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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Oct 06. 2022

손 가는 대로

에세이_단상

책을 읽고 싶어졌다.

꽉 채우다 못해 여백 없는 책장,

그 책장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벽.

그들을 꿈꿨는데 오늘은 그 꿈에 옥죄이고 만다.

더는 자리가 없어 먼저 읽고야 말겠다고!

마구 꺼낸 또 다른 책들이

책상 위 나란히 세 줄로 쌓여 있다.

‘언젠가 저들 중 몇몇을 알라딘에 데려다줘야겠는데...’

생각만 하고 만다.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읽어야만 하는 책> 그 책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

국내소설> 가벼운 에세이> 국외 소설>

무거운 비문학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지 않아

끝없이 뭉그적 거리고 싶은 날에는

생산적인 일을 하는 척 스스로를 속이며

책을 나열해본다.     


‘아이구, 알차다! 영롱하다!’     


하지만 먼저 읽겠다고

순서까지 정해 나열해 놓은 보람 없이

당장 급한 책부터 펼친다.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책은

한 계절이 지나고야 마주하게 된다.

그 아래의 나머지 책들은 더 오래,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뻘쭘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다.

노란 장판에 빛바랜 삼색 벽지로

언제고 예쁘지는 않지만 아늑한 보금자리였던,

결코 로망은 아니지만 내 취향이 묻어있는

책상과 책장, 그것들로 꽉 찬 방이

점점 못나진다.

지금 당장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정말 이 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아 싫어, 읽기 싫다고!!” 머리를 뜯으며 펼친다.

‘왠지 끝까지 맘에 안 들 것 같은데...

읽어 보나 마나 인데...’ 하는 편견을 잃지 않고.

왜 읽기 싫냐고?     


‘이번 주가 독서 모임이다, 내일이 독서 모임이다, 이제는 염치가 없으니 반납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독서가 무엇인지 답할 수 없지만 

늘 순수하게 만나 빠져들고 싶다는 기대를 한다.

목적 없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손 가는 대로 책을 집고 펼쳤는데

예측하지 못한 기쁨을 얻고 싶다.     


‘오히려 좋아!’가 아니라, ‘뭐야, 미쳤네!’ 이런 거.     


분명 나 좋자고 참여한 독서 모임이고,

부탁한 책이고, 산 책들인데,

조금만 지나면 큰 짐이 되어 억누르기 시작한다.

어쩌다 기한이라는 것에

이리도 취약한 어른이 되었을까.

순간일지라도 ‘독서’보다는 ‘책 고르기와 사기’에 순수한 기쁨을 얻을 수밖에 없겠다.     


아무리 그래도 내키는 대로 읽을 수 없다니!! 책을!!

인스타도, 유튜브도 잠시 그것을 쳐다보고 있으면

절로 온갖 것들을 눈앞으로 끌어다 놔,

한참을 보게 한다.

그중 하나 꽂히면 다행이지.

실은 별로 재밌지도 않고 피로할 따름인데

눈을 돌리기 어렵다.

그것이 나를 붙들고 있는 건지,

내가 멈추지 못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책은 분명

그것과 동떨어진 매력이 있다.

책을 펼칠 때만은,

그리고 마음대로 페이지를 넘기다, 멈추고,

다시 돌아가고, 응시하는 순간,

엄청난 자유를 느끼며 이윽고 빠져든다.

더는 머리가 아프지도 구역질을 할 것 같지도 않다.

분명 이전과 같은 속도와 집중력으로 책을 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신기하고 친숙하고 갈망하게 되는 세계를 유영한다.(그래, 유영이 어울린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살피고 집고 사고 꽂아 놓고는 했다.

그래서 억울해졌다.

책과도 이렇게 지내고 있다니...

아주 당연한, 작은 자유를 잃어버린 난

울고 싶다는 유난스러운 마음을 누르고

읽어내야 하는 책을 겨우 펼친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책꽂이에 있더라도 연이 없었을,

피차 마찬가지로 억지로 내게 끌려온 책을.

사실 이렇게 읽어 낸 대부분이 좋다.     


‘아, 이래서 독서 모임 신청했지.’      


아무 일 없는 척

다시금 과거의 나를 향해 박수를 보낸다.

난 다시 서른세 번의 소개팅을 해야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통념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처럼 자꾸 독서 모임을 신청하고,

책을 사고, 빌리고, 쌓아 놓고, 고를 것이다.

내 방은 머물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내 맘은 좋아졌다 싫어졌다 요동을 치겠지.


이 글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의 투정이다.

일이 아니라 사놓은 책조차 읽기 싫어

미리 우는 소리를 하는 사람의 투정이다.

그렇다.

마치 처음 세상이 마음 같지 않다고 느낀 아이 마냥 투정을 부리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

그럼 괜히 억울하지 않을까,

혼잣말로는 부족해

글을 쓰면서까지 속풀이를 하고 있다.


지금 나는 아주 징글징글, 진절머리 나는 사랑 이야기를,

왠지 내 맘과 같을

여성 작가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다.

(책을 추천해 달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D)

어떤 책이 읽고 싶어 미치겠다는

이상한 욕망이 흐르는 순간,

다시 살맛이 난다.

떠오르는 책들 사이에서 고민 좀 하다

손을 뻗어야겠다.

아니, 저절로 손이 가는 책을 그냥 펼치겠다.

넘겨지는 것은 두고 곱씹을 것은 곱씹고

‘됐다!’ 싶으면 내려놓고 미련 없이 잠을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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