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육아와 스토리텔링
요즘 가장 많이 들리는 주제가 AI인건 분명하다. 아무래도 내 관심사 (+현재 열심히 하고 있는 일)가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다 보니, AI시대의 도래라는 주제가 무겁게 다가온다. 막상 아이들 학습에서의 AI사용부터 향후 직업 선택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까지. 시대의 전환점을 나 자신이 아닌 내 자녀들이 겪는다 생각하니 불안함이 앞선다. 분명 작년까지는 '스마트폰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 조사를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더 큰 벽에 부딪힌 거 같다. 그 와중에도 늘 떠올리는 질문은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생각하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럼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뭐지? 진짜 필수인 건 어떤 거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스마트폰에 대해 고민할 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오히려 '진짜 필수인 것 what's really essential'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작년 이맘때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 Anxious Generation>를 읽고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해 조사할 때는 이 기술의 '제거' 혹은 '영향력 축소'가 시급한 화두처럼 보였다. 반면 AI는 '필요하냐 아니냐'의 질문을 벗어나는 범주라서 더더욱 나의 스탠스를 정하기가 어렵다. 스마트폰처럼 '거리두기'가 해답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제한 없는 무방비한 노출도 답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만나는 많은 부모들이 'moderation 적당한 정도'를 좋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모호한 답이 아닐 수 없다. 적당한 정도의 기준은 개인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본 BBC 드라마 <Humans>에 '아니타'라는 인공지능로봇이 등장한다. 아니타는 유능하다. 집안일과 육아, 그리고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워킹맘에게 특히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다. 아니타는 아이들에게 책을 원 없이 읽어줄 수 있고 아이들의 짜증을 웃으며 받아줄 수 있으며 아침 식사도 완벽하게 차릴 수 있다. 하지만 아니타는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사랑할 순 없다 but I cannot love them'라는 말로 부모와 로봇 육아의 선을 확실히 긋는다. 이 드라마를 보던 당시에는 아니타의 태도가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넘겼지만, 부모가 된 지금은 '아이를 사랑한다'는 개념이 단순히 양육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물론 '적당히 조절한다'는 말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모호하다. 하지만 부모가 되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사랑한다는 행위에는 단순히 양육만 포함되진 않는다는 걸 말이다. 지금 다시 아니타의 대사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말 안에 인공지능이 도래한 이 시대 육아의 해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랑하는 어린 존재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은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 말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행위는 무엇이 있을까. 과연 기술을 넘어서는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미국 남부 조지아에 위치한 에모리 대학 Emory University에는 서사 narratives와 스토리텔링 storytelling의 가치에 대해 40년 가까이 연구한 분이 있다. 로빈 피부시 Robyn Fivush 교수의 가족 서사 랩에서는 자전적 서사, 이야기하기가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가족 서사를 반복해서 이야기해 줬을 때 전해지는 가치와 회복탄력성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가족과 나누는 아주 짧은 회상부터 조상에 대한 이야기 형태의 구술 전달까지. 생각보다 이야기가 주는 힘은 큰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 주는 지식의 전달을 넘어서는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아이와 함께 누워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며 우리 가족의 어떤 점들이 부모인 우리를 통해 너에게 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순간들, 혹은 사진을 보며 '그때 그랬지'하며 회상하는 시간도 한 인간의 인생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조금 더 양질의 접촉 contact, 이야기의 선별, 나아가 그 이야기들을 구성해서 아이에게 전하는 방식은 AI가 따라 하기에는 힘든 영역일 것이다. 이는 어쩌면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알지만 막상 사랑은 해본 적 없는 존재가 절대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AI시대에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우리 모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예전에도 중요했지만 더욱 중요해지는 부모의 역할말이다. 조금 더 따뜻할 것, 조금 더 자주 눈을 마주보며 웃을 것, 조금 더 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 것, 조금 더 많은 사랑의 대화를 나눌 것. 인간인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하는 사랑의 행위들, 그 가치를 전달하는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