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권목 Mar 06. 2023

OOO어린이를 많이 좋아하는

에세이_사랑

이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 적은 없었다.

가끔 지쳐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이날이 오면 과연 어떤 퍼포먼스를 준비해야 하는 걸까 

상상해보기는 했어도,

상상일 뿐이었다.     

그 상상에 눈물은 없었다.


독서 시간이 끝나도 책에 눈을 떼지 못하고는

겨우 읽은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책장 끝을 허겁지겁 접는 어린이들을 보며,

마지막 날에는 귀여운 책갈피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상상.

그 책갈피에 각각 어린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

다만 카드는 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연필을 바로 쥐지 못하는

악필이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께는

잠시 따뜻한 연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

따뜻한 코코아 같은 것.

어린이들은 내가 마지막인 것을 모르고

끝까지 웃으며 겨울방학을 맞이할 것이다.

나도 웃으며 살며시 교실 밖을 나갈 것이다.

이후 마지막임을 잘 아는 동료 선생님들과는 웃으며 인사를 나눌 것이다.

방학 맞이 특식으로 준비된 급식을 맛있게 먹고

그날은 수위, 미화, 급식 선생님들의 눈을

바로 마주치며 더 밝게 인사하고는

감사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덕분에 웃으며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이름표를 챙겨 학교를 떠날 것이다.

(이미 짐은 미리 챙겨 가뿐한 몸으로 떠나는 것이 포인트다.)

학교에는 원래 내가 없었던 듯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금방 어린이들과 학교를 잊고

길어도 좋고 짧아도 좋을 겨울방학을 보낼 것이다.

이런 상상에 무언가 더하고 빼날들 계속되었다.     


한 달, 2주, 1주,

어린이들과의 시간이 한 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제 그럼 평생 못 봐요?”     


방학 2주 전쯤

유독 사랑이 넘쳐 학기 초부터

나를 많이 안아주었던 '땡글이'가 물었다.

'땡글이'의 입에서 나온 ‘평생’이라는 말은 낯설었다.

그게 마음에 걸려 남은 날은 어린이들에게 

불필요한 화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싫은 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은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 종일 웃으며 응석을 받아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인내심이 폭발하여,

못 본 척하고 싶어도 지도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겨,

괜히 이전보다 단호한 목소리와 눈으로 나무랐다.

그럼에도 지도를 받은 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어린이의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총총 가볍다.

언제 혼났냐는 듯 어깨춤을 추는 것이

날개를 파닥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이지 저러다 훨훨 날아가

평생 못 볼 것 같기도 하다.

정말이지 난 이 어린이들의 선생님이 아니라 이모가 되어

오랫동안 저 날갯짓을 볼 수 있으면 바랄 게 없겠다.


조마조마했다.

학교에서는 다시 코로나가, 독감이, 장염이 돌았고

어린이들은 정말 쉽게 아팠다.


‘마지막 날 이 어린이들 모두의 얼굴을 보며 인사할 수 있을까?’

그저 장염에 걸려 며칠째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피카추'를 기다렸고

분명 창백하지만 이내 장난을 치는 '피카추'를 토닥였다.     

마지막 날은 어느새 얼마 남지 않아

저 홀로 나풀거리는 종잇장 같았다.

전날에는 어린이들과 선생님께 전할 카드를 썼다.

사실 전날 다 쓰지 못하였다.

핑계를 대자면 어린이들 말마따나

손이 너무 아파서...

일찍 출근하여 마저 6개의 카드를 쓰겠다는 다짐도 어그러졌다.

3호선 화재로 급하게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다 지각을 했다.

틈틈이 카드를 쓰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를 사서 여기저기 붙여 보다,

고개 돌려 마주친 어린이들의 얼굴이 애틋하다.

어제보다 더 애틋하다.

어린이들은 오늘 내가 마지막 날인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상상과 다른 시간이 펼쳐졌다.

이 시간에는 눈물이 포함되어 있다.

학교 방침으로 책갈피는 못주고 카드를 겨우 준비해 틈틈이 펜을 잡고 스티커를 붙인다.

이러기 싫었는데 여자 어린이, 남자 어린이

각각이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를 따로 사서 붙인다.

소란스러워질까 봐 직접 건네지는 못하고

파일에 하나씩 꽂아 넣는다.

담임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에게는

잠시 따뜻한 연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건넨다.

어린이들은 내가 마지막인 것을 너무 잘 안다.

앞에서 마주한 26명의 눈은 빨갛고

표정은 너무나 진지하여 갑자기 이상해진다.

자꾸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나온다.

우리 반 제일 '큰 애기'(말 그대로 가장 키와 덩치가 크지만 애기  같은 어린이)가 

대표로 자신들이 쓴 편지를 건넨다.

난 이미 이 편지의 존재를 알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나름 깜짝 선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아까 이것 때문에 내가 못 듣게 귓속말을 하다

담임 선생님께 혼났구나.

편지를 받고 황급히 인사를 끝냈어도

몰래 나오지 못한다.

'형광 모자'가 유독 서럽게 울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우는 '형광 모자'가 걱정되었는지

주변 어린이들은


“선생님, 형광 모자 좀 안아주고 가요!” 한다.


난 바로 '형광 모자'를 토닥이다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이 모두 교실을 나간 틈을 타 

너무 소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며 교실을 나간다.


‘아뿔싸, 마지막까지 이러기 싫은데...’ 하며.  


마지막임을 아는 동료 선생님들과는 모두 눈물, 콧물을 닦으며 인사를 나눈다.

방학 맞이 특식으로 준비된 급식을 맛있게 먹고

마지막이라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수위, 미화, 급식 선생님들의 눈을 바로 마주치며

괜히 더 밝고 크게 인사를 해본다.

나는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이름표와 경력확인서, 편지, 선물을 챙겨 학교를 떠난다.

(예상과 다르게 가뿐하지 못한 것이 포인트다.)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괜히 질척거리다

하교하는 어린이들을 만난다.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운 것이 자랑인 듯,


“선생님, 저 진짜 많이 울었어요!”를 서두로


누가 많이 울었는지 자랑을 한다.

그리고는 우다다 안겨 온다.

누군지 구분을 못한 채로

처음으로 어린이들을 꼭 안아 본다.

그 모습에 다른 반 어린이도 자기도 안아달라며 신나게 뛰어 온다.

늘 눈을 뜨지 못한 채로 등교해

같이 손을 잡고 교실로 갔던 '잠만보'도 꼭 안아준다.

학교에는 원래 내가 없었던 듯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학교는 금방 잊고

내 생애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울 8살들은

조금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길어도 좋고 짧아도 좋을 겨울방학을 보낼 것이다.     


하나하나 편지를 뜯어보았다.

생각보다 맞춤법은 많이 맞았고

글보다는 스티커와 하트와 그림이 많았다.

그림 속 나는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사실 화난 얼굴을 더 많이 보여줬던 것 같은데

웃는 얼굴로 남아 다행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조금 슬프다던,

그럼에도 응석을 부리며

끝까지 마지막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우기던,

학기 중 나와 가장 많이 복작거리던 나의 최애, 애증의 '곱슬머리'는

'곱슬머리'다운 편지를 써주었다.

그 편지는 '곱슬머리'와 함께

몇 년 더 기억될 것이다.

내 편지는 나와 함께

어린이들이 2학년이 올라가기 전까지만 기억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부린다.     



OOO를 좋아하는 곱슬머리에게     

OOO,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은 2022년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신나게 달리기를 하고

어려운 부분도 노력해서 쑥쑥 큰

OOO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어.

내년에도 그 모습 변치 말고

더욱 즐겁고 건강한 어린이가 되기를 기도할게~

2학년 생활도 의젓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단다!

행복한 겨울방학 보내렴~     

OOO 어린이를 많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작가의 이전글 어느 똑쟁이의 물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