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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너티뷰 Jul 18. 2022

‘음악적 성숙함’에 대하여-1.

Twenty øne Pilots, [trench]

[trench], by Twenty one Pilots. 2018


“이들의 세 번째 앨범은 이전 작품의 메시지를 이어나가서…,”

“단지 전작의 성공에 답습하지 않는 모습과 함께…,”

“특유의 색채에 더불어 음악성 성숙함을 이뤄냈으며…,”

“다수의 평론진은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하기도…,”



“난 이번 앨범 마음에 안 들어.”


“왜?”


“그냥, 솔직히 타이틀도 마음에 안 들어. 2집은 질리도록 들었는데 말야. 너무 힙합 색을 끼워 넣은 거 아냐?”


“…,”


“그리고 난 이 ‘음악적 성숙’이라는 말도 마음에 안 들어. 너무 자기 나름대로 막 붙이는 것 같지 않아? 어느땐 대중성을 챙기니까 성숙해졌다고 하고, 어느 땐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넣었다고 성숙해졌다고 하고-“


“오늘은 되게 말이 많아졌네.”


“나도 알아. 근데 말야. 매번 똑같은 것 같아서 그래.”


“어떤 게?”


“들어봐 봐. 보통 1집은 힙스터들이 주로 찾아. 음악적색채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났다나. 뭐 그건 걔네들이 처음 발견한 앨범이니까 할 말은 없지. 그걸로 유명해지는 거기도 하고…, 

 2집은 거기서 뭘 조금 변형해. 보통은 ”대중성을 챙겨서~”라고 하면서 제일 히트치잖아? 근데 세 번째부터 문제야. 똑같은 걸 만들 수는 없으니까, 계속 뭘 추가하지. 

 분위기가 처지거나…, 갑자기 신시사이저를 넣거나…, 그때부터는 평론가들은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잘 안 듣는 앨범이 생기는 거야. 이번 앨범이랑 똑같지 않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그치?”


“근데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건 맞아. 신시사이저야 원래 썼었고.”


“내 말은 신시사이저가 싫다는 게 아니라-“


“알아. 말꼬리 잡는 건 아냐. 나도 너랑 똑같은 생각 했었거든?근데 네가 싫어하는 평론가용 단어가 필요하긴 해.”


“그것도 싫어한다고는 안 했는데.”


들어봐 봐.


“이번엔 네가 말 많아질 차례구나…,”



 정말 그랬다. ‘trench’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제주도로 가는 가족 여행길에도 이어폰을 꽂아 두고 이들의 두 앨범을 반복해서 들을 정도로 힙스터(최대한 좋게 말해서)였는데, 그렇게 고대하던 세 번째 앨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뮤직비디오로 공개된 ‘jumpsuit’와 ‘chlorine’을 보면서 잔뜩 혼란스러워하던 내가 기억난다. 나머지 곡들을 들으면서 혼란스러움은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훨씬 어려워진 뮤직비디오, 뚝 떨어져 버린 에너지 레벨 하며,랩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오히려 나는 타일러 조셉의 랩을 굉장히 좋아한다-힙합 앨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힙합, 덕분에 귀에 꽂히는 곡은 없고…,


 그때의 나는 적잖이 실망한 채 두어 곡 정도만 플레이리스트에 끼워 넣고 나머지 앨범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나 인터넷에서 평가를 찾아봤을 때, 더욱 당황스러워하던 내가 기억난다. 만점에 가까운 점수, 음악적으로 훨씬 성숙해졌다나 ‘열성적 팬’들에겐 더 없는 선물이라거나 하는 찬사들.


 “이게 다 뭐야?” 싶었다. 


 “정말 이번 앨범이 더 좋다는 거야?? 내가 얼마나 이 밴드를 좋아했는데, ‘ride’나 ‘guns for hands’랑 비슷한 곡도 없었단 말야. 미니멀해지기만 하면 무조건 좋대. 이래서 평론가들이 욕을 먹는 거라고.”

 '평론’과의 애증은 아마 이때 즈음 생겨났던 것 같다.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식 리스너 생활을 몇 년 더 지속하던 중, 트웬티 원 파일럿츠가 또다시 컴백했다. 3집보다 훨씬은 더 색깔이 바뀌어서 말이다. 필터를 씌운 듯 더 밝아진 색채, 80년대 신스팝 느낌의 타이틀과 뮤직비디오.


 “얘네들 도대체 왜 이래? 2집 느낌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거야? 80년대 유행이 시작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따라 하는 거야, 정말?”


 내 생각엔 반발심과 도전 의식이 섞였던 것 같다. 나는 4집이 정식 발매된 날에서야 3집을 다시 듣기로 했다. 도대체 ‘음악적 성숙함’은 무슨 말일까? 정말로 평점의 이유를 지어내기 위한 말일뿐일까?애초에 성숙함이 음악가에게 칭찬이기는 할까?



[trench], 'bandito'의 컨셉트 이미지.


 앨범 이야기로 돌아가서, [trench]는 당시의 빌보드 히트작들 중 가운데 메시지의 전달을 가장 잘 수행한 앨범이다. 

 창작자가 느낀 감정이나 메시지를 완벽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메시지의 순수성을 높이기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 청자가 메시지를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극단적으로 쉽게 말하면, ‘덕질’할 요소를 심어 둔다고 보면 된다.


 사실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서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타고난’ 수준의 아티스트다. 

 대표적으로 1집의 ‘car radio’나 2집의 ‘stressed out’. ‘tear in my heart’와 같이 특정 상황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청자로 하여금 같은 경험을 했다는 ‘기시감’을 주며 자연스레 곡에 집중하게 만들고, 이후에 오는 메시지에 더 수용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이정도로도 정말 훌륭한 성취지만 [trench]에서 그들은 한 발 더 나아간다. 

 [trench]는 하나의 세계관과 서사를 만들어서, 수록곡들 뿐만 아니라 앨범의 시각적인 아트 스타일, 뮤직비디오, 앨범 광고 활동에서까지 확실한 이미지-종교적이고 퇴폐적인 디스토피아의 그것-를 전달했다. 


이것 또한 극단적으로 쉽게 말해서, 컨셉을 제대로 잡았다고 보면 된다.



앨범에 등장하는 'Nico'의 이름은 20세기에 시작된 수학자들의 밀회 'Nicolas Bourbaki'에서 따왔다.

 세계관의 기반이 된 조로아스터교나 밴드의 보컬인 타일러 조셉의 기독교적 배경과 암시/상징들은 제외하고서, 앨범의 간략한 서사는 이렇다.


 9명의 주교(9번 트랙 ‘Nico and the niners’)가 통치하는 억압된 도시 데마. 앨범 전체의 화자인 ‘클랜시’는 이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란색 점프수트(1번트랙 ‘jumpsuit)가 상징인 레지스탕스 조직 ‘bandito’(11번 트랙 ‘bandito’)의 도움을 받는다.


 이 서사는 2집에서 전달한 외로움, 우울, 공황과 같은 정서적 불안을 겪는 과정을 비유한 것으로, 도시의 통치자인 니코는 2집의 제목이자 정서적 불안의 상징인 ‘blurryface’와 동일한 인물로 표현된다. 즉,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도시를 탈출하는 서사로 연결/확장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약간의 진입장벽을 청자들에게 제공하지만, 장벽을 넘는 순간 일종의 성취감과 동시에 소유감을 불러일으킨다. 메시지에 공감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이야기를 해석하면서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효과인 것이다.


 고집스레 만든 앨범의 통일성도 이러한 이유에서 설명이 된다(물론 말할 이야기가 많으니 랩을 늘리는 것이 최선이었기도 하다). 요컨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서사와 세계관, 퍼즐을 넣는 것 자체가 훌륭한 점이 아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메시지를 위한 방법이고, 잘 조성된 방법은 창작자가 바라는 결과로 청자들을 유도한다.



 장르와 분류를 떠나서, 결국 대중예술에 있어 가장 주요한 고민거리는 메시지의 전달에 대한 방법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메시지는 결코 완전히 순수하게 전달할 수가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어도 누군가를 100% 이해할 수는 없고, 사실 대부분은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성숙함’은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2집 [blurryface]에서 보인 본인들의 솔직하고 불안정한 에너지를 어떻게 더 설득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trench]에서 훌륭하게 해냈다.  


 [trench]에서의 정제되고 절제된 음악(이러한 음악적 변화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기본적인 색채는 유지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앞선 문단의 감상은 몇 년 전 첫인상에 불과하다), 앨범에서 나타나는 서사는 메시지에 ‘층위’를 더하기 위한 역할이었고, 층위를 통해 청자들은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앨범의 모든 요소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 결과는 청자들에게 이렇게 나타난다. 잊지 못할 자신의 앨범이 되는 것이다. 물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간극-대중의 호불호-은 감수해야 할 리스크지만 말이다.




“그게 뭐야. 결국 노래 얘기는 하나도 안 하고. 그게 중요하잖아. 일단 듣기 좋아야 파고들지.”


“내가 뭐 전공자도 아니니까.”


“그래서, 좋다는 거야?”


“응.”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응. 다른 사람들한테 바로 추천하긴 좀 그렇긴 한데”


“여러 번 들어보면 진짜 좋아. ‘smithereens’도 좋고, ‘cut my lip’도 좋아. ‘my blood’는 사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뒀었어. 얘는 진짜 2집 느낌 나기도 하고.”


“무슨 와인이나 김치야? 오래 먹어봐야 맛을 알고.”


“근데 정말 그런 걸 어떡해?”


“자기는 입맛이 성숙해졌다 이거네. 어른 입맛에 맞는 어른 앨범.”


“너는 항상 말을 그렇게 하더라.”


“…,”


“…,”


“이번엔 비꼰 게 아니라 농담인데, 삐친 거 아니지? 어른이 이런 걸로 삐치면 안 되는데-”






‘음악적 성숙함’에 대하여-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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