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내딛는 걸음마다 삐끗한 여행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냥 몸만 오면 다 알아서 해준단다.
그런데 막상 임박해서는 집안사정으로 그 기간에 집에 있어야 한다네. 급히 취소를 알아봤으나 저가상품의 특징, 취소는 거의 환불이 안 된다.
나름 프로 여행러라 그렇다면 뭐 혼자라도 가지, 하고 길을 나섰다. 숙소도 예약하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법도 알아두고, 간단한 베트남 말 몇 마디도 연습해두고...
여행에 있어 첫날은 계획을 제법 하는 편이다. 첫날을 잘 넘기면 대체로 점점 쉬워진다.
베트남 첫날의 계획은 이렇다.
저가항공을 타고 12시 20분(오전)에 호치민 도착. 시간이 애매하니 숙박비도 아낄 겸 첫날은 공항에서 지새고 다음날 아침부터 돌아다니자. 베트남의 모닝커피도 마시고 반미나 쌀국수를 먹으며 오전을 보내고 숙소 체크인, 그리곤 시내 명소를 되는대로 다녀보다가 저녁은 좀 거하게 먹는 것, 정도가 계획이었다. 아, 물론, 마사지를 빼놓진 않았지.
짐을 찾는 것과 입국심사 통과하는 것은 순조로왔다. 너무 순조로와서 시간이 별로 안 흘렀다는 게 밤 샐 사람으로선 좀 뭐했다고 할 정도.
계획대로 공항에서 밤을 새기 전에 일단 공항 구조부터 파악을 하자 하고 돌아보려는데, 여긴 출국장으로 나와서 송영객들 대기석이 외부에 있다. 그러니까 나는 덜렁덜렁 공항 바깥으로 덜컥 나왔는데, 베트남 공항이 그나마 환율이 낫다길래 베트남 돈은 한 푼도 없이 온 것. 심지어 다시 공항에 들어가려니 제지를 한다. 여행객인데 환전을 해야한다고 여권까지 보여주고 간신히 다시 입장. 그러니까 밖에서 에어컨도 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입장이 안 되는 것이구나.
들어온 김에 커피든 뭐든 한 잔 하려니 또 공항 안의 가게들은 다 닫았고, 그냥 어디 자리 잡아서 쭈구리고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자 싶어서 일단 충전기 꽂을 곳을 확보했다. 좀 휑 한 복도 한가운데인데 사람은 별로 없다.
서울에서 입고 온 겨울옷(2월이었으니까)을 갈아입는 동안 모기에게 한 방 물렸다. 그리고 의외인 것은 밤에도 30도 가까운 온도인데 공항 안에 에어컨이 없다. 그 순간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것.
공항에서 밤을 새겠다는 나의 계획은 현지 실정 모르는 나의 무지가 만들어준 개뇌피셜이었다.
대중교통은 있을 시간도 아니다. 행인지 불행인지 현지의 우버 같은 서비스인 그랩은 카카오로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재빨리 호출하는데 수수료 500원이 더 붙는다네. 뭐 그 정도 돈에 이 밤의 곤란함을 계속 누릴 생각은 없어서 냉큼 결재를 부르고 차를 기다린다. 이것도 차가 정차하는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 몰라서 좀 버벅댔는데, 몇 번 써보니까 현지 택시보다 훨씬 싸고 편리한 제도. 우리나라엔 이런 것도 없어서 말야...
그나저나 500원 수수료도 현지 물가 감각으론 적은 돈은 아닌데(우리로 따지면 카카오 블랙 부른 느낌?) 그보다도 현지 그랩 요금보다 요금 자체가 좀 더나오는 느낌이더라는 것. 이것도 몇 백원 차이긴 하지만, 그리고 시간대마다 요금이 가변적이라 딱히 정확히 시비는 못 하겠지만, 어쨌든 다른 곳에서도 그랩하고 카카오그랩하고 비교해보면 카카오가 꼭 몇 백원쯤 더 나오는 경향 + 수수료 500원. 시내 중심가에서 공항까지 1만원이 잘 안 나오니까, 현지 물가에 적응하고 나면 그 정도 금액 차이가 꽤 신경이 쓰이더라.
베트남 숙소가 어쩌내 하는 험한 소리를 하도 들어서 사간 자물쇠는 수트케이스에 맞지도 않고, 여하튼 초반에 내딛는 걸음마다 삐끗하며 시작한 여행이다. 프로여행러란 모름지기 적응을 잘 해야하는 법이니 어떻게든 맞춰가며 돌아다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