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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전기밥솥으로 토종쌀밥 짓기

feat. 주나미쌀


브런치 글 이미지 1

처음부터 명확히 하겠다. 좋은 쌀은 전기밥솥에 밥짓는 것 아니다. 파나마 게이샤를 가정용 커피머신에 넣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무지와 야만의 경계에 있는 행위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이날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때부터의 친구들을 만난 날. 까까머리 소년이던 때에 만나 흰머리 보이도록 우정을 유지하는 것이 고맙다. 1차는 유명한 대구 막창으로 하고, 한 친구 집에 모여 2차를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뎄다. 어릴 때는 매일 보던 사이인데 이제 또 어떻게 볼 지 기약도 없는 소중한 자리.


다음날 애매한 점심때쯤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하는 나는 평소에 잘 하지 않는 브런치(보다 차라리 아침에 가까운)를 지어먹고 길을 나섰다. 이참에 친구에게 쌀이 아니라 밥을 선물해주면 더 좋을 것같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가 계란을 부치고 어쩌고 하는 동안 나는 밥짓기.


쌀은 선물로 들고 간 주나미. 도구는 외지에서 주중엔 독신 비슷하게 지내고 주말에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친구가 (가끔) 쓰는 소형 가정용 밥솥. 아주 익숙한 브랜드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브런치 글 이미지 3


정성껏 쌀을 씻었다. 이날은 온화한 봄날이라 크게 날씨를 탈 것은 아니고, 물을 많이 잡아야하는 주나미쌀 특성상 약간 넉넉한 물의 밥짓기다.


윗쪽이 그날의 밥짓기, 아래쪽이 예전에 지었던 밥. 왼쪽이 훨씬 밝고 깔끔해보이지만 그건 조명과 줌인 한 정도 차이가 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외양은 육안으로 큰 차이가 없다. 전기밥솥이지만 상당히 원하는대로 밥이 나온 것. 쌀이 워낙 좋아서 원하는대로 안 나와도 개량종 보통 밥에 비해서 맛은 있게 되어있지만.


브런치 글 이미지 4


식감과 윤기는 대체로 비슷하게 나왔는데 다만 쌀의 향이 많이 날아갔다. 계속해서 증기를 배출하는 전기밥솥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는 쌀의 좋은점이 많이 날아가버린 느낌이다.


전기밥솥은 물 말고는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백미 취사' 누르고 나면 그저 정해진 시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반면 수동조작이 가능한 압력솥, 돌솥, 냄비 등은 쌀이 끓어오르면 향을 맡으며 불을 줄일 타이밍을 잡는다. 불을 줄이고 난 후엔 또 끄는 시점이라는 것이 있고, 뜸을 얼마나 들일까도 고려할 요소 중 하나다.


밥짓기에 날씨는 무시할 것이 아니다. 비오는 날과 건조한 날, 한여름과 한겨울은 같은 물과 불로 밥을 지으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실내라서 바깥만큼 크게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데도 물과 불을 조절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밥은 얼마나 되게 혹은 질게 할 것인지, 누룽지는 얼마나 만들 것인지에 따라서 불을 끄는 시점도 다 달라진다. 누룽지는 기본적으로 탄 부분인지라 이것은 밥의 전체적인 향을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요소고 이것도 몇 분 차이로 크게 달라진다. 500그람 쌀로 밥을 짓는다면 물은 소줏잔 반 잔(25ml) 정도 차이만 해도 결과물에 영향을 미친다.  정수기로는 쪼로록 정도 소리가 나는 시간이다. 


밥짓기는 커피 내리는 것 못지 않게 예민하다. 기계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예민함을 반영할만한 정교한 기계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지간히 커피에 진정인 카페라면 기본적으로 몇천 만원 대 이상의 기계를 들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밥짓기에는 아직 그런 정도의 기계는 없으니 역시 지어본 사람이 품종의 특성과 사람의 취향에 따라 지어낼 수 밖에. 그런 밥짓기의 감각을 갖춘 사람들이 좀 더 있어야 우리사회의 밥 수준이 높아질까 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올해는 날씨가 들쭉날쭉인데다가 일기예보가 안 맞는지라 농가의 어려움이 더 많은 듯.


이럴 때 관행농이라면 농약과 비료를 더 뿌리는 것으로 해결을 하겠지만 자연농법은 애초에  식물의 생명력을 믿고 키우는 방법이다. 건강한 땅과 어우러져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무성히 자라는 벼들. 올해는 다른 논은 몰라도 주나미농장의 논들은 풍작이 될 것이라는 것이 농부님의 조심스런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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