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지옥을 벗어나게 되었다
새엄마와 지내는 동안 언니는 줄곧 왕따를 당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새엄마가 언니를 씻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머리는 일주일에 두 번만 감게 했고, 늘 숏컷을 하게 했다. 요새는 숏컷이 유행이라 여자가 짧은 머리를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15년 전 짧은 머리는 놀림감이었다. 더욱이 언니는 공학을 다녔기 때문에 그 놀림은 더욱 심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언니가 새엄마에게 맞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를 계속 훔치는 나를 새엄마에게 일러바치지 않은 것에 대한 매질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아픔에 못 이겨 이리저리 피하다가 그만 각목에 머리를 맞고 말았다. 머리가 찢어졌고, 그다음 날 친엄마에게 전화를 해 몰래 만났다고 했다. 둘은 병원으로 가서 진단서를 뗐고, 그것을 증거로 엄마는 아빠에게 양육권 소송을 걸었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나는 11살이었다. 재판이 있기 전날 언니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재판에서 엄마와 살고 싶다고 말할 것을 간청했다. 그렇다. 당시 나는 새엄마와 살기를 원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나는 새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해서 혼내고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를 실컷 때리고 나서 안아주며
"너를 사랑하니까 때리는 거야. 너희 친엄마는 다른 남자와 굴러먹느라 너희를 버렸지만, 엄마는 너희를 거뒀잖니. 이건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나를 때릴 때는
"경찰서에 가서 내가 너 때린다고 신고해봐. 그럼 나도 너 도둑년으로 신고해서 감방에 처넣을 테니까."라고 했다. 난 그게 정말 두려웠다. 감옥에 가기 싫었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매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판 전날까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재판 당일, 변호사는 언니와 나를 부모님과 분리하여 따로 상담을 진행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아빠 앞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대답해야 할까 봐 정말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와 살고 싶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라고 답했다.
재판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고, 언니와 나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구역질을 할 정도로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맞을 줄 알고 잔뜩 겁먹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때릴 리 만무하지만) 아빠는 우리를 집에 내려주고 다시 나갔다. 집에는 언니와 나 둘만 있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파티를 했다. 티비를 실컷 보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간장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시간이 점점 늦어지자 우리는 눈치껏 티비를 끄고 방에 들어가 새엄마와 아빠가 오기를 기다렸다. 늦은 저녁 집에 온 그들은 처음에는 말싸움을 하더니 나중에는 온갖 그릇과 가구를 던지고 싸웠다. 방문 뒤에서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던 언니와 나는 새엄마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뛰쳐나가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새엄마를 얼른 주무르라고 했다. 그때는 새엄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엄마 죄송해요.. 하며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제 성질에 못 견뎌 뒤로 넘어간 것이었다. 새엄마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원망을 해댔다.
아빠는 갑자기 우리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울고 불고 정신이 없던 언니와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짐을 쌌다. 사실 그 전에도 아빠가 우리를 엄마에게 보낼 것처럼 짐을 싸라고 한 적이 두어 번 있었기 때문에 짐을 평소보다 대충 쌌다(더 열심히 쌀걸..). 아빠는 언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긴 고속도로를 달려 우리를 인천에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친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를 데려가라고 했다. 엄마가 오자 아빠는 떠났다.
갑작스레, 그렇게 지옥을 벗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