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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짜 신사임당 Apr 11. 2020

나는 알콜쓰레기다

( feat. 저 술 한 잔도 안 마셨는대요?)

나는 공대 출신 여자 사람이다.

뭐 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건축전공을 해서 그런지 평범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다들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줄 아는데..


사실 난... 알콜쓰레기다.


결혼 후 십 년째 술은 입에도 안 대고 있지만 나도 술은 먹어봤다.


아직까지 이해 안 되는 말이 있다면 "술이 참 달다"는 거다.

나는 쓰기만 하던데..



출처. 이태원 클라쓰 중



대학교 때는 어땠냐고?


하긴.. 나때만 해도 선배는 하늘이다.라는 둥(군대도 아니고),

술을 못 마셔도 마셔야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래서 가끔 뉴스에 신입생 사망 기사도 났었는데..


나는 대학생이 되면 술을 왕창 먹을 거라 생각했지만

체질상 술이 안 받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맛있게 먹은 안주를 다 토하게 만들고,

한 모금만 마셔도 나를 바닥과 합체되게 만들고,

얼굴에서는 피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고,

말수까지 줄어들게 하는..


술!!


그때부터였을까. 술을 안 먹고도 먹은 것처럼 노는 방법을 터득한 건..


얼마 전 유튜브에서 개그우먼 김숙의 신입시절 에피소드를 보며 공감한 적이 있다.

아마도 나도 그 못지않은 독특한 캐릭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_-





바주카포라고도 불리는 화통을 덜렁덜렁 메고 다니는..

남자들만 득시글 거리는 건축공학과에서 나는 귀하디 귀한 여자 중 하나였다. (우리 학번은 나 포함 여자가 4명)


1학년 때까지는 건축학부였어서 건축디자인, 공학과가 합쳐졌었는데,


처음 MT를 갔을 때였나~

선배들이 군기 잡는다고 얼차려를 시켰었다.


모두들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던 바로 그때!


혼자 당당히 서있었다.

(남들이 모두 Yes를 외칠 때 혼자 당당히 No라고 외치는 멋진.... 은 개뿔. 그냥 상또라이)


개념이 없었기도 했고, 대체 지들이 나를 언제 봤다고 벌을 세우는지,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에 굴복(?)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선배들과 동기들 사이에 상당한 돌아이로 찍혔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20살 된 기념으로 엄마가 머리도 노랗게 탈색해줬었는데..-_-


키는 작은 게 머리는 노랗지. 말대답하지...

표정은 저 위에 갓숙 표정이지.


함부로 건들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을 거다.


그때 선배들이 그랬었는데..

너 같은 후배가 들어와 봐야 자기들 맘을 알 거라나.



그런데 나 같은 후배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ㅋㅋ


그렇게 나는 으른이 되었다.





에피소드 1.


내가 건축기사 자격증을 따고 종합건설회사에 입사했을 때 가장 긴장되던 순간이 두 번 있었는데


그건 바로 '면접 볼 때'와 '회식'이었다.


사장님이 가장 잘하는 게 뭐냐고 하길래 '운전'이라고 답했었는데 '설마 확인하겠어'라는 생각으로 말했다.


그런데 지방 갈 일이 있다면 하루 종일 운전하게 하더라..-_-

뛰는 직원 위에 나는 사장님;;;  덜덜덜





나를 환영하던 첫 회식 때였다. 


나는 술을 못 먹는데..... 자꾸만 권하던 사장님께

"저는 비싼 술 밖에 안 먹어요" 하며 도도한 표정(강조)으로 이야기했다. 

이 때도 역시 '설마 가겠어' 하며 내던진 말이었다.


아놔...

사장님이 장소를 옮기셨다.


막내를 위해 좋은 곳으로 가겠다며...

사장님 지갑을 열게 한 최초의 막내라며.. 다들 환호했다. 

제에길..


그곳에서 나는 양주를 처음 먹어봤다.

식도가 타들어가던 그 느낌... 잊을 수 없다.. 우읍. 

다신 안 먹을 거야!!


그 후 회식 때부터는 나의 술 안 먹고 잘 놀기 스킬은 발동되었다.

으쌰 으쌰~


직원들이 다 꺼려하는(?) 사장님과 부장님의 옆 자리를 고수하며

술로 훅 보내드리고 옆에서 재롱떨며 엽기춤도 가르쳐드리고 했다.


열심히 분위기를 띄운 탓일까?


매번 웃겨 죽겠다며

"역시 정기사는 술을 먹어야 재밌어~~!!!"


네???


저 술 한 잔도 안 마셨는대요? ㅋㅋㅋ


그때의 사장님과 부장님은 잘 계시겠지?

오겡끼데쓰까~



드래곤볼


에피소드 2.


신랑이 꼭꼭 숨겨두었던 나를 친구들에게 공개하던 날이었다.

(왜.. 내가 창피했니?)


1차까지 조신하게 있던 나는 2차 노래방에서 그만.... 각성(?) 하고 말았다.

미... 미친...


신랑과 노라조의 '카레'를 열정적으로 불러드렸(?)다.

그것도 맨. 정. 신. 으.로!


그 날 처음 본 신랑 친구였는데...

나의 선곡에 신이 났는지 탬버린을 들고 합세하더군..


그렇게 우리는 잊지 못 할 첫 만남을 가졌다.


노래가 끝나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야 제수씨 술 너무 많이 먹인 거 아니냐?'


네???


저 술 한 잔도 안 마셨는대요? ㅋㅋㅋ


이때의 친구들이랑은 아직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ㅋ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매사에 늘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이다.


이만.. 미모와 유머와 지성을 겸비한 나의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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