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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 -21-

황정우는 상담을 빌미로 가스라이팅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by proo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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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는 무당 설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효선과 한정혜에 대한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오래전 한정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부채의식이 그를 따라다녔다. 관계자 몇 명을 만나면서 조금씩 사건의 실체를 알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신효선의 행적에서 의외의 단서가 나올 수도 있다.

― 당시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 몇 명이 있기는 해요. 연락을 해 보세요.

김선호는 그녀에게서 번호를 받아 몇 명과 약속을 잡았다. 무속일을 오래 했다는 최명구와 약속을 하고 김선호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김선호는 신평리의 오래된 구옥 주택을 두드렸다.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뉘시오? 백발이 성성한 80대의 노인이었다. 한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주름이 져 있었지만 건강한 모습이었다.

― 경찰입니다. 잠깐 여쭤볼게 있어서. 그는 김선호를 안으로 안내했다.

― 요새 좀 흉흉한 소식이 많죠? 알고 계시죠?

― 아. 그 뭐 몇 명이 살해돼 죽어나갔다고 하더 구만. 빨리 안 잡고 뭐하고 있는 거요? 외노자가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확실한 건가?

― 그건 아직 모릅니다. 조금 더 확인을 해봐야 할 게 있어서요.

― 그런데 나한테 뭘 물어보려고? 차 한 잔 하시겠소? 잠시 후 툇마루로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물을 끓이고 작은 반상에 모카골드 스틱 커피를 내왔다. 최명구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셨다.

― 감사합니다. 오래전 일입니다만. ‘법당’ 소식에 대해서 아십니까? 신효선이라고...

― 누구? 아.. 그는 한참 생각을 더듬는 듯 했다. 법당이라 하니 누군지 알 것 같네. 젋은 신딸이 있었던 그 법당 말인가?

― 알고 계시는군요. 그 신효선이 사망했습니다.

― 아. 그래 아직은 나이도 얼마 안 됐을 텐데. 안타깝구만. 뭔 사연이 있었나?

―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오래전에 일을 도와주셨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 신딸이라고 하는 한정혜라고

― 음... 그렇구만.. 한민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입맛을 다시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애 이름은 모르겠고. 꽤 오래전 일인데. 법당이 굿을 할 때 두어 번 같이 일을 해줬지. 한번은 그래. 풍어제 때였고 황호민의원 아들 굿에도 내가 들어가긴 했어.

― 네? 황호민 의원과 그 아들이라면 혹시 황정우? 김선호가 물었다.

―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오래됐어. 그 애가 고등학생쯤 됐을 때 같았는데 눈빛이 형형했어. 아직도 기억나. 지금은 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혹시 황정우를 말하는 것인가요?

― 그래 그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그 애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잡귀에 씌였나? 그런 느낌은 좀 있었어. 확실하지는 않은 듯 했는데 말야. 애가 엄청 고생한 것 같더라고. 황호민이 무던히 애를 썼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 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황정우가 좀 이상하다는 것인가요?

― 아... 쯧쯧...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 경찰양반이 그렇게 상황 파악이 안돼서야 되겠나? 법당이 여기서 몇 번 굿을 하고 점을 봐줬는데 용하다고 소문이 났어. 황호민의 귀에도 들어갔지. 사실 그 양반 집안이 오래전부터 무속인들과 관련이 있었어. 무속인쪽 피가 흐르고 있는 거지. 황호민이 신내림을 받아야 했는데 막내 동생쪽으로 바꿨다고 하더라고. 그 집안이 사실 친일파 집안이라 일제 시대 몹쓸 짓을 많이 해서 안 좋은 기운이 내려 그렇다 고도 하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암튼 그렇지. 황호민이 집안의 장손이었으니 황보인이가 노년에 살려 보려했겠지. 신내림을 받고 얼마 후에 그 막내 동생이 죽었어. 사고였지. 그리고 황호민의 아들에게도 그 증상이 나타났을 거야. 황호민이 굿을 한다기에 나는 바로 눈치를 챘지. 김선호는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 그런데 그 신내림을 대신 받을 다른 누군가가 필요했던 기라. 법당이 그래서 그 애를 데려온 것 같더라고.

― 그럼 그 애가?

― 그래. 그때는 어린애였어. 열 몇 살 됐을 거야. 그 애가 참 영특해 보였어. 당시에 신내림굿을 하는데 느낌이 좀 달랐어. 영적능력이 있었을 것 같은 아이었어. 보통 그렇게 신내림을 하면 좀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그 아이는 멀쩡하더라고.

― 아니 근데 어르신. 그 무당이나 신내림이란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게 아니잖습니까? 신내림이나 신이라는 게 진짜 있는 겁니까?

― 경찰양반. 믿음이란 게 뭔가? 그럼 저들이 얘기하는 하느님은 있는 존재인건가? 그렇다면 알라는? 나도 오래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은 항상 있는 거야.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면야 알게 되는 것이고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암튼 황정우와 관련해 잘 알아봐. 그럼 뭔가 나올지도 몰라. 난 그애한테서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을 그때 좀 받았는데..... 그 애는....좀... 아무래도 너무 잔인해 보였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아니다. 확실하지도 않은......그 말을 한 뒤 최명구는 나머지 커피를 마시고 일어났다.

― 조심해서 가시게. 아참. 그 여자 아이가.... 아니다. 그는 말을 하려다 마는 듯 했다. 괜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김선호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더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의 표정을 보니 물어도 답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김선호는 잠시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사건이 혹시 황호민과 황정우와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최명구는 넌지시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그럼 한정혜 사건에 대한 빠른 수사 종결이 혹시.... 정주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반장님.

― 황호민 집안 말야. 그들과 일하다가 뭔가 사건이 될 만한 것들이 나온게 있어?

― 단서가 있어요? 한정혜 사건쯤 되는 시기에 사학재단 비리 때문에 시끄러웠고 고소 고발건이 있죠. 그것 말고는...

― 내가 지금 몇 사람 탐문하고 있는데 다음 목표가 아무래도 박현민 말처럼 그쪽 일수도 있을 듯 해서.

―예? 황호민 아니면 황정우요? 설마? 왜요?

― 강수연사건 생각해봐. 신곡에 나온 대로 살해된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난 사건이야. 강수연사건은 뭐래? 그쪽에서 조사한 것은? 구체적으로 나온게 있어?

― 그날 같이 등산을 간 사람은 두 명이 더 있어요. 총 5명이 갔죠. 강수연은 이들과 아침에 산을 나섰고 투자처 얘기를 하고 돈을 빌리려 했던 것 같아요. 그 모임이 투자 부동산 모임이니. 남편도 얼굴이 밝아졌다고 했으니 그날 얘기를 나누려 했겠죠. 그렇게 진술했고요. 산에 다 내려와서 막걸리 먹고 다들 헤어졌대요. 모임인원들이 강수연은 언제부터인지 좀 초초해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진술했어요.

― 근데 왜 다시 올라 간 거야? 산에는? 추락했다면 높은 곳에서 계곡으로 떨어진 것 아냐.

― 네 맞아요. 그걸 못 밝히고 있어요. 당일 모임에 나온 사람들하고 카톡 내역 등을 다 확인했는데 한명빼곤 진술을 다 들었는데 특이한건 없는거 같아요.

― 혹시 자살로 몰아가는 것은 아니지?

― 나올게 없으면 그렇겠죠. 강수연도 불면증으로 얼마전부터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고 하기는 해요.

― 우연은 없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 일단 사무실로 들어오세요.

김선호는 ‘선화’가 알려준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두 사람정도를 더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했다. 김선호는 무속이나 영적능력 등에 대한 것은 믿지 않았다. 미래를 내다본다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한 것들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등 그런 말은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은 많다. 그 모든 것을 미신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강력사건을 수사하면서 잠재의식이라고 불리는 꿈속 최면수사 같은 부분들까지 시도했다. 사건해결에 도움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 위법하지 않은 선에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필요하긴 하다.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따른 의심과 확신을 피해야 한다. 범인들이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 갑작스레 두통이 밀려왔다. 사무실에 들어와 정형사와 다른 반원들이 탐문한 부분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오래전 최영은과 한 반이었던 이들에 대해서 다른 형사들이 조사한 내용이다. 이들의 진술은 자신이 최영은과 친하게 지낸 적은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공나영의 진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황정우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를 하고 있었다. 황정우는 상담을 빌미로 가스라이팅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했다. 자신이 고민해서 반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최영은 이야기를 해도 방관하거나 무심한 관찰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을 여자로 보고 접근하는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는 것이다. 그녀의 진술은 황정우에 대한 가장 부정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다.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명구의 말도 떠올랐다.‘이건 또 뭔가’ , ‘ 그 아이는... 뭔가...좀.... 김선호는 자신의 차에 올랐다. 글러브박스에서 <신곡>의 해설판을 꺼냈다. 지금껏 살해된 사람들 그리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 형광펜으로 칠한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공나영은 김선호의 전화를 받자 살짝 귀찮거나 뭔가 좀 꺼림직한 반응을 보였다. 충분히 다 얘기했다는 뉘앙스였다. 내일 점심시간에 잠깐 만나자는 답변을 들었다. 그녀는 정주시의 한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ㅡ 박현민한테는 연락 없었어? 단서 같은 게 없나? 김선호는 정주현에게 물었다.

ㅡ 박현민이 보내준 CCTV 영상이요. 흐릿하게 나온 신효선이라고 하는 여자의 인상착의는 파악이 힘들어요. 입구에서 들어올 때 머플러로 얼굴을 꼼꼼하게 다 싸매고 들어오더군요. 나갈때도 마찬가지였고요. CCTV 위치를 아는 듯 했어요. 박현민에 따르면 사무실 이전 때문에 cctv를 정리하는 중이라서 녹화분이 없다는 군요. 사무실 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신효선이 이후 연락을 해 의뢰를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했습니다. 그 정도로 설마 꼼꼼할까? 그런 생각은 했었죠.


둘은 공나영을 만나러 정주시 석파 중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 문자를 보내놓고 교무실로 향했다. 정주현 주차를 하고 김선호를 따라나섰다. 학교는 구도심 외진 곳이었다. 주변에는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은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1990년대의 구도심 골목길처럼 보이는 입구를 따라 차를 몰았다. 변전소와 오래돼 보이는 음식점과 상가들을 거치자 푸른색 학교 철문이 보였다. 수위에게 인사를 하고 둘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ㅡ 선배님 따라 학교를 다시 돌다보니까 제 나이가 어려지는 듯 해요. 그건 그렇고 학교는 똑같네요. 정주현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에둘러 불만을 드러냈다. 그의 말을 듣고 김선호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ㅡ 투덜대기는......

ㅡ 아 들으셨어요? 그는 멋쩍게 웃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갑작스레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소리가 공기를 뒤덮었다. 둘은 교무실 안 휴게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짙은 감색 치마를 입고 머리를 묶은 약간 마른 듯한 외모의 한 여성이 들어왔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ㅡ 사건 때문에 두 분 다 힘 드시겠어요. 공나영은 위로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두 번째 탐문형사를 만나 귀찮을 법도 한데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ㅡ 아닙니다. 저희 일 이라서요. 다른 형사한테 했던 부분 중 저희가 추가로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 들렀습니다. 오래전 일이니 솔직히 말씀 해주셔도 됩니다. 그녀는 고민하는 듯하다 말을 꺼냈다.

ㅡ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얘기에요 지금까지. 최영은 사건도 한정혜 사건도 뭔가 뒤섞여 있네요. 그럴 것 같은 게 정혜도 소진이도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시간도 오래 지났고 최영은은 죽었다는 얘기는 들었죠.

ㅡ 최영은은 살해됐습니다. 칼에 수없이 찔려서 욕조에 얼굴이 담겨서 죽어 있었고요. 공나영은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 의외로 담담해 보였다.

ㅡ 최영은은 알아보셨겠지만 사실 질이 좋지 않은 아이였어요. 당시에도 많은 아이들을 괴롭혔고 자신이 타겟이 되지 않으려 마지못해 협조해 주는 척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최영은 때문에 전학을 간 아이도 있었죠. 소진이가 가장 괴롭힘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어느 날 전학은 정혜가 소진이를 챙기더군요. 당시 그 애는 몸도 마음도 모두 무너지기 직전이었을 거예요. 그 얘기는 아시죠?


ㅡ 네. 민소진의 아버지와 최영은의 어머니 사이의 일이었죠.

아이들도 대충은 알게 됐고. 소진이에게 신경을 써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들 정당화 하는 거죠. 그런 태도는 잘못된 것인데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날 제가 본 것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그런 모습이었어요. 공나영은 말을 계속했다. 11월 마지막 주에 형주에서는 축제를 하죠. 다들 그 모습을 보고 놀랐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 정혜가 무당의 굿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들 아 정혜는 좀 다른 모습 같은 게 있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죠. 최영은은 처음에는 정혜에게 접근하지 않는 듯 하더라고요. 이후에 둘 사이에 뭔가 갈등이 있었는지. 정혜가 굿판에 있었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 정혜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돌았는데 최영은의 괴롭힘이 있었던 듯 해요. 당시만 해도 장서실로 쓰던 예전도서관 옆에 공터가 있었어요. 쓰레기를 소각하던 곳이었고 음악동아리 연습실도 지하에 있었죠. 몇몇 선생들이 담배를 피우던 장소였어요. 김선호는 그의 얘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ㅡ 제 기억으로는 소진이를 괴롭히는 것을 정혜가 보고 최영은과 정혜간에 다툼이 있었을 거예요. 교실에서도 그랬거든요. 다들 조만간 뭔가 터지지 않을까? 했었죠.

ㅡ 그래서요 어떻게 됐습니까?

사물함 쓰레기를 버리고 정리하고 있는데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와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렸어요. 최영은이 민소진을 괴롭히고 있더군요. 한정혜도 있었고요. 저는 이걸 말려야 하나 빨리 뛰어가서 누군가한테 얘기를 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상한 비명 같은 같은 게 들렸어요. 소진이가 바닥에 앉아 있고 최영은은 정혜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순간이었어요. 정혜가 갑자기 온몸을 비트는 거예요. 벌벌 떠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팔다리가 갑작스레 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마치 줄에 맨 꼭두각시 같은 느낌이랄까. 신들린 것 같은 굿의 움직임 같은 것. 암튼 설명을 제대로 못하겠어요.


분명 남자 목소리 같은 비명소리였죠. 최영은이 당황했는지 갑자기 자리에서 얼어 있는 듯 했어요. 정혜는 쇠붙이를 집어 들었죠. 철근하고 고철을 모아두는 곳이었는데 긴 금속판 같은 것이었죠. 정혜는 그것을 집어 들고 흔들기 시작했어요. 마치 무당이 사용하는 부채나 방울같은 느낌인데. 온몸에 닿으니 피가 흘러나왔죠. 마치 굿을 하는것 같고 자해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어요.

최영은은 넋이 나가 있었고 슬슬 뒷걸음질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신의 복부와 허벅지 그리고 어께로 금속을 가져가는 것 같았고 자해 비슷한 것을 했어요. 약한 비명과 같은 소리가 났죠. 소진이가 그런 정혜를 말리는 것 같았고. 그녀는 굿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꺾꺽 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최영은은 아예 뒷걸음질 치더니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는 듯 했어요. 저도 다리가 떨려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자리에 얼어붙었죠. 정혜의 발작이 온 것 같은 상황에서 소진이는 정혜를 챙겼어요. 잠시후 정혜는 중얼거리며 자리에 주저 앉더군요. 소진이가 옷을 벗어 피를 지혈해주고 부축해서 제 옆을 지나갔어요. 전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형사님이 와서 수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한 것 뿐이에요. 제가 선생이 되니 알겠 더라고요. 황정우가 당시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황정우는 그냥 아이들을 방임해 버린 거예요. 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혜와 소진이에 대한 얘기는 처음 한 것이고요. 이후 한동안은 이들 사이의 관계가 잠잠한 것 같았어요.


ㅡ 무서운 이야기 같군요. 한정혜는 뭔가 신기 같은 것이 진짜 있었나 봅니다. 다른 곳에서도 어릴 적 그 아이가 신통하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죠.

ㅡ 그렇지도 모르죠. 제가 본 얘기를 해봐야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그 모습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빙의된 것 같은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였어요.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또 다른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죠. 김선호는 그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ㅡ 그 이후 상황은 전혀 다르게 바뀐 것 같더군요. 제 기억으로는 최영은이 더 이상 이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 황정우는 진술한 그대로인가요? 어떻습니까? 전 그 선생님한테 좋은 기억이 없어요. 제가 좀 촉이 좋은데. 뭔가 가면을 쓴 그런 느낌이었죠. 교묘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는 듯한. 그런 인상이요. 제가 진술한 부분 그대로 라고 생각해주시면 돼요. 그녀가 그 말을 마치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찾아왔다. 특별활동과 동아리와 아이들과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듯한 모양이었다. 김선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ㅡ 선생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ㅡ 네, 혹시 더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연락주세요. 그녀는 진심인 듯 한 말투였다. 둘은 차를 몰고 형주서로 향했다. 잠시동안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김선호는 오래전 한정혜 사건을 조사하며 그녀의 정신과 진료와 치료내역과 약물복용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그대로 의사의 말을 인용해 놓은게 사건이 자살로 사건이 종결되는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지성우 선배가 손을 썼을 수도 있다. 혹시 그녀의 죽음은 계획된 것인가? 설마. 김선호는 공나영의 말을 듣고 자신이 놓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더 분명해 졌다.


ㅡ 정형사 혹시 민소진 아니 민소희 변호사하고 통화해 봤어? 운전을 하며 김선호가 정주현에게 물었다.

ㅡ 주요 참고인은 아니라서 문자만 남겼는데 답은 없어요. 그는 휴대폰을 확인하며 답했다.

ㅡ 황정우하고 황호민 의원하고 학교법인에 대한 특이사항은? 시내로 들어서자 갑작스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ㅡ 황호민의원 현재 대외적으로 활동이 뜸한데 몸이 좀 안 좋은 듯해요. 반장님. 참 황호민 의원은 오래전 신장이식수술을 받았어요. 당시에 거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했고 투석도 한계였거든요. 그런데 기적처럼 공여자가 나타났어요.

ㅡ 그래?

ㅡ 민소진도 심장판막이상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고 심장이식밖에 답이 없었죠. 살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했어요. 그 때 기적처럼 심장을 공여 받아 살아났어요. 그 외에 몇 명 더 있었죠. 공여자가 젋은 여자고 건강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받았고.

ㅡ 으음..... 그거 참 희한한 일이네. 혹시 공여자 신원은 확인돼?

ㅡ 공여자는 비밀인데 확인을 했죠. 뇌사판정 엄청 까다롭잖아요. 뇌사 판정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합의가 돼야 인정되는것이고. 그 당시 사고로 뇌사에 빠진 사람이 누군지 아시잖아요.

ㅡ 뭐? 누군데? 김선호는 크게 놀랐다.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ㅡ 알고 계시는 것 아녔어요? 선배님이 수사한 뒤 자살로 종결됐잖아요.

소생 가망이 없었고 사망으로 여겨졌죠. 그 사건 이후 형주에서 큰 사건이 터졌고. 그래서 그냥 자살로 종결 짓고 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 황호민 의원이 최대 수혜자에요. 그 사람 기사회생 한 거죠.

콰르릉하는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미친 듯이 쏟아 붓고 있었다. 김선호는 차를 갓길에 세웠다. 정주현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잊고 있었냐는 투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한정혜가 공여자였지. 그걸 내가 왜 놓치고 있었지? 김선호는 그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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