 햇빛과 그늘이 적당한 자리를 사고 맥주를 마시고 바다 냄새를 맡으며

혼자 혹은 연인, 친구들과 이곳에 머물렀겠지.

소가 죽는 걸 보기 해 돈을 냈지만

소의 등에 칼이 하나씩 꽂힐 때마다 탄식을 내뱉었을 것이고

투우사가 다치길 바라지는 않지만 소가 그의 적을 시원하게 시원하게 갈겨줬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투우 경기도, 스포츠도, 모든 것들이 인생의 단편.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바하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당일치기의 두어 시간 코스로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티후아나의 쓸쓸한 해변과 반짝이는 파도와 커다랗지만 비어있는 오래된 투우 경기장을 보고 싶다면,

나는 어렵게 마음을 열었지만 당신은 금세 찾아올 수 있길 바란다.

 

태평양의 파도가 반짝이는 마을, Playas de Tijuana



이 날의 바다는 회색빛이었지만 그 산책의 끝에서 나는 조금 행복해졌다.

어서 당신에게 내가 본모습들을 보여줘야지, 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이런 나의 행동들이 결국 끝으로 달려가는 페달을 밟는 것 같아 나를 누르고 또 눌렀다.

일부러 느리게 걸어서라도 시간을 멈추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당신은 매일매일 달리고 있다.

붙잡고 싶지만 점점 숨이 찬다.


자기가 눈앞에 있었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손을 꼬옥 잡고.


티후아나 바다는 정말 이상해,

바다는 꼭 같이 와야 해.

같이 와야 해 우리.



Playas de Tiju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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