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Oct 05.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4-

김수필은 한수민과 공모해 펜타닐계 마약을 제조해 판매했습니다

7

 김수필은 포탈에서 뉴스를 검색했다. 잠깐씩 보도채널을 확인했고 전화로 한수민이 출근을 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김수필은 자신도 회사에 집안일로 출근을 하지 못한다고 알려놓았다. 한수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물건을 넘기러 간다는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그는 검거가 됐거나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곧 자신에게도 일이 터질 것이다. 수사진이 올 수도 있다. 압수수색도 진행된다. 이 상황에서 빠져 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한수민은 결국 입을 열 것이다. 만약 그가 검거 중에 사망한 것이라면 자신이 한수민에게 모든 혐의를 씌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를 보강할 수 있다. 그들이 이 기회를 놓칠리 없다. 김수필은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야겠다는 생각과 어떻게 하면 자신의 혐의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고회로가 마비되는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그의 상도동 아파트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벌써 경찰이 왔나 그는 체념하고 있었다. 문을 열자 검은 수트 차림의 2명이 서 있었다. 그는 경찰인지 알고 잔뜩 긴장했다.


씨팔, 벌써 왔나? 하고 체념한 상태였는데 경찰 같지는 않아 보였다. 김수필은 문을 열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무표정한 얼굴을 한 40대로 보이는 두 명이 서 있었다.

공단 사업과 관련해 긴히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만. 공단사업?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그는 갑작스런 이들의 말에 멍하니 앞을 처다 보고 있었다. 이들은 APA파견업체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들은 자신을 국가 안보실 소속이라고 밝혔다.

국가 안보실에서 저를 왜 찾습니까? 김수필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이거 뭐 사기꾼들 아냐?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들을 내보내려 했지만 이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못 믿으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저희는 김수필씨의 과거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이 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김수필은 아직도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둘은 김수필의 학생운동과 시위참여 경력 그리고 경찰에서의 업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듣자 김수필은 이들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김수필은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다. 독재정부 투쟁 경력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동료들을 밀고하고 프락치 활동한 부분까지. 이들은 나한테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수필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중 한명이 소파에 앉아 말을 꺼냈다. 수필은 아파트 거실의 불을 켰다. 갑자기 그가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 나와 앵 소리를 냈다. 안보실 요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정부에서 개성공단을 확대할 것이고 곧 언론 발표가 나올 겁니다. 기존 공단의 몇 배 규모가 되겠죠. 아직까지는 대외빕니다. 그도 개성공단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다. 새천년이 되고 사람들은 들뜨기 시작했고 몇 년 후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개성에 공단이 만들어진다는 보도를 관심 있게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그 일은 그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몸집이 좋은 쪽의 사내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2차 공단에는 여러 업체가 입주할 텐데 그 중 하나가 바이오 연구와 제약관련 업체입니다. 저희는 김수필씨가 그 회사의 대표를 맡아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김수필은 갑자기 뜬금없이 뭔 소리인가 이상한 나라의 토끼굴로 빠진 듯 했다. 그는 천천히 얘기를 계속했다.   

김수필은 한수민과 공모해 펜타닐계 마약을 제조해 판매했습니다. 경찰근무 퇴사 후 제약업체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분노조절장애로 후배직원을 폭행해 신약개발부 자재관리부서로 전출됐고요. 퇴사를 고민하다 그쪽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아마도 15년형 이상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김수필은 말이 없었다. 김수필씨를 그만두게 만들기 위해서 회사에서도 꾀나 노력한 모양인데 자재관리부에서 뭔가 일을 잘하신 모양이네요. 어떻습니까? 김수필씨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생긴 것 같은데. 어쨌든 정부를 위해서 한 일이 있으니 한 번 더 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무표정해 보였지만 뭔가 재미있다는 투였다. 풍채가 좋아서 앉아 있으니 다리는 잘 보이지 않았고 몸이 둥실 뜬 느낌을 주었다.

이건 뭐 고민 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김수필은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 말을 꺼냈다.

원하는 게 뭡니까? 그냥 제안 했을 리는 없고 뭔가 나한테 바라는 게 있을 텐데.


 3일 후 김수필은 이들이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회사에서는 경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되고 김수필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마약을 만들었던 지하연구시설과 원료 성분에 대한 재고 조사 및 관계자들 소환도 시작되었다. 김수필에 대한 소환일정도 이미 잡혀 있는 상태였다. 김수필은 원료 재고에 대한 부분이 신경 쓰였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누수처리로 용량의 차이를 줄여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만약의 경우가 존재할 수 있었다. 김수필은 알려준 장소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남산 소월길 근처의 4층의 붉은 벽돌건물이었다. 건물에 늘어 붙은 갈색의 담장이 덩굴이 인상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부출연 연구소 같은 느낌이었다. 고풍스런 건물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정문에 있었다. 귀에는 회색의 말린 선의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얼굴과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검은 선글라스가 시선을 끌었다. 문으로 들어가 금속탐지기를 통과하자 이번에는 공무원처럼 보이는 감색 폴로셔츠를 입은 사람이 그를 맞이해 4층으로 안내했다. 갈색의 두툼한 원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전형적인 관공서 형태의 탁자와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전화통화를 하던 사람은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그는 바로 용무를 꺼냈다.


김수필씨 어디까지 얘기를 들었죠? 그는 낮은 톤의 좀 갈라지는 목소리를 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매일 하는 업무라는 느낌을 주는 말투였다. 딱히 듣기 좋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중국 쓰촨 지역의 지진으로 몇 년간 의료품 원료 수입이 쉽지 않습니다. 원자재 수급불안으로 값이 치솟고 있고요. 조만간 의료약품 국내 수요가 늘어날 겁니다. 우리는 선제적으로 물량을 좀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성에 공단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이 상황을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책적으로 도움이 되겠죠.

 정책 사업인가요? 김수필이 말을 꺼냈다.

말하자면 그런 셈입니다. 아무래도 개성공단이다 보니 뭔가 정부출연 기관으로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업체가 하나 상징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죠. 민간업체도 그러면 거부감이 좀 덜 할 테고요. 김수필은 일단 그의 얘기를 들었다.

김수필씨가 당분간은 파견사장으로 업체를 맡아주셨으면 하는 거죠. 저희가 여러 사람을 알아봤는데 예전에 정부에 협력한 경험이 있더군요. 경찰에서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변신하셨고 최근에는 시끄러운 사건에도 연루되셨네요. 하하. 뭐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서로 간에 신뢰가 중요하죠.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경찰조사도 앞두고 있지만 업체의 관리를 당분간 맡게 된다면 개성으로 가야하니 그 부분은 잘 조율될 겁니다. 김수필은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 했다.   

개성으로 가게 되면 몇 년간 돌아올 수 없는 겁니까? 김수필이 말을 꺼냈다.

아닙니다. 출퇴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근버스도 시청에서 주말에 운행되니  남쪽으로 내려와도 되겠죠. 운영위원회가 있으니 자세한 정보는 그쪽에서 얻으시면 됩니다. 공단 시설이 완공됨과 동시에 기본적인 숙소는 제공됩니다. 서해산업은 착공이 빨라 거의 완성되었고 생산시설만 운영되면 됩니다. 생산 근로자들은 북측인원이 대부분이죠. 그들은 당에서 성분심사를 거친 노동자입니다. 관리감독 업무야 많이 하셨으니 그대로 진행되면 됩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생산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우리의 제약사업은 그렇게 많은 인력은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안은 보안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서 정식 협약을 위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비밀유지와 관련된 부분이죠. 저는 여기까지. 경찰조사가 며칠 안에 있을 예정이니 아마도 빠른 시간에 의향을 알려 주셔야 할 겁니다. 저희와 여기서 만난 것은 일단 아무도 모르는 게 좋겠지요. 그의 말이 끝나자 정문에 있던 남자와 다른 모양의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말을 꺼냈다.

일단 김수필씨가 운영하게 될 회사와는 수의 계약 건이 몇 개 있습니다. 회사 경영은 일임할 것입니다. 특별한 회계 상의 부정이나 문제가 없는 한 수의 계약 건 물량을 우선 처리해야하는 것이 첫 번째 이며 영업과 물품 납품과 관련한 회사의 여러 업무는 재량권이 있습니다. 물론 회계상의 문제가 없어야 하고 차후 문제가 발생할 시에는 큰 책임이 따르게 됩니다. 또 한 가지 현재 근무하던 회사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안 될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본인이 더 잘 알 것입니다. 회사에 이익과 손해는 상계해서 매년 계약갱신이 이뤄지고 회사 수익증대에 기여하신 부분은 추가보너스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딱딱한 어투로 김수필에게 확인을 받는 것처럼 물었다.

생산설비와 관련된 부분은 문제없이 진행 될 겁니다. 하던 일이 있으니 그 부분은 잘 아실테고요.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계약서로 보이는 서류를 그의 손에 건 냈다.

계약서에 명시된 회사명은 뭡니까?

이 회사는 저희가 관리하고 있는 인력파견업체입니다. 김수필씨는 그쪽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으신 것이고요. 아시겠습니까? 읽어 보시고 생각해보십시오. 기한은 3일 드리겠습니다. 우리 쪽 사람이 댁으로 찾아 갈 겁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김수필을 문 앞으로 안내했다. 김수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서해산업의 대표가 되었다.



 마약상 검거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끝났다. 정엽은 정신이 들자 자신이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은 오랫동안 인지수사를 통해서 마약대량 공급자를 현장에서 달아나던 인원 5명을 붙잡았고 이들 중 한명이 다크웹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공급하던 핵심 판매책이며 그들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기사와 뉴스가 포탈을 뒤덮었다. 기자회견이 열렸고 뉴스채널에서 이 과정을 보도하고 있었다. 자막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마약 공급책 검거’라는 타이틀이 달렸다. 팀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수사 과정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카메라가 맨 뒤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오정훈 수사 책임자를 비췄다. 언론브리핑은 계장이 맡고 있었다. 모든것을 조율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카메라 세팅이었다. 정엽은 머리에 붕대를 두르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좌측 정수리 밑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 딱지가 만져졌고 둔기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브리핑을 곁눈질 하며 서둘러 옷을 입고 경찰서로 향했다. 상황파악이 우선이었다. 진압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다는 발표를 듣고 그는 급 브레이크를 밝았다. 타이어 마찰음이 귓가를 때렸다. 뒷 차가 그의 차를 앞질러가며 정엽에게 욕설을 내 뱉었다.


 김주영 선배는 결국 순직했다. 회견장으로 들어와 정엽은 보도 자료를 읽어 보았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같이 농담을 하고 밥을 먹고 검거계획을 세우던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총이라도 쏘았더라면 하는 죄책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하지만 무능력한 자신은 그의 죽음을 방조한것이였다. 그는 기자 회견장을 걸어 나왔다. 취재진이 타고 온 차량과 기자들로 뒤엉켜 정문 앞은 혼란스러웠다. 창고 구석으로 몸을 돌려 벤치에 앉았다.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푸르렀다. 끊었던 담배를 빌려와 한 대 물었다. 공기로 연기가 피어올랐고 니코틴이 온 혈관을 따라 흘러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하나를 더 피워 땅 위에서 봉분을 만들고 꼽아 놓았다. 기자 회견이 끝나고 팀원들은 모두 서장실에 모여 있었다. 병원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휴대폰을 받지 않자 문자로 서로 돌아오라는 문자가 여럿 와 있었다. 정엽은 터덜터덜 몸을 움직여 정문으로 들어갔다.


기자회견은 마무리 되었고 기자들이 돌아가자 마약반과 강력팀도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눴다. 김주영과 정엽만이 온전히 이 자리에서 소외돼 있었다. 조서 작업이 진행 돼야 하겠지만 현장에서 검거한 인원은 4명이었고 그마저도 허드렛일을 하는 조직원에 불과했다. 검거를 목표로 했던 디텍티브 저지는 당연히 놓친 것이다. 하지만 핵심세력을 모두 잡았고 최대 공급책을 검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엽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 하지만 모두가 축제 분위기였다. 자신만 혼자 이곳에서 공중에 붕 뜬 것 같았다. 며칠 후 회식자리가 마련되고 모두들 검거를 자축하기에 바빴다. 김주영의 순직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주영의 죽음은 의도적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며칠 후 검거된 용의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심문을 하기 위해서 정엽도 조사실에 들어갔다. 김주영과 한수민의 죽음에 대한 조서가 작성되고 있었다. 잡혀온 이들은 모두 자신이 벌인 짓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장소에 있던 인원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이들이 순순히 자백을 할 리가 없었다. 조사는 오래 걸릴 수 있을 것이다. 조무래기한테 덤터기를 씌울 지도 모른다. 출소하면 한자리를 약속했겠지.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미 모든 것은 그렇게 결정됐는데. 정엽은 그렇게 생각했다. 김주영의 빈소는 삼산에 있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마약책 공급 뉴스는 이후 몇 달간 뉴스를 달궜지만 그 때 뿐이었다. 정권의 대대적인 마약 공급책 단속 정책은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작가의 이전글 [장편소설] 붉은 눈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