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안아줄 사람은 누구인가 ①

- 어린 시절, 그 씁쓸한 기억에 관하여

by 라벤더리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작은 손녀의 재롱에 사랑에 빠져 나를 금이야 옥이야 정성스레 키워주셨다. 그렇게 다섯 살을 지나 여섯 살이 되어 엄마와 언니와 셋이 함께 살게 되었다.


계절의 냄새가 바뀔 때쯤 아빠는 집에 한 번씩 와서 아빠 행세를 하고는 했다. 엄마를 때리거나, 돈을 가져가거나, 우리를 보란 듯이 잘 키우겠다며 언니와 나를 데려가 하룻밤 재우고 다시 엄마에게 돌려보내기도 했다. 철없이 어린 나는 그저 오랜만에 본 아빠가 좋고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속이 문드러지는 엄마의 속도 모른 채.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자마자 신혼여행에서부터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한 일 중에 술 먹고 때리는 건 심각한 일에 속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내연녀와 짜고 언니를 납치해 가거나, 사기를 쳐서 감옥에 두 번 다녀오기도 했다. 엄마가 부업으로 열심히 모아놓은 방세를 갑자기 집에 쳐들어와 빼앗아 가기도 했다. 엄마 명의로 빚을 잔뜩 내서 엄마는 거진 10년 동안 신용불량자로 지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자란 나에게 '아빠'는 점점 무서운 사람, 나쁜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여덟 살 때 하루아침에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살게 된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의 트럭에 짐과 몸을 싣고 엄마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지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빠와 함께 살게 된 새 집에는 새엄마가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파출부라고 소개했던 그녀는 일주일 뒤 우리를 에버랜드에 데려가 주고는 집에 돌아와 우리를 앉혀놓고 자신을 이제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시켰다. 나는 말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새엄마는 언니와 나를 친엄마로부터 분리시키고 연락도 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언니에게 핸드폰도 만들어주고, 우리 방에 컴퓨터도 놔줬는데 엄마랑 연락한 게 들키자마자 핸드폰을 부수고 컴퓨터도 빼버렸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다. 언니와 나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숨죽여 울었다.


그 이후로 나는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애정 결핍이 불러온 결과였다. 헛헛하고 텅 빈 마음을 돈으로, 남의 물건으로 채우려고 했다. 어느 날은 아빠의 지갑에 손을 대 2만 원을 빼서 내복 주머니에 넣고 방에 들어오는데, 돈이 바닥에 툭- 떨어졌고 새엄마한테 걸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맞았다.


밖에서 나는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올백을 맞아오지 않으면 새엄마한테 맞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특유의 외향적인 기질로 매번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했다. 적극적인 성격 때문에 선생님들도 나에게 그런 문제와 상처가 있는지 모르셨다. 또, 새엄마는 '반장 엄마'로서 학교에 나가 잘난 체 하기를 좋아했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발목까지 오는 새빨간 모피코트와 호피무늬 구두를 신고 외제 립스틱을 바르고 학교에 오곤 했다.


술집 여자였던 그녀는 자기 자식이 둘이나 있었는데도 집에서 도망쳐 아빠와 살림을 차렸다. 하도 술을 마셔서 위를 버린 새엄마는 밥도 안 먹고 매일 서울우유 1L를 밥 대신 마시곤 했다. 그러니 우리에게 자기도 먹지 않는 밥을 해주려니 얼마나 귀찮았을까. 지은 지 1주일 된 밥을 먹는 건 예삿일이었고, 같은 찌개를 며칠씩 먹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방학을 하면 바깥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집에서 언니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방에 틀어박혀 읽었던 책을 몇 번씩 반복해 읽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집에 있는 백과사전을 종류별로 읽고는 했다. 가장 좋아하던 시리즈는 '실과'와 '역사'였다.


새엄마가 밖에 나가면 우리는 몰래 티비를 보기도 했다. 우리 보지 말라고 일부러 콘센트를 뽑아서 감아놓고 그 모양을 기억하던 새엄마였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우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때렸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잔머리를 굴렸다. 콘센트 줄 모양을 기억해놓고, 티비를 보다가 밖에서 조그만 소리라도 나면 티비를 끄고 몇 초 만에 방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너무 오랫동안 티비를 봐서 티비가 뜨끈뜨끈해지면 또 혼이 났으므로 우리는 얼음으로 열을 식히고 물이 흐르면 닦아서 최선을 다해서 티비를 보지 않은 척했다. 그것이 우리의 유년 시절이었다.


우리를 때리는 매는 한 종류였다. 각목.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길이를 잴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해서 아빠가 만들어준 것이었는데, 그게 매가 돼버렸다. 그 각목은 늘 나의 책장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왜 그때 그걸 만들어 달라고 해서...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맞으며, 눈치 보며 지내기를 3년. 언니와 나는 갑자기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