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플레이리스트 Track 1. 에이미 와인하우스 Valerie
27살에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어쩜.. 천재 27세 요절설을 본인이 직접 말해도 위화감이 없다. 웃자고 한 헛소리가 아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타공인 진짜 천재니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신이 이 천재를 질투했나보다. 2011년 7월 23일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어딘지 그 다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27세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되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단 두장의 앨범으로 5관왕을 차지하며 2006년 그래미를 씹어 먹어버린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다. 한물 간 모타운 스타일 소울 & 블루스, 이제 대중장르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재즈, 여기에 힙합까지 완전히 갈아넣어 1960년대 빈티지 소울을 2000년대로 소환했다. 겉도는 조합이 아니라 에이미라는 촉매제를 아낌없이 넣은 화학적 융합이다. 과장된 업스타일 헤어와 짙은 캣 아이라인도 60년대 더 로네츠를 따랐다. 하지만 촌스럽거나 올드하지 않다. 본인이 흠뻑 묻어나는 보컬과 가사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요새 작곡과 작사에 한정해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같은 곡을 어떤 색깔로 구현할 것인가가 훨씬 더 역사 깊은 크리에이티브다.
에이미의 음색에는 록이나 힙합에서 느낄만한 야성미(더 나아가 불량끼, 더더 나아가 약빤 느낌)가 있다. 기본적으로 메마르고 탁하고 음습한데, 간간히 간드러지는 비음이 특징적이고, 지를 땐 무언가를 탁 찢고 튀어나오는 듯 뾰족하고, 리듬과 박자의 강약을 걸쭉하게 갖고 놀다가 힘을 뺄 때 소리가 좍 갈라진다. 발음을 성의 없이 하는 것 같지만, 또 음절 하나를 분절해 여러 음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기도 한다. 청량감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턱대고 지르는 것만도 아니고, 소울에 견고함과 깊이가 있다. 에이미가 있었기에 (한 때 에이미의 아류라 불리던) 아델과 더피 등이 빈티지 소울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와, 약 빨았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맞다. 약물 소지 전과로 입국이 거부되어 그래미 시상식에도 참여 못한 공식 약쟁이다. '자꾸 사람들이 나 재활원 가라고 해. 아빠도 괜찮댔는데(징징)'하는 내용의 'Rehab'은 실화다. 술 취해 몸을 못 가누고, 공연 중 술기운에 가사를 잊어 버리고, 유혈 낭자한 부부싸움을 하고, 거식증으로 뼈만 남은 모습을 보이는 등 가십거리가 많아 극성맞기로 유명한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셀럽이었다.
문제는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킴 카다시안이나 설리 같은 노이즈 마케팅류의 관종이 아니라는 데 있다. 관종들은 미디어가 뭐라고 떠들든 마이웨이하거나 오히려 영악하게 이용하며 이슈몰이를 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스타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관심받고자 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비가 안 되어 있던 차에 속수무책으로 악동의 모습 위주로 속속 골라져 노출되었다. 어떤 파파라치는 가장 못생기고 되바라져보이는 모습을 담도록 일부러 에이미를 도발하기도 했다. 안그래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한 에이미는 그렇게 일파만파로 퍼지는 본인의 이미지에 다시 갉아 먹혔다. 한 번 선을 넘으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알게되면, 될대로 되라며 본격적으로 탈주하기는 순식간이다. 에이미가 대성공을 거두며 관심과 노출도가 수직상승하던 시기와 파격적인 기행을 보이기 시작한 시기가 겹치는 이유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23살 때였다. 남들이 볼 때는 착실하게 잘 지내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속은 썩어 문드러져서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살고 있었다.
시작은 파이팅 넘쳤지. 그저 1년간 주어진 미국살이 동안 영어를 완성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바로 미국애들과 친구 되기는 어려우니 한인 선호 사상[...]을 가진 중국인들과 어울린다든지, 내일 시험이어도 파티란 파티는 다 가고, 룸메가 말 못하는 나를 따분해하는 게 분명해도 꾹 참고 매일 말을 이어갔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추근덕대며 야릇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오오력하는, 한국이었다면 당장 뿌리치고 나왔을 영 아니올시다 싶은 남자애를 오늘치 영어나 하자는 심정으로 생글거리며 대하는 것. 그러고 방에 돌아오면 멍하니 있길 한참이다. 영어를 잘하려던 건 분명 내 의지로 내가 선택한 것인데, 어째 그 의지를 세울수록 다른 모든 주도권을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 때는 몰랐다. 그렇게 한 두 번 어긴 내 원칙들이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줄. 충동적인 결정이 잦아지고, 거짓말이 쌓이고, 우선순위를 세우기 힘들어졌다. 절제가 안되어 살도 엄청 불었다. 아노미였다.
돌이켜보면 자기 방어막을 세우고 뻔뻔하게 훌훌 털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색다른 경험 한 거고,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거 좀 더 쉽게 얻은거라고 생각하면 맘 편하다. 그런데 어설프게 악질은 못되가지고, 그게 자기 혐오가 되어버렸다.
그즈음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빠져 앨범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덕력 없는 내가, 어찌보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덕질했던 뮤지션이다. 절절하고 아름답지만, 사실은 자기파괴적인 에이미의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졌다. 여기 대놓고 못 이겨내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슬프다고 신나는 음악 듣는거보다 신파 영화보면서 눈물 쏙 빼는게 때로는 극효이지 않은가. 에이미는 그런 면에서 끝판왕이었다. 자기가 겪은 일 아니면 안 쓴다는데, 가사들을 보면 세상 풍파를 정통으로 맞았다. 더 찾아보니 헤로인을 권하고, 바람피고, 에이미가 성공하자 돌아오는 희대의 생양아치를 만났다. 하지만 처참히 침잠하는 자아를 음악으로 승화했다고, 그렇게 이겨냈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에이미의 음악에서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왠지 모를 살얼음판이 느껴진다.
한번은 사진작가인 지인이 고민을 털어둔 적이 있었다. 다크한 작품을 주로 작업하는 분이었는데, 인생이 안정되고 행복해질수록 작품이 힘을 잃는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할 때 마냥 즐길 수 없고, 작품을 위해 본인이 더 불행하고 다크해져야 하는걸까 고민이라고 한다. 에이미는 자기의 이야기를 파는 아티스트다. 원래도 예민한 감성을 음악으로 확장한다. 죽도록 사랑한 사람이 바람피고 모진 말을 하며 떠났는데, 나도 맞바람을 피우며 나 원래 나쁜 X잖아하고 쿨한 척 하지만 그런 자기를 혐오하는데, 그 기억을 묻어두지 못하고 기어이 음악으로 만든다. 이 음악을 만들고, 이 음악을 노래할 때 그 때의 아픔이 두고두고 계속 살아난다. 이런 일들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를 두고 아파하지만 에이미는 세상을 잃는 느낌으로 다친다. 그리고 이 솔직함을 끝까지 몰고가 기어이 악동,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또 다시 다친다.
Valerie는 에이미가 가장 좋아했던 곡이라고 한다. 그런데 Valerie는 에이미가 만든 곡이 아니라, 주톤스(Zutons)라는 영국 밴드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두 개의 커버곡 빼고는 전부 작사작곡한 걸출한 뮤지션이, 본인 노래가 아닌 것을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게 재밌다. 어찌보면 남의 곡이라 음악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이 노래는 9년 동안 내 휴대폰 컬러링이다. 두 앨범의 모든 곡을 50번 이상 들을만큼 애정했지만, 역시 Valerie가 으뜸이다. 나도 에이미처럼 일종의 방어막이 필요했나 싶다. 에이미의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에이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점점 수렁에 빠지게 되는데, Valerie는 과하게 가라앉게 되는 걸 막아주면서도 에이미 스타일이 묻어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캠든 타운은 아마도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파파라치가 가장 많이 찍힌 곳 아닐까. 집도, 단골 술집도, 술 취해 배회하던 길거리도 모두 캠든에 있다. 에이미 입맛에 꼭 맞는 보드카 칵테일이 있던 바 홀리 암즈(Hawley Arms), 기분 내키면 곧잘 즉석 라이브 공연도 선 보이던 펍 더블린 캐슬(Dublin Castle)에 가면 (대개는 거하게 취한) 그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에이미의 손때가 묻은 곳이어서인지 사후에 캠든 곳곳에 동상이며, 벽의 그라피티 등이 생겨났다.
참 에이미다운 지역이다. 빈티지하고 자유롭고 와일드하다. 특히 런던의 4대 마켓이라는 캠든 록 마켓에 가보자. 손때 묻은 잿빛 거리와 건물 위로 과감한 컬러와 조형물들이 입혀지고, 수공예품, 중고품, 옷, 길거리 음식 등이 아기자기하다기보다 펑키한 매력이 있다. 무엇하나 진부하지 않다. 여기에 뜻밖의 운하와 다리가 더해져 캠든 마켓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든다.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엉겨있고, 주말이면 주변 지하철이 마비가 되버리고는 하지만 모두가 이 정신 쏙 빼놓는 카오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바로 여기에서 Valerie를 들어보자. 거리를 즐기며 걷기에 딱 적당한 템포,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시원하고 경쾌한 음색, 혼자 길을 걷다 물 건너를 바라본다든지 쇼핑하고 염색하고 등등 가사도 묘하게 거리 풍경과 맞아 떨어지고 무엇보다 괴물이 아니라 살짝 귀여운 악동 정도의 에이미가 보여 좋다. 1집의 <Fuck me pumps> 느낌에서 좀 더 완숙하고 여유롭다. 시간은 오후가 좋겠다. 언제고 자유롭고 싶다면 자유의 거리 캠든 마켓에서 Valerie를 들어보자.
Valerie
Well sometimes I go out by myself
And I look across the water
And I think of all the things, what you're doing
And in my head I paint a picture
'Cause since I've come on home,
Well my body's been a mess
And I've missed your ginger hair
And the way you like to dress
Won't you come on over
Stop making a fool out of me
Why don't you come on over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Did you have to go to jail,
Put your house up for sale, did you get a good lawyer?
I hope you didn't catch a tan,
I hope you'll find the right man who'll fix it for ya
And are you shopping anywhere,
Changed the color of your hair, are you busy?
And did you have to pay that fine
You were dodging all the time, are you still dizzy?
'Cause since I've come on home,
Well my body's been a mess
And I've missed your ginger hair
And the way you like to dress
Won't you come on over
Stop making a fool out of me
Why don't you come on over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Well sometimes I go out by myself
And I look across the water
And I think of all the things, what you're doing
And in my head I paint a picture
'Cause since I've come on home,
Well my body's been a mess
And I've missed your ginger hair
And the way you like to dress
Won't you come on over
Stop making a fool out of me
Why don't you come on over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Valerie
Why don't come over Vale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