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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너티뷰 Sep 17. 2022

이제는 익숙한 알레고리, 그러나 가장 훌륭했다.

조던 필, [놉]

[NOPE, 2022]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영화를 보고 나서 본 리뷰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보는 투수가 한 타자에게 같은 공을 세 번 던진다고 생각해보자. 가령 뚝 떨어지는 커브라던지 말이다. 처음 볼 때엔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방망이는 공중을 헛돌고, 좋은 변화구에 관중들은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같은 공이 같은 코스로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날아온다면? 야구로 비유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조던 필이 그 어려운 걸 해냈다는 점이다. 같은 공, 같은 코스. 분명히 익숙한 구위인데 이번에도 칠 수가 없었다. 삼구 삼진.





 ‘OJ’(대니얼 칼루야 분)는 말 조련사로, 아버지와 함께 영화에 쓰일 훈련된 말을 할리우드에 제공하는 말 농장을 운영한다. 


 영화 초반, 눈앞에서 벌어진 아버지의 의문사 이후로 말 농장 사업은 점점 하락세에 빠져 간다. OJ는 말의 습성을 파악해 말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데에는 뛰어나지만, 무뚝뚝하고 붙임성이 좋지는 않기에, 촬영 전 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 안내하는 것조차 동생인 ‘에메랄드’(키키 파머 분)가 있지 않으면 어렵기만 하다. 

 

 외향적인 동생의 도움이 있었지만, 말주변이 부족한 OJ는 결국 자신의 주의를 듣지 않은 관계자의 실수로 인해 말 계약을 따내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간다. 


 OJ는 하는 수 없이 말을 집 주변의 테마파크에 팔아넘기고, 테마파크의 주인인 ‘주프’(스티븐 연 분)는 아예 아버지의 목장을 팔지 않겠냐는 자신의 제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주프는 인기 아역배우 출신으로, 침팬지 ‘고디’가 나오는 시트콤에서 벌어진 인명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다. 


 결코 응하고 싶지 않은 제안을 뒤로하고, 동생 에메랄드와 OJ는 술을 마시며 아버지와 목장의 기억을 추억한다. 그러던 중 기르던 말인 ‘고스트’가 난데없이 사육장 밖에 풀려 있는 것을 본 OJ는 고스트를 따라나서고, 갑작스레 농장에 정전이 일어나며 하늘엔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한다.


 기르던 말 ‘고스트’는 사라졌고, 정전으로 인해 CCTV는커녕 전등도 켜지 못한 상황. 그러나 하늘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한 OJ는 다음날 에메랄드와 함께 그것을 촬영하기로 한다. UFO 촬영 영상으로 목돈을 챙길 꿈을 꾸면서!





 ‘겟 아웃’에서는 엽기적인 우생학에 기반한 신체 강탈 괴담에 고전적 납치-탈출 스릴러를, ‘어스’에서는 도플갱어와 미국 정부의 비밀 실험이라는 음모론을, 이번 ‘놉’에서는 UFO와 코즈믹 호러를 잘 배합했다. 이제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나오지 않을 고전적 소재로 이 정도의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을 보면, 공포 영화의 팬들에게 조던 필은 뉴트로의 아이콘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조던 필이 내놓는 플롯과 아이디어의 창의성(소재 자체의 창의성은 아니다)은 훌륭하지만, 그 서사만으로 관객을 빨아들이거나 평론가들을 만족시키는 류의 것은 아니다. ‘조던 필 트릴로지’의 독특한 색은 플롯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플롯만으로 영화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겟 아웃’, ‘어스’, ‘놉’은 음모론과 형이상학에 기반을 둔 호러 영화. 그 안에 내포된 사회/정치적 알레고리라는 확실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내포라고 말하기도 무엇한 것이, 조던 필의 스크린에서는 노골적으로 조던 필이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현상이 보인다. ‘우화적이다’라는 말이 그의 영화에 착 달라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님과 나그네’를 읽고 교훈을 생각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겟 아웃’을 보면서 아직도 존재하는 흑인 차별의 맨 얼굴을 떠올린다. 


 이번에도 조던 필의 ‘우화’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이야기는 다르지만, 결국 똑같은 영화라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위험한 시도다. 어느 타자라도 똑같은 공을 세 번 본다면 공을 때려내는 것처럼, 관객은 같은 영화를 세 번이나 보고도 칭찬해주지는 않는다. 


 두 번 이상 본 이야기는 지루해지고, 만약 그것이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했다면 관객들은 영화가 가르치려 든다며 더욱 피곤해할 것이다. 나 또한 교조적으로 메시지만을 전달하려는 작품은 그 메시지가 무엇이 되었건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면에서 조던 필의 화법은 매우 리스크가 큰 것이고, 그래서 예술가에게 자기 복제가 위험한 딜레마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던 필은 과연 어떻게 이걸 해냈을까?




 서론이 길었다. 먼저 핍진성에 대해 말해보자면-이 부분이 내가 어스를 아쉽게 느낀 부분이기도 한데-이 단어는 항상 조던 필을 따라다니던 단어였다. 특히나 세 작품 모두 작품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소재, 쉽게 말해 공포의 대상과 배경 설정이 동시에 메시지를 담당하는 상징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비현실적인 상황과 대상을 보면서 이를 상징으로 납득할지 영화 속 현실의 대상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어스’에서 부정적으로 부각됐는데, 관객들은 지상에 사는 일반인들의 도플갱어인 ‘지하 인간’에 대해서 자연스레 현실적인 질문들을 갖게 된다. 

 

 단순히 “도플갱어는 말도 안 돼. 이 영화는 현실적이지 않아”하는 유치한 투정이 아니라, 영화 내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다. “미국 전역에 걸친 실험이라면, 누가 이런 걸 만들었지?”, “지하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거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시설은 어떻게 유지된 거야?”와 같은 질문을 통해 관객들은 영화를 대체된 현실로 납득하는 것이다. 


 결국 핍진성이란 관객이 작품 내의 인과를 납득하는 정도다. 현실성과 개연성과는 당연히 다른 개념이고, 관객들은 핍진성을 무의식적으로 매번 의식하면서 영화를 본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관객들 간의 설정 논쟁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놉'에서는 달랐다. 




 어쩌면 꼼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조던 필은 ‘놉’에서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무대 자체를 축소시키는 것이 첫째, 공포의 대상 자체가 핍진성에서 자유로운 소재라는 것이 둘째다. 


 ‘놉’의 세계, 즉 극의 무대는 전작들보다 훨씬 작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넓게 쳐봐야 OJ의 말 농장, 농장 바로 근처에 있는 주프의 테마 파크, 그리고 과거 ‘고디가 왔다’의 촬영 장소인 스튜디오 정도뿐이다. ‘겟 아웃’이 한 마을 전체, ‘어스’가 미국 전역(물론 사건이 보이는 장소는 훨씬 작지만)인 것을 볼 때, 확연히 극의 규모가 작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극 내에서 진행되는 사건이 지역 뉴스로 보도되는 연출로 보이듯,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거리감을 제공한다. 영화 속의 세계가 생소할수록, 규모가 작을수록, 거리감이 느껴질수록 관객들은 핍진성에 대해서 보다 넓은 기준으로 납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공포의 대상인 진 재킷(극 내에서 OJ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다.)은 UFO와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이점으로 가져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 심지어 그 미지의 존재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관객은 역설적으로 그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한없는 관용의 시선을 가진다. 무엇을 하든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간다는 점은 의외로 영화에서 해당 소재를 이용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이렇듯 ‘놉’은 핍진성의 허들 자체를 극단적으로 낮춤으로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피로감이 덜해지는 조건을 갖췄다. 그렇다면 다음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달 방식에 대해서 봐야 하는데, 이 또한 ‘놉’은 전보다 더욱 은근한 메타포를 통해 교훈을 피곤해할 관객들에게는 무시할 수 있는 곁다리로, 팬들에게는 해석의 쾌감을 주는 수수께끼로 주제를 보여준다.


 ‘놉’의 서사는 ‘영화’와 ‘촬영’이라는 상징을 통해 두 가지 알레고리를 나타내는데, 모든 것을 무책임하게 소비하는 미디어의 실상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 역사가 그것이다. 조던 필 감독의 특성상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재에 메타포를 숨겨두는 편이지만, 핵심적인 것만 살펴보자. 




 영화 초반, 할리우드의 촬영장에서 에메랄드는 ‘말을 탄 흑인’이라는 짧은 영상이 영화의 시초이며, 촬영자가 아니라 말을 탄 흑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가 바로 자신의 현조부(great-great-great-grandfather)라며 흑인과 우리 가족의 목장이 영화 역사에 지분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후 등장하는 시퀀스가 OJ의 주의를 듣지 않은 스태프로 인해 말이 놀라 발길질을 하고, OJ가 할리우드에서 내쫓기듯 계약에 실패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볼 때, ‘놉’이 조명하고 있는 대상이 흑인과 미국 내 소외계층에서 미디어에 소비되는 동물/자연에게로 옮겨간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에메랄드의 발표는 촬영진들이 시큰둥하게라도 듣지만, 말에 대한 주의는 촬영장 안에서 오직 OJ만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말을 탄 흑인’에서 말은 기억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물들을 살펴보면, ‘놉’의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극 내에서 일종의 반동 인물로 나타나는 주프는 ‘고디가 왔다’라는 가족 시트콤에서 벌어진 살해 사건의 생존자다. 


 침팬지 ‘고디’의 생일 축하를 하는 에피소드에서, 무심코 꺼낸 풍선이 터지며 고디를 자극했고, 분노한 고디는 출연진 대부분을 살해한다. 영화의 시작을 담당한 이 사건은 주프의 은유를 특정 지음과 동시에 그 자체로 OJ의 말 사건과 같이 몰지각하고 폭력적으로 대상을 소비하는 할리우드의 실태를 보여준다. 


 주프는 자신만 유일하게 생존한 이유가 자신이 선택받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한다. 고디와 식탁보를 사이에 두고 손을 맞대려 했던 것(장면 자체는 ET가 떠오르지만, 맥락의 긴장감 때문에 ET와 대조된다)이 고디를 이해하고 서로 교감한 사건이라고 받아들이며 자신을 선택받은 자라고 여기는 계기가 된다.


 시간이 지나며 오해는 광신이 되고, 주프는 OJ의 말들을 사들여 ‘진 재킷’에게 먹이로 주는 쇼를 진행하며 자신이 ‘진 재킷’을 길들일 수 있다는 믿음마저 가지게 된다. 이것이 결국 쇼에 참여한 모두가 잡아 먹히는 말로로 이어진다는 것은, ‘주프’라는 인물 자체가 미디어를 통해 일어나는 단편적 수용과 오해를 은유하는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반대로 OJ는 어떠한가.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이 말 조련사는 주프와 가장 대비되는 인물이며 OJ의 주변 인물들과도 큰 차이를 가진다. OJ가 가지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OJ의 동기를 이해해야 한다. 왜 OJ는 ‘진 재킷’을 촬영하려고 하나?


 OJ가 할리우드와의 말 촬영 계약을 따내려고 하는 이유는, 죽은 그의 아버지가 말했듯 더 이상 말을 키워 팔아넘기지 않고도 목장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프’에게 말과 농장을 파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진 재킷’을 촬영하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UFO 영상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고 돈을 쓸어 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돈이 말을 키우는 데에 필요하고, ‘진 재킷’이 말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서사가 진행될수록 더 강조된다. 주프의 일행 모두가 잡아 먹힌 밤을 경험한 뒤 동생 에메랄드와 그를 돕는 마트 직원 ‘앤젤’은 패닉에 빠져 도망칠 생각을 하지만, OJ는 “나는 내일 말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라며 농장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진 재킷을 촬영할 계획을 세울 때도 말 몇 마리를 미끼로 풀자는 생각에 반대하며 스스로 미끼가 되기를 자처한다. 


 OJ에게 ‘진 재킷’은 주프처럼 정복과 길들임의 대상이 아니다. 단순히 일확천금의 목표 또한 아니다. 그에게는 말과 목장을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바로 이 특성에서 ‘서부극’의 장르적 오마주가 사용된다. 




 서부극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영화사에서야 서부극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그렇기에 서부극이 가지는 영향력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할리우드를 통해 영화사의 범주를 조명한다면, 서부극의 장르적 오마주가 왜 ‘놉’에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서부극의 사전적 정의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바탕으로 그 안에서 일어났던 장르를 ‘활극’화 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서부극은 복잡했던 개척 시대의 역사와 대상을 축소하여 영화사 초기, 액션과 플롯의 문법 자체를 만들어낸 장르였다. 


 서부극에서 주인공의 앞에 주어지는 대상들. 황무지, 아메리카 원주민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자연과 악당들은 당연하게도 개척과 정복의 대상이었다. 개척과 정복의 역사를 담은 장르가 영화사 내에서도 ‘개척 시기’에 해당된다는 흥미로운 특징이 ‘놉’에서 조명하는 서부극의 장르적 의미다.




 ‘주프’의 테마파크는 서부극 콘셉트로 통일된 공간이다. 주프의 의상 또한 ‘진 재킷’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붉은색 카우보이 복장과 모자가 아니던가. 적나라하게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인물인 주프가 자신을 선택받은 자라고 단정 짓고 ‘진 재킷’을 길들이려 하려는 모습, 이를 위해서 OJ의 말들을 먹이로 넘기는 모습은 서부 시대와 고전적인 미디어의 문법-자연에 대한 폭력적인 소비와 몰이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말을 타고 달리는 인물은 OJ 뿐이라는 것, 유일하게 전형적인 서부극의 음악이 사용된 장면이 영화의 끝, OJ가 말을 탄 채로 흙먼지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라는 것은 '정복'이 아닌 '극복'을 한 진짜 카우보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와 촬영의 역사, 그 가운데에서 현대 영화의 작법을 개척한 서부극의 요소를 통해 말하는 인간의 정복 역사가 결국 ‘진 재킷’을 촬영하는 것을 통해 절정을 이르는 것, 진 재킷의 눈이 카메라를 닮았다는 것, 수많은 시도 가운데 진 재킷을 촬영한 건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카메라였다는 것, 끝내 OJ의 방식-고집스럽지만 인간적인 극복-으로 영화의 서사가 마무리된다는 것들은 위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에 빛나는 디테일들이다. 조던 필의 ‘변태적인’(긍정적 의미로서의) 연출력이 얼마나 의도대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영화가 자신의 메시지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영화 자체가 재미있다. 


단순히 공포 영화로서도 ‘놉’은 훌륭하게 본분을 다했다. 해석 같은 건 상관없이, 여름밤에 오싹하게 즐기기에 충분하다. OJ일행의 ‘진 재킷’ 촬영 작전 시퀀스는 ‘오션스 시리즈’ 같은 팀업 무비의 쾌감도 갖고 있다. 나는 결국 이런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 싶다.


 메시지가 다루는 대상이 확장되고, 그 전달 방식이 세련되고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교조적인 작품들처럼 의도와 작품을 혼동하는 오류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것이-교묘한 고의였든 능력 부족이었든 간에-유행처럼 자리 잡은 미디어의 오늘이다. 


 저마다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의 우산 아래에서 미디어를 무책임하게 생산한 후 의도를 강요하는 것이 ‘놉’에서 보았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보는 이든 만드는 이든 ‘주프’처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것과 평가하는 건 작품이지 의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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