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플라워

미래세대의 고전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by 신호수

고전이란 세계의 문학이나 각국 문학의 입장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비평을 이겨내고 남아서 널리 애독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을 일컫는다.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가 참 그 발단을 겪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논쟁을 빚었었다. 논쟁의 주체는 주로 학생과 도덕주의자들이었다. 어떤 논쟁? 도덕주의자들은 이 책을 금서목록이라고 주장하고, 학생들은 필독도서라 주장한다고 한다더라. 물론 글을 쓰는 나는 후자의 입장에 서있고, 내가 태어난 해에 나온 이 책을 내가 만나서 이렇게 지지할 수 있다는 건 이 책이 그 논쟁에서 승자됨을 이뤄 전래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월플라워라고 부르겠음)을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해가며 이 책을 지켜낸 이유가 뭘까. 또 내 나이와 같은 이 책 속에 내가 푹 빠져온 이유는 뭘까.

월플라워란 댄스파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춤추는 대신 홀로 벽에 기대서서 구경만하는 자를 일컫는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라 할 <<월플라워>>는 주인공 찰리가 미지의 친구에게 1년 동안 보낸 편지글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첫 편지에 찰리가 당장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등학교 생활을 두려워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찰리는 유년의 기억 속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 하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그 사건이 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기에 직접적인 학교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건 물론이다. 그 기억이 감추는 사건이 찰리를 '월플라워'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댄스파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춤추는 대신 홀로 벽에 기대서서 구경만하는 월플라워처럼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에 대해 방관자, 혹은 관찰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주인공 찰리가 편지 속에서 밝히는 자신의 이야기는 그 나이를 지나고 있거나 혹은 이미 지나온 독자들이 쉽게 공감하는 것들이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이성문제, 공부, 그리고 학내에서 벌어지는 왕따와 폭력의 문제 등 모든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야만 하는 불안정한 청소년 시기의 문제들이 공감의 눈높이에서 정면으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마약 등 우리의 현실과 다른 소재들도 등장하지만, 결국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겪게 되는 불안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선 공통의 관심사이다. 날것 그대로의 불안정한 현실을 겪으며 한 뼘씩 성장하는 찰리의 이야기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잊을 수 없는, 평생을 잊을 수 없이 내 마음 속에 박혀버린 부분은 ―구절 다시 보려고 찾아 읽다가 또 다시 울어버렸다― 가장 엔딩의 부분이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숨도 못 내며 울었고, 후에 바로 소설을 읽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설 때, 얼굴 위로 부딪쳐 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어. 그리고 동시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어.], [하지만 내가 눈물을 흘렸던 건 얼굴 위로 부딪쳐오는 바람을 맞으며 터널 속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었어. 시내를 보든 안 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어. 그것에 대해선 생각도 하질 않았어. 내가 터널 속에 서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진짜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거지. 그것만으로도 영원함을 느끼기엔 충분했거든(I feel infinite.).]

누구나 한번쯤은 겪은 경험들이 다뤄지고 있는 이 책이 나에게 더 끈덕지게 다가온 것은 내가 찰리처럼 월플라워였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긴 파티같은 건 없지만 관찰자 같은 의미로 사용해본다. 나는 솔직히 찰리처럼 내 머릿속 조차 감춰둘정도로 충격적인 아픔을 겪은 것은 아니었으나 , 반복되는 교우다툼으로 상당히 지쳐있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앓았다. 그때의 나는 모든 관계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관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꽤나 굳건하고 강했다. 그때 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아가면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지를 이악물고 다짐하는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극단적으로 말하긴 했으나 온통 이런식의 관찰은 아니었다. 나도 또래 그룹 속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입장으로 그 무리를 관찰하니 충고로 들었던 것들을 직접 보기 시작했고 그런 새로움들은 나를 생각해게 했으며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건 분명하다. 친구 관계에 의존해야하는 대다수의 청소년에서 몇몇 홀로 설 수 있는 느낌을 가진 내가 부러워하던 친구처럼 진화한 듯했다. 그렇지만 내 단상들은 마구 난립했고, 이런 혼란 속에서 불확실한 나의 자아 인식은 불완전했고 항상 불안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나보다 증오심 없고, 애정어린 눈으로 관찰하는 찰리를 보며 내가 봐왔던, 내 안경에 묻은 증오들이 닦이는 느낌이었다. 찰리가 책 끝에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깨달았을 때 나또한 내 불완전한 자아의 확인이 찰리와 함께 명확해졌다. 이 책 속 “I feel infinite." 라는 문장처럼 나도 무한함을 느꼈다.

내 애정이 충분히 묻어나겠지만 재차 강조하자면 이 책은 친구와 다름이 없다. 시기적절한 때에 읽어서 더욱이도 그랬거니와, 성인이 되어 접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왜냐, 청춘이란 누구에게나 현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 속 그 청춘이라던지 십대와 이십대 쯤이라고 단정짓기엔 너무 고깝다. 청춘이 다 지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읽혀도 그때의 나를 회상하고, 지금 그 열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헤아리기에도 충분히 좋다.

이 작품을 통해 이런 경험을 겪은 청소년이 나 뿐만일리가 없다. 그렇기에 많이 읽히고, 그 경험의 공유를 통해 우리도 분명 애정어린 시선을 찰리와 닮게 됐을 거다.

또한 이 이야기 속 내가 가장 사랑하며, 특별하게 여기고, 다른 이들도 그래주길 바라는 부분이 있다. 극 중 주인공 찰리의 좋은 친구 패트릭 말이다.

패트릭은 카리스마 있고 당당한 인물이다. 또 그는 다른 사람들까지 챙겨주는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월플라워 속 가장 멋지고 가장 자신만만하고 가장 안정적인 인물. 다른 인물들이 저의 롤모델로 삼을만한 그런 사람. 옆에 패트릭 같은 친구가 있다면 누구나 기대고 말 것이고, 월플라워인 찰리를 알아봐준 사람 또한 패트릭이다. 학창시절 동안 누군가는 나의 패트릭이었고, 나 또한 누군가의 패트릭이 되고 싶달까.

또 특별한 점은 패트릭은 게이인데, 게이인 것이 특별한 게 아니라 보통 이런 성장소설 속 나오는 ‘우울한 게이’ 캐릭터가 아닌 점이 좀 더 특별하다. 패트릭이 자신의 애인(학교 스포츠 스타랄까)과의 관계를 감추는 점이 미래세대들이 읽었을 땐 신선하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다시 뒤적이다 빠져들어 또 한바탕 눈물을 쏟은 밤을 보냈다. 이 책이 도덕주의자들에 의해 금서가 되지 않고 전래돼 출판된 해에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에게 읽혀져 그 아이의 인생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 책에 대한 나의 애정과 선한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 미래세대의 고전이라는 생각을 하며 감상문을 작성했다. 미래세대의 고전이자 필독서로 꼭 읽혀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