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Jul 23. 2019

니들은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 이환- 박화영


여기 한 여고생이 있습니다.

담배 피우고 찰진 욕을 하는 걸 보니 모범생은 아니군요.

보니까 학교도 잘 안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 여학생의 집은 이미

양아치 친구들의 아지트 신세입니다. 

부모님이 늦게 오시는 걸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히 알겠군요.

주인공인 박화영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그녀는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다는 걸요

영화 내내 박화영은 병적으로

엄마라는 단어에 집착합니다.

왜 엄마에 집착할까요?

그녀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요?

영화에서는 박화영과 그녀의 엄마의 사이를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습니다.

다만 박화영이 맛(?)이 가기 전에도 

엄마와 사이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박화영이 조용했던 시절.

그녀는 엄마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엄마는 담배를 피우며 돈을 그녀에게 전해줍니다.


그 돈을 받는 박화영은,

우리가 알던 당찬 여자가 아닙니다.

뭔가 주눅 들어있고 죄송한 표정을 짓고 있죠.

아마 그녀가 무슨 사고를 쳤는데

엄마가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나 봅니다.

영화 중반부에 박화영의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걸로 퉁치자. 너한테 가족은 그러라고 있는 건데 뭐."

이 말을 들은 박화영은 대꾸하죠.

"엄마도 엄마 같은 엄마 만났으면 좋겠어."

어딘가 울컥한 표정이죠?

이에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합니다.

여기서부터 박화영은 자신의 엄마를 버렸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엄마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엄마의 모습을 내면화합니다.

박화영이 생각한 엄마는

무조건 자식을 믿고 사랑하고 

뒷바라지해주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이런 건 다 엄마가 커버 쳐주는 거라며'

은미정의 남자 친구인 영재에게 소위 개털립니다.


영재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습니다.

은미정이 잘못한 건데 박화영이 털려요.

하지만 그녀는 괜찮습니다.

엄마는 그런 존재니까요.

포주를 해주면서도 은미정을 보호하고 


은미정이 짜증 내하던 기획사 동료에게

과감하게 cc 기를 겁니다.

람머스, 아무무 부럽지 않네요. 



용돈 주는 건 일도 아니죠.

엄마잖아요.


<마더>의 김혜자 선생님도 박화영 앞에선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박화영이 얻는 건 뭘까요?


자기만족이자 타인의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기꺼이 라면을 끓여주고 

빨래를 해주고 대신 구타당하는 것도 

참고 버틸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니까요.

은미정과 인천에 놀러 갔을 때,

은미정의 남자 친구이자

일진 집단의 절대 권력인 

영재에게 잡힌 적이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박화영은 발에 땀나도록 도망가죠.

그렇게 달리다가 문득 그녀는 달리기를 멈춥니다.


깨달은 거죠.

여기서 내가 도망간다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엄마'라는

역할을 버려야 한다. 포기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돌아가 영재에게 

뒤지게 맞습니다. 


줘 터지는 거보다 무서운 건

내 역할이 없어지는 거니까요.

지금까지 쌓아온 엄마 이미지가

사라지는 거니까요.

유식한 말로 매몰 비용이 생각나는 거죠.


호구 호구 이런 호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박화영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병적인 집착 덕분에 박화영은  

은미정 대신에 강간을 당하고 맙니다.


이 강간범은 은미정과

은미정의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하죠.

이 사건에서 박화영의 잘못은 없습니다.

하지만 해달라면 다 해주는 엄마는 있었군요.


교활한 은미정은 박화영에게 눈물로 호소합니다.


엄마가 엄마라며. 엄마면  이 정도 덮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엄마잖아.




슬프게도 박화영은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버렸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이 호구 같은 인간이 조금이나마 성장해서

엄마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으면,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박화영은 "엄마"입니다.

그럴 수 없는 역할이죠. 


또다시 복장 터지는 명대사를 날려주죠.




아이 씨발. 니넨 나 없으면 어쩔뻔 봤냐?


시간이 지난 후,

박화영은 다시 조용한 성격이 된 듯합니다.

소담채라는 식당에서 일하는 거 같군요.

일하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은미정에게 연락합니다.

저녁에 양꼬치 집에서 회포를 푸는군요.


박화영은 흐뭇하게 은미정을 응시합니다.

엄마잖아요.

자기가 키웠으니까 이렇게 예쁘게 자라준 은미정이

얼마나 대견하겠습니까.

동시에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

뭐 이런 생각도 했겠죠.

하지만 이 정도 만족감은 박화영 '엄마'의

인정 욕구를 채워주지 않습니다.

은미정에게 인정받아야죠.


그래서 은미정이 가기 전에

박화영은 용기 내어 살며시 물어봅니다.





"은미정. 근데 옛날 때...

니 옛날 때... 엄마. 야 어떻게 생각하냐?"







우리의 은미정.

과감하게 손절하죠.

학창 시절 허구하게 피워대던 담배를 끊었던 그녀는

과거의 기억도 끊은 상태입니다.


"엄마? 무슨 엄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잘 계셔. 엄마는 무슨 엄마 ㅋ"


박화영의 심정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택시를 탄 은미정이 떠나죠.

그걸 박화영은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고요. 

은미정이 탄 택시는 박화영의 과거 그 자체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헌신했던, 호구처럼 당하면서도 지켜주었지만

은미정은 그런 엄마를 잊은 지 오랩니다.


잊은 게 나을 수도 있겠죠.

기억하고 있지만 어처구니없다며 코웃음 치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전부였던 은미정이자 헌신의 결과물이 떠나가고.

이를 지켜본 박화영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미 그녀는 이 난관을 그녀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있었군요.


하지만 이번엔 다를 수도 있죠.

새로운 '딸'들이 박화영을 진심으로 대해줄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매거진의 이전글 비선형적 코드. 쿠엔틴 타란티노 -펄프 픽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