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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Jan 12. 2023

말랑말랑한 바람

에세이_새해

이제 됐다,

눈을 감고 자려는데 도돌이표다.

되어 있는 것은 사실 없다. 없을 것이다.

어깨가, 팔이, 침대에 닿아있는 모든 면이

무겁고 빳빳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기계적으로 4초 들이마시고 4초 내쉬어 본다.

숨은 여전히 무거운데 붕 뜨고 싶어 진다.     


‘이건 오래된 매트리스의 문제인가?

무중력을 느낄 수 있다는 리클라이너에

몸을 누인다면 좀 다를까?

아니 무중력 리클라이너에서 침을 맞아도

좀처럼 긴장을 풀기 어려웠지.’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머리를 다시 무겁게 하면서

잠들기 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애써 쌕쌕거린다.


의식했던 내 몸은 언제고 긴장으로 가득했다.

살면서 그 긴장의 도움을 받았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경계할 것 투성이니까.

크고 날카로운 소리들, 이유 없는 화와 미움, 해하려는 마음, 정체 모를 사람들, 언제고 일어날 나쁜 일들, 그 수많은 일들, 그에 따라오는 팔자라는 것, 그리고 한없이 무력한 나...

느껴진 것들, 일어날 일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비가 세차게 오는 날 아빠가 운전을 하면,

출장을 떠나게 되면,

그런 날 가족들이 나 빼고 모두 외출을 해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집에 혼자 있으면,

무당에게 해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겉으로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면,

난 정말 지금에 벗어나 혼자 남게 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이어갔다.

불안해져 몸은 한층 더 빳빳해졌다.     


‘이런데 어떻게 긴장을 풀 수 있단 말이야.’     


빳빳함에 지쳐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아직 회복하기 어려운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은 건 모두 그 덕분이 아닐까,

미리 언제고 일어날 좋지 않은 것들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     

해서 풀지 못했다.

땡 하고 쉽게 풀어질 것도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지는 않더라.

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긴장감 없이 아주 말랑말랑하게 세상을 안고 쓰다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되는 대로 몸을 쭉쭉 펴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끼며 갈 길을 갔다.

기쁨도 행복도, 슬픔도 감당하지 못할 것도

그저 온전히 느꼈다.

그러다 멈추어도 주저앉아도 어쨌든 지났다.

지날수록 말랑말랑해져 세상을 폭 안고 안겼다.

세상은 그 수고로운 등을 쓰다듬다, 떠밀다,

꽉 한 번 안아주고 보냈다.

생각에 굳어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피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나 역시 모든 것에 말랑말랑하고 싶어졌다.      


춤을 추며 내 몸이 얼마나 빳빳한지 알게 되었다.

거울로 본 몸통은 힘이 잔뜩 들어가 빳빳했고 어깨와 목은 딱딱해 주물러지지도 않았다.

지레 겁을 먹어 되는대로 몸을 잔뜩 부풀린 생명체를 닮았다.

불필요한 긴장감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 부끄러웠다.

새해에는 긴장감 없이 춤을 추고 싶다.

나폴나폴 부드럽게,

느껴지는 대로 스텝을 밟고

몸을 움직이고 돌며 지나가고 싶다.

‘긴장감만 없다면 충분해!’ 하다가도

어느덧 말랑말랑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덧붙인다.

그게 욕심이 되고 집착이 될지언정  

새해에는 말랑말랑하게 세상에 안겨 있고 싶다는 바람을

소리 내어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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