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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rink Anew

프리미엄 한주 테이스팅노트
1. 남해 '꽃이 핀다'

다랭이팜 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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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서도 굽이굽이 끝자락. 험한 산에서 바다로 밀려날 듯한 곳. 보기엔 절경이나 오르내리려면 고생, 괴로운 삶의 고장. 옛날에는 배타고 나가는 것으로 부족해 급한 산비탈의 경사를 깎아서 다락논을 만들었다. 여기말로는 다랭이논.


그 다랭이논도 농업이 기계화가 되니 돈 안되는 농지라 버려지던 것을, 누군가는 이 문화와 경관을 보는 눈이 있어 살려내었다. 이른 봄엔 따뜻한 해풍을 받고 유채꽃이 피고, 그리고는 여기에 유기농쌀을 재배한다. 급한 산비탈이 농사 지을 때는 괴로운 삶이었지만 지금은 유채꽃밭에 바다까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을 만들어 준다.


꽃이 핀다는 노오란 치자꽃물이 들어 유채가 핀 계절에 특히 어울린다. 화려한 색과는 달리 술맛은 아주 담담하다. 산미도, 감미도 튀지 않고 조용히 몸을 움추린 술. 목소리 하나 내지 않고 대기하는 시종무사 같이, 조용하지만 무게감이 있어서 존재감은 확실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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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좋은 오징어 초무침이나 멸치쌈밥과 같이 하면 이 술의 진가는 확실히 드러난다. 다랭이팜 양조장에서는 '농부맛집'이라는 식당을 직영하고, 이곳이 꽃이 핀다를 마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장소이다. 봄바람, 유채밭, 새큼한 초무침과 꽃이 핀다 한 잔. 이곳에 가면 집에 돌아오기 싫어진다.


여기, 이 때, 이 술을, 이 사람들과.


'이런 순간을 누리려고 사람은 태어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날.


<꽃이 핀다 테이스팅노트>

산미:중하

감미:하

탁도:2/7

탄산:중하


<코멘트>

담담한 술이 색으로 멋을 부렸다. 다랭이마을의 봄바람에 유채꽃밭을 바라보며 마시는 '꽃이 핀다'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멋을 낸다. 꼭 여기서, 이렇게 마시라는 술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때에 마셔야 한다면 하고 생각해본다면, 이 술의 담담함과 노란 색은 그렇게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담담한은 숙성을 좀더 오래 하면 어느 방향으론가 피어날 성질이다. 지금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봉우리 상태랄까. 이 봉우리를 피워서 내 놓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디캔팅을 한다든지, 오래 열어놓고 기다린다든지 하는 간질이는 방법만으론 피워내기 부족한 잠재력이 느껴진다.


8.0+/10


잠재력이 다 피어난다면 점수는 좀 올라가겠지만 일단은 이 정도. 지금도 드라이하고 조용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어필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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