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과 육아
예측은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예측 방식을 사용한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계획을 세우며 약속을 잡는다. 이런 행위는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우리 삶에 ‘안심 장치’로 작동한다. 이는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이 진화하며 자연스레 선택하게 된 방식이다.
뇌가 '예측 기계'라는 것은 이제 최신 뇌과학 이론에서 거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관련된 뇌과학 이론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뇌가 '예측하는 뇌'라는 건 아이를 키울 때 매우 유용한 정보다. 아이의 뇌가 예측을 한다는 건, 눈앞의 상황이나 다음에 일어날 일을 미리 짐작해서 행동과 기분을 준비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측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아이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덜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 예측이 맞았구나 -> 돌발 상황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 유사한 상황 발생 시 침착할 수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것을 '알로스타시스'라고 불리는 몸 전체의 예산 조절 시스템 덕분이라고 한다. 예측을 통해 몸은 균형 있는 '예산 배분'을 할 수 있고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다. 아이에게 반복되는 루틴이나 의식을 만들어주는 것이 자기 조절력이나 효능감, 심지어 애착 관계 형성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루틴, 의식 그리고 예고
이러한 예측하기가 육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첫째 아이 덕분에 배우게 되었다. 이 아이는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전환 trasition이 힘들고 기질적으로 소위 말하는 고집 센 아이 strong-willed child였다. 첫 아이라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나는 처음 얼마 간은 아이의 불안과 강한 의지에 많은 좌절감을 느꼈었다. 내가 이 아이를 도와 '공존'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육아관은 양육자와 아이가 합의점을 찾아 함께 살아가는 ‘공존 육아'이다).
실제로 다음 세 가지 방식의 도입은 나의 육아 세계를 훨씬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루틴(routine) 만들어주기, 가족 의식(ritual) 해주기, 그리고 상황에 대한 사전 예고(forecasting)해주기다. 특히 가족 의식, 가족 서사에 관한 '예측' 시스템은 아이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룰 예정이다). 이러한 전략들은 아이의 일상에서 예측 가능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정서적 불안 감소와 나아가 자율성 발달을 촉진한다.
(1) 루틴 만들기 Setting Up Routines
루틴은 신생아 시기부터 시행할 수 있으며, 시간에 따른 먹이기와 수면 패턴과 같은 반복적 행위를 포함한다. 아이의 성장 단계에 맞추어 점진적으로 확장된 일과는 아이가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예측하게 하여 불확실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일정한 시간대에 수행되는 가사 활동 및 독립 놀이, 가족 독서 시간 등은 아이가 일상에서의 역할과 기대를 명확히 이해하게 하며, 이는 전반적인 행동 조절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우리 집의 예를 들어보면, 가정보육 중인 만 4세 둘째 아이의 일상에서 루틴은 a. 오전에 엄마랑 같이 집안 정리 및 청소 b. 놀이터에서 한 시간 놀고 간식 먹기 c. 점심 전에 엄마 공부하는 시간 동안은 독립 놀이 하기 d. 잠들기 전에 다 같이 책 읽기 (이건 수면 의식 ritual이기도 하다)이다. 매일 이런 활동들을 해주면 아이의 저항이나 갈등이 줄어들고 아이도 예측이 가능하니 (엄마가 청소하자고 하면 나랑 놀아주지 않는구나 -> 나도 같이 청소하든가 혼자 놀아야지) 아이와의 공존이 더 이상 괴롭지 않다.
(2) 가족 의식 만들기 Creating Family Rituals
가족 의식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심어주어 장기적으로 아이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기적이고 의도된 가족 행사는 아이에게 안전한 정서적 기반을 제공하며, 성인이 된 후에도 긍정적 기억으로 작용해 우울증 및 심리적 스트레스의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음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Fiese et al., 2002)**. 예를 들어, 아이의 점심 도시락에 매일 메모 편지를 넣어준다거나, 아이와 잠들기 전 ‘사랑한다’고 말하며 코뽀뽀 (코를 콕하고 맞추는 우리 집만의 의식이다)를 해준다거나 하는 기억들은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분명 큰 힘을 주는 기억들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가족 의식은 아이에게 '좋은 습관 만들어주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도서관에 가면 책 반납기를 스스로 사용할 수 있고 (책을 좁은 입구에 넣으면 덜컹 소리를 내며 책을 실은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여 반납 통에 책이 자동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아이들이 지켜볼 수 있어서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또한 도서관에 가는 날은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는데 이게 가장 좋다고...). 이런 방식으로 도서관 가기를 가족 의식으로 만드는 것도 예측하기의 일종이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루틴과 의식의 차이점은 감정적 연결, 즉 정서적 활동이다.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들이고 싶을 때 의식화하기를 사용하면 효과가 좋은 이유가 정서적 의미가 있는 반복 행동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3) 예보해 주기 Forcasting
사전 예고는 변화 상황에 대한 아이의 준비를 돕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아이가 겪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여 전환기 상황에서의 정서적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예컨대, 이동 시 예상 소요 시간과 활동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방법은 불안 완화에 기여하며, 일정 관리와 스케줄 공유를 통해 아이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 (Bowlby, 1988)*.
이 방식은 첫째 아이가 카시트에 타는 걸 힘들어할 때 자주 쓴 방법이다. 아이는 아주 아기 때부터 카시트에 앉히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었는데, 우리 부부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친한 지인이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차에 앉아 있게 될지 미리 반복해서 이야기해줘 봐'라고 말씀해 주신 분이 계셔서 그대로 해봤다. 예고하기는 말 그대로 앞으로 일어날 일정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마치 날씨를 예보해 주는 일기 예보와 같다). 외출을 하면 밖에서 하게 될 일을 미리 알려주고 이동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려준다. 이걸 반복해서 해주니 아이는 차를 타도 안심하고 카시트에 앉아 있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불편한 카시트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불안감이 컸던 것이다. 만 7세인 요즘은 그 정도까지는 하지 않고 달력에 요일마다 꼭 해야 하는 활동들을 써두고 미리 숙지를 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월수금은 태권도를 가는 날이고 금요일은 미술을 가고 주말에는 어떤 일정들이 있다,라고 미리 공지를 해주는 거다. 그러면 아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나한테 말하고 함께 스케줄을 조율할 수 있다 (이를 '제한 속 자율성 (autonomy within boundaries'이라고 부른다).
팁 하나
다만, 지나친 예측 고집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방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유연한 수용’ 교육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와 예외 상황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지도하며, ‘괜찮아. 조금 달라져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아’는 메시지를 반복하여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접근은 아이의 사회적 적응력과 정서 조절 능력 향상에 기여한다 (Siegel, 2012)***.
[References]
* Bowlby, J. (1988).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 Fiese, B. H., Foley, K. P., & Spagnola, M. (2006). Routine and ritual elements in family mealtimes: Contexts for child well-being and family identity. New Directions for Child and Adolescent Development, 111, 67–89.
*** Siegel, D. J. (2012). The Developing Mind: How Relationships and the Brain Interact to Shape Who We Are (2nd ed.). Guilford Press.
**** 배럿, 리사 펠드먼.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김미선 옮김. 서울: 더퀘스트, 2021.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946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