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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rink Anew

4화 전주 오늘, 10점 만점에 9.5점

클라스가 다른 맑은술

아침에 도쿄에 간다고 수선을 떤 것은 한주지만 막상 한주가 일어났을 때는 치에가 이미 나가고 없었다. 전날 낮의 사케노진에서부터 시음삼아 마셔댄 술을 생각하면 엄청 숙취가 심하다거나 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늦잠을 자기엔 충분한 양을 마셨다. 한주는 마실 땐 곳잘 마셔도 다음날 숙취가 심한 편이다. 억지로 몸을 뒤틀어 핸드폰의 시간을 보았다.


‘음, 벌써 10시인가? 오전 신칸센은 타기 힘들겠군’


니가타에서 도쿄까지 신칸센으론 두 시간 남짓. 사실 저녁 전에 무슨 약속이 있는 건 아니다.슬슬 씻고 나가서 점심 먹고 12시반 신칸센을 타더라도 오후에 숙소에 짐풀고 차 한 잔 할 시간은 있을 것이다.

DSC04701.JPG <헤기소바>


역앞 스자카야(須坂屋)에서 헤기소바정식을 먹고 신칸센에 몸을 실었다. 도쿄에서도 그랬지만 에키벤은 먹을 것이 못 된다. 포장이야 반짝반짝하고 무슨 스토리도 잔뜩 만들어놨지만 뒷면의 식품성분란을 읽다보면 편의점 도시락과 하나 다른 것 없는 다양한 첨가물의 향연이다. 이것도 역시 돈벌기 위한 음식일 뿐. 그 와중에 편의점 도시락 두 배가 넘는 가격이다. 맛이 특출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밥은 먹고 탄다. 니가타역 앞 의 헤기소바 면발은 언제 먹어봐도 탄탄하고 질김 없이 찰지다. 메밀은 씹는 맛이 절반이라는 것이 한주의 지론이다.




니가타는 이 며칠 비가 와서 눈이 많이 녹았지만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역에 도착하니 아직도 눈이 쌓여있고 스키 슬로프에는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과연 여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설국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가 묘사한 ‘설국’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가 온 그 터널도 아니고, 방향도 반대지만 역시 그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오르는 광경이다. 한주도 강원도 홍천에 살지만 이 정도 눈이 오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눈이 오면 생활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은 열대성 작물이지만 이렇게 눈 많고 일교차 큰 곳에서 좋은 쌀이 나오기도 하지.’


아이러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곤 또 하나의 아이러니.


‘일본은 청주의 나라라지만 사실 생주로 따지면 한주에는 결코 미치지 못해. 이런 정도 차이라면 물류문제만 해결하면 일본에서도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겠어.’


한주는 에코백에 담긴 ‘오늘’을 다시 보았다. 오늘 도쿄에서의 저녁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일부러 남은 술을 회수했던 것이다. 가져온 술 중 ‘오늘’은 이제 여분이 없으니까.


전주가양주오늘.jpg <전주 오늘>


‘사실 평소보다 퍼포먼스가 좀 좋긴 했어. 어제만 같으면 10점 만점에 9.5점은 줄 수 있을 정도지. 산미와 감미가 아주 미묘하게 밸런스가 흔들린 것을 제외한다면 말야. 향이 좀 단조로운 것은 한주라는 술 쟝르 자체의 숙제고. 하루가 지나도 누룩취가 전혀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열차는 도쿄 우에노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주에겐 여기가 종착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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