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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재 Jan 05. 2022

운전대를 잡은 여자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96년생 여자의 시선으로 읽다.

면허를 땄다. 26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딴 면허였다. 남들은 수능 끝나고 딴다던데 나는 26살 끝의 끝의 끝자락인 2021년 12월 31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땄다. 어쨌든, 면허를 땄다.


지금에서야 면허를 따게 된 데에는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운전 능력을 기대하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다.


26살의 남자에게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26살의 여자에게 운전면허가 없다는 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냥 그런가보다 싶다.


이러한 인식은 얼핏 보면 남성에게만 운전 노동을 강요하는 걸로 보인다. 운전과 같이 고된 일은 남성의 몫이고, 여성은 편하게 조수석에만 앉아있으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여성은 편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도 함께 들어있다. 여성은 운전 능력을 기대하지 않는 외부의 시선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스스로 유리 천장을 만든다. '나는 운전 못해'라는 한계 말이다.


정말 여자는 운전을 못 해도 될까?




드라마에서 운전하는 여성을 본 기억은 많지 않다. 많은 경우 여자들은 운전하는 남자 옆의 조수석에 앉아, 목적지를 향해 어딘가로 실려간다.


tving <환승연애> / 채널A <하트시그널2> 중 캡쳐

이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하트시그널>, <환승연애>와 같이 비연예인의 일상을 담아내는 콘텐츠에서조차 운전은 대부분 남자의 몫이다. 하도 남자들만 운전을 해대는 탓에 '남자들은 운전 못하면 연애 프로그램에도 못나가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대한민국의 절반은 여성이니 운전자의 절반도 여성일 것이라는 산수가 대충 그려지는데, 대중매체에서는 도무지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그려진다.


'이 정도면 그냥 여자들한테 운전하지 말라는 거 아닌가?'




'김여사'라는 말이 있다. 운전에 미숙한 여성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성별을 막론하고 초보라면 누구나 운전에 미숙할 수 있다. 하지만 운전에 미숙한 '남성'을 얕잡아 부르는 말은 없으면서, 운전이 미숙한 상대가 하필 여성이면 바로 '김여사'라는 손가락질이 날아온다.


"여자들은 공간 지각 능력이 떨어져서 운전하면 안 돼" 이 말은 20살 때 내 귀로 직접 들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20살의 나는 그 말이 정말인 줄 알았다. 20년 무사고였던 우리 엄마가 허구한 날 차에 기스 내는 아빠보다 운전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우리 집의 특이한 케이스고, 범위를 넓혀 생각해보면 정말 여자가 운전을 '못하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왜일까. '김여사'라는 개념은 왜 존재하고, 20살의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왜 그럴싸하다고 느꼈을까.




나는 여기에 대중매체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는 알게 모르게 사람의 시선에 스며들어 프레임을 만든다.


대중매체에서 운전하는 여성을 ’보지‘ 못했다면 여성이 운전하는 모습도 ’상상하지‘ 못한다. 살면서 한 번도 별을 보지 못한 사람이 별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여주지 않는 것도 차별이 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이 드라마는 특별하다. 바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이하 검블유)이다.



이 드라마에서 모든 여성 등장인물은 운전을 할 수 있다. 주연인 배타미도, 차현도, 송가경 이사도 모두 운전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차도 마세라티다. 여성들이 많이 탄다고 여겨지는 작고 귀여운 모닝이 아니라 깜빡이 켜면 무조건 비켜줘야 할 것만 같은 크고 당당한 마세라티다.


이 여성들은 차 안에서 업무를 보기도 하고, 신호를 무시하는 앞 차에게 욕하면서 빵빵거리기도 한다. 운전 10년 차라 한 손 운전 정도는 거뜬하다며 다른 한 손으로 연인의 손을 잡고 애정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주인공의 대사다. 배타미(임수정 배우)가 박모건(장기용 배우)을 보기 위해 강릉까지 차를 타고 마중 나온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차를 탈 때 박모건이 배타미에게 물어본다.


"운전 내가 할까요?"


배타미가 대답한다.

"아니, 내 차는 내가!"



<검블유> 속 여성들은 차 안에서 '살아'있다. 주인공들은 더 이상 남성 옆 조수석에만 앉아있지 않다. 직접 운전대를 잡고 악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며 오직 본인의 힘과 의지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성별을 막론해 모든 존재는 본인의 힘으로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이 드라마는 그간 많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이 놓쳤던 '운전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내 소유의 자동차는 새로운 페스티벌의 입장 팔찌 같았으며 운전자에게 서울은 다른 시공간을 열어주었다. 넓어진 활동반경, 언제든 혼자 움직일 수 있다는 자유로운 감각은 스스로 강해진 느낌을 주기도 했다.

좋은 차는 여자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힘으로."

-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황선우 -




P.S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그동안 고생하며 운전해준 남성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절대 없다는 점이다. 운전은 분명 궂은 일이다.


하지만 가사 노동을 여성이 100% 전담하는 상황이 기형적이듯이, 운전 노동을 남성이 100% 전담하는 상황 또한 기형적이다. 나는 '그래서 남성들이 못됐다'라는 게 아니라 '그러니 우리 이 상황을 같이 해결하자'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차별은 더욱 역겹다. 차별을 당하는 쪽도 힘들게 하지만, 알고 보면 차별을 조장하는 쪽도 힘들게 한다.




P.S 면허 취득을 기념해, 생전 처음으로 내 두 손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시속 50km로 내달리던 순간의 감각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나는 교통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그 사건을 통해 교통사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무리 한적한 도로에서라도 차가 일정 속도를 넘어가며 달리면 '조금 빠른데' 싶은 불안감과 함께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처음으로 직접 운전하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낀 감각이 다름 아닌 '자유'였다는 점은 꽤 놀라웠다. 고작 시속 50km의 시내 주행 속도이긴 했지만, 내가 운전대를 잡은 차가 도로 위를 (아마도) 무리 없이 미끄러질 때,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오롯이 내 힘으로 갈 수 있겠다는 자유로움을 느껴졌다.


아직 연수도 받기 전인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지만, 운전은 아마도 매력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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