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드라마와 육아
아이는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여기 한 아이가 있다.
서너 살쯤 된 아이는 급하게 뛰어가다가 난로를 넘어뜨렸고 그 바람에 주전자에서 끓고 있던 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함께 있던 어른들 중 아무도 소리를 치거나 난리 법석을 떨지 않는다. 그저 한 명이 ‘이런’이라고 말했을 뿐. 그것은 가라앉은 침묵이나 분노를 억누르는 압박이 아니라 진정으로 단정한 차분함이었다. 어른들은 침착하게 난로와 주전자를 치우고 바닥에 흥건한 물을 닦았다 (마이클렌 다우클레프의 <아, 육아란 원래 이런 거구나! Hunt, Gather, Parent>에서 발췌 및 재구성).
장 브릭스가 이누이트 사회에서 목격한 최초의 드라마 육아법은 상황 재연극 형식을 띄고 있었다. 어느 날 장은 마을의 돌이 많은 해변을 걷고 있다가 어린 아들과 놀고 있는 젊은 엄마를 보게 되었다. 그 남자아이는 두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의 손에는 작은 조약돌이 들려 있었다. 엄마는 조약돌을 들고는 아이에게, “엄마 때려봐! 어서. 더 세게 때려봐.”라고 말했다.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주변에 있던 조약돌을 주워 엄마에게 던졌고 엄마는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아우, 너무 아프다" 라고 엄살을 부렸다.
이런 상황들은 이누이트 가정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이누이트 사람들은 아이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이들은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대립하는 어른은 ‘미성숙한 사람’ 혹은 ‘애 같은 어른’으로 취급한다. 다만 이들은 아이가 미성숙한 행동을 하면 그 순간은 차분하게 지나가게 둔다. 그리고 잠시 뒤 아이에게 질문과 재연 방식으로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한 깨달음을 유도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돕는 것이다.
좁은 이글루 안에서 몇 달간의 혹독한 겨울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절대 화내지 않는 이누이트인들의 육아법은 서구 문명의 유입과 생활 방식의 변화 등으로 점점 잊혀 가고 있다. 하지만 장 브릭스 Jean Briggs가 <이누이트인들의 도덕성 드라마 Inuit Morality Play>라는 책을 집필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이러한 침착한 육아법은 분명 흔한 일상이었다.
To Cause Thought (생각하게 만들기)
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장 브릭스에 의하면 이누이트인들은 아이들을 훈육하는 방식으로 '게임 games' 혹은 '드라마 drama’라고 불리는 독특한 육아법을 가지고 있었다. 장 브릭스는 캐나다 북부 이누이트 사회의 세 살배기 아이, ‘통통이 마아타 Chubby Maata’와 그녀의 공동체를 6개월 동안 관찰했다. 그곳에서 어른들은 아이를 꾸짖거나 훈계하지 않는다. 타임 아웃 같은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이의 실수나 부정적인 감정이 드러날 때마다 ’ 드라마‘를 통해 상황을 반추하고, 스스로 감정을 살피도록 돕는다. 예컨대 아이가 더 어린 형제를 때렸을 때 어른은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아이가 '재연'하도록 유도한다. 세 살 아이가 더 어린 동생을 질투해서 공격하는 것은 '아기나 하는 행동'으로 간주하고, 세 살 아이에게 아기처럼 말하게 하고 아기처럼 행동하게 한 뒤 "너는 아기니?"라고 묻는 것이다. 혹은 누군가 뒤에서 마아타를 살짝 치며 "너는 아기라서 공격받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런 드라마 기법은 아이에게 감정을 훈육으로 가르치려는 서구의 육아법과 전혀 다른 방식이다. 이런 상황의 재구성 방식은 아이의 감정이 부정당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만약에 너라면 아무 이유 없이 아기라서 공격받았을 때 어떤 느낌일까?'를 아이의 방식으로 묻는 것이다).
이런 드라마 기법은 종종 질문들 interrogation과 함께 진행되는데, 그 질문들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질문들은 "너는 아기니? Are you a baby?", "너는 내가 싫어? Don't you like me?", "(너네 가족 말고) 나랑 같이 살래? Want to come live with me?" 같이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장 브릭스는 이누이트들의 드라마 속 질문들은 간혹 우리 기준에서 '심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극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이 최우선인 이들에게 이런 질문들은 폭력성이 아니라 배려가 된다. 사냥을 나갔다가 죽을 뻔한 사람이 살아 돌아오면 이들은 그 사람을 더욱 심하게 대한다고 한다. 외부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강해져야 하고 그것이 그를 위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과 재연 방식의 육아법은 북극의 환경에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어찌 보면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언가를 일부러 배우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에 이르러야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훈련이 아니라 (애초에 아이의 감정이 훈련으로 다스려지는 거였다면 내가 이렇게 인류학 책까지 들여다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며 책임지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좋은 어른으로 크는가?
이 글을 쓰느라 참고한 장 브릭스와 마이클렌 다우클레프의 글들을 읽다 보면 때로는 단순한 방법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아이를 키우는 일도 '육아법'이라던지 '훈육법' 등의 다양한 기술 skill이 필요한 전문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방식이 아이에게도 좋을까? 자연스럽게 아이를 좋은 어른으로 키우는 방식이 분명 존재했을텐데 말이다.
아래 세 가지 방법은 일상에서 아이가 자연스레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모델링: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가 수월하게 조절력을 배우게 하고 싶으면 본보기가 되어 줘라.
연습: 스킨십, 상황극, 스토리텔링 등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연습할 기회를 제공하라.
인정: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인정하기, 아이의 노력을 인정해 주기 등 인정하기는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 뭐든 가능하다. 이는 칭찬해 주기와는 다르다. 관점이 아이가 아니라 양육자의 마인드를 바꿔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 이누이트 부모들은 화를 내지 않는다(2) 에서 구체적인 설명과 케이스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Iqaluit, pictured in winter, is the capital of the Canadian territory of Nunavut.
Johan Hallberg-Campbell for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