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조절력과 에너지 흘려보내기
네 살 아이의 감정 조절 돕기
둘째 아이는 30개월 무렵부터 자기 생각과 상황이 다르게 돌아가면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표출했다. 그 소리 지르기가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공원에서 놀다가 내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네를 밀어주지 않았다고 소리를 내질렀는데 지나가던 엄마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평범한 비명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굉장한 성량으로 멈추지 않고 소리를 지르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도 받는다. 두 돌 전부터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아이라 감정 조절력도 빨리 발달하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어려움을 겪게 돼서 당혹스러웠다. 만 3세 무렵 소리 지르기가 정점을 찍었었는데 우리는 온갖 방법으로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감정, 특히 화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같이 읽으며 연습하기도 하고 (주로 호흡법과 숫자 세기였다) 인형들로 상황극도 해보고 소리 지르면 뭔가를 할 수 없다는 협박도 해봤다 (결과 알려주기 consequences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 당연히 ‘소리 지르지 말고 말로 해보자. 기분이 어떻다고 말로 해보자’ 하며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방법도 해봤다. 그나마 호흡법과 언어로 감정 라벨링 labeling 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가 있었지만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아아아아아아!’ 하며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소리를 내지르는 (어처구니없는) 꾸준함을 보여주었다. 결국 온 식구는 ‘제발 소리 좀 그만 질러!’라고 말하게 되고 나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날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와 놀다가 또 화가 난 아이는 소리를 대차게 내지르다가 스스로 하나 둘 셋 하며 숫자를 셌다. 그러더니 내게 안겨와서 울며 이렇게 말했다.
“숫자를 세도 진정이 안돼. 계속 화가 나. 몸에서 뜨거운 공기가 안 나가는 거 같아.”
나는 순간 아이의 화도 에너지가 아닐까, 불편한 에너지가 가득 차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이산적 이주 diasporic displacement에 대한 연구를 할 때 만났던 한 공연예술가가 생각났다. 그녀는 재일 교포였고 민족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서 느낀 불안과 트라우마를 '강물에 흘려보내는' 공연을 한다거나, 굿의 형태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작가였다. 나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해방감마저 느꼈었다. 아이의 화도 절제력을 넘어서 버리면 그런 에너지의 분출과 자연스러운 흘려보냄에 필요한 게 아닐까.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이 칭찬받을 행동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차분하게 ‘화난다고 소리 지르지 않아’ 해봤자 아이 입장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일어나 그럼 엄마가 좀 도와주마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소리 질러도 괜찮아. 그래야 기분이 나아진다면 소리 정도는 질러도 돼.’라고 말해주었다. 내 말에 어리둥절한 아이는 이미 진정이 돼서 그저 나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뒤 차를 타고 가다가 또 심사가 뒤틀린 아이는 차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만 뒷 좌석 창문을 열어주고 웃으면서 ‘기분이 안 좋은가 보구나. 그럼 지금 목소리가 얼마나 큰가 보자. 저기 일하시는 아저씨가 돌아보실 만큼 질러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재밌게도 소리를 지르던 아이는 서서히 비명 소리를 낮추더니 목소리 톤을 바꿔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왔다.
그 뒤로도 몇 번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 손을 잡고 창문을 열어주거나 탁 트인 곳으로 가서 같이 있어줄 테니 소리 질러도 좋아,라고 해주었다. 그러면 아이는 단번에 비명을 멈추고 어떤 날은 주변을 돌아보며 ‘이제 괜찮아’라고 하던가 그냥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그 횟수도 점점 줄어서 이제는 기분이 안 좋으면 소리를 내지르기보다는 그저 부루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며 삭히거나 나에게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해준다. 아직 감정이 완전히 갈무리되진 않지만 이 정도면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하며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잊지 않고 해 주었다. 그렇게 해야 곧 큰 언니가 되는 거란다라고 하면 아이는 금세 차분해진다.
사람은 안으로만 갇힌 감정 에너지를 안고 살면 병이 된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게 금기시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아이는 특히 더 감정 에너지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 에너지를 가둬두기만 하면 자라면서 가득 찬 감정 항아리를 어디다 부어야 할지 모르게 되고 만다. 결국 가득 찬 항아리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거나 썩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조금씩이라도 쏟아내는 경험을 하게 해 주면 아이의 조절력은 더 빨리 자라게 된다.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그저 막아두려고만 하지 말고, 아이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어하면 차라리 다 쏟아내는 법을 알려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