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990년대를 회상하며
지난 4.7 보궐선거는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 매우 특이한 현상을 노출시켰다. 바로 40대들만의 독자적 정치 지향점과 관련되어 있다. 윗세대로부터 치이고 아랫세대로부터 받히는 세대, 그래서 언제부턴가 40대를 가리켜 '낀세대'라는 자조 섞인 표현도 등장했다. 그들은 왜 대한민국의 전 세대들과 다른 행로를 선택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럴 마음으로 시작한 글도 아니다. 그냥 문득 그들의 마음속으로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유와 정의의 노래를 어깨동무하고 함께 부르며 밤을 지새웠던 내 젊은 시절의 어느 한 순간과 그들의 시간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나 그들만이 공유하는 독특한 세대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좀 더 범위를 역사의 시공간 속으로 확장시키면 시대정신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독특한 세대감이나 시대정신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면서 경험했던 기억의 소산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경험과 기억의 차이가 그들만의 연대를 만들고 정치나 사회 이슈에 대한 담론을 형성한다. 따라서 지금의 40대들이 경험했던 그 독특했던 과거의 시공간을 탐색하는 것은 40대 독자 현상론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절했던 1990년대의 기억들'
나에게도 1990년대 초반 어느 순간들은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리는 것 자체가 조금은 고통스럽다. 마치 그 시절 어느 한 토막은 죽음에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도 미래가 창창한 대학생들을 비롯해서 새파랗게 젊은이들 13명이 연속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잔인한 시절이었다 말할 수밖에. 누군가에는 정치적 선동이나 음모론으로 비춰졌겠지만, 적어도 당시 20대를 막 진입했던 40대들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시절이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던져야 했던 절박함을 공유했던 그들만의 순간이 우리 역사 속에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위 '분신정국(焚身政局)'이라 불려졌던 1991년 4월의 일이다. 정확히는 4월 26일부터 시작해서 6월 29일까지 60여 일에 이르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기 동안 대학생, 사회활동가 11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시위 도중 경찰 폭력적인 진압에 의해서 사망한 학생들도 2명이나 있었다.
오죽했으면 시인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시를 지어 젊은이들의 연이은 자살을 중단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저항시인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게재한 그 시는 파장도 만만치 않아서 수많은 학생들과 지식인, 노동자들이 배신감을 느끼며 좌절했다.
나에게 1990년대는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다. 좌절과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던 1991년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새봄이 왔을 때는 종로나 대학로, 신촌 같은 젊음의 거리에서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하루 종일 울려퍼졌다. 언론에서는 그 세대를 일컬어 'X세대'라 칭했다. 1970년대 태어난 20대들을 당시의 기성 세대들은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 지 몰랐다. 누구인지, 그들이 무얼 원하고, 무엇을 추구하려는지 정확히 규정지을 수 없는 당혹스러운 세대의 출현이었다. 돌이켜 보면 집단이 중심이 되던 시대에서 개인으로 무게 중심이 넘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후배들을 이기적 유전자들이라 놀리곤 했다.
그때의 'X세대'들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갔고, 2021년 지금 40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전교조 교사들이 교문 밖에서 쫓겨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학생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잃어가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이기도 하다. 승리보다는 좌절을 먼저 경험했던 세대다. 정치적으로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을 지켜보며 자책감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던 세대들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은 그들에겐 비극의 탄생이었고 복수의 시작이었다.
비극을 즐겼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비극의 주인공들과 동일시했다. 물론 오늘날의 비극을 경험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는 비극의 경험치가 높게 나타난다. 비슷한 시기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586세대들과는 차별화된 비극이다. 1980년대 그 시기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586들에게는 단 하루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죽음을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그 시대가 지닌 특징이었다.
그에 비하면 1990년대는 한치 앞을 확신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이기도 했다. 죽음 자체의 성격과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80년대와 달리 90년대의 죽음은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어졌다는 특수성도 지니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목숨을 끊고, 심지어 공권력은 유서대필 사건까지 조작해서 누군가의 희생을 매도하는 일도 벌어졌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계속해서 이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붕괴, 자유를 향한 동유럽 젊은이들의 탈출 행렬은 이전까지 확고부동했던 이념 지향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현상이기도 했다. 그 시기를 보내면 혼란과 좌절 속에 방황하고 있던 후배들을 챙기는 일에 마음이 쓰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많지 않았던 시기였다.
'민주화의 꽃을 지키기 위해 절규하던 세대'
나의 경험을 정리해 보자면 586세대나 그 이전의 4.19세대들이 민주화의 씨앗을 심은 세대들이라면, 40대들은 민주화의 꽃을 지키기 위해 절규했던 세대이다. 그래서 이념이나 이론보다 공감에 주목하는 세대들이 바로 40대들이 아닐까. 문제는 민주화의 꽃과 열매를 586세대들에게 상당 부분 양보 내지는 빼앗겨야 했다는 데 있다. 실제로 한 조사에 의하면 40대들의 정계 진출은 다른 윗세대들에 비해서 미약하다.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박탈감은 기업에서도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자신보다 상사이자 윗선배인 50대 권위주의에 복종하면서도 반대로 2,30대 후배 세대들에게 뭐라 꼰대짓 하기에 머쓱해지는 특성을 지닌다. 선후배 사이의 서열과 연공에 충실하고 복종해야 하는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면서, 20대부터 몸에 밴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인해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키지도 못한다. 당연히 위와 아래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일상의 박탈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들을 가리켜 '낀세대'라 조롱 섞인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에게도 힘든 40대가 있었다. 그 시기가 힘든 이유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교육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몸집이 커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방 두 칸짜리 전세집이 좁아보이는 시기이기도 했다. 혈기왕성했던 2,30대에 비해서 왠지 모르게 건강에 대한 걱정도 슬슬 시작해야 하는 때이기도 했다. 당연히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다른 한눈을 팔 수 없는 시절이었다.
어쩌면 40대들의 정치 지향에서 일종의 갈라파고스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함께 좌절을 경험하고 힘든 시기를 통과해야 했던 세대감으로 집단적인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끼진다고나 할까. 뭔가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누구보다 많은 세대가 아닐까. 그걸 지키기 위해서 실제로 40대들은 이런저런 형태의 모임이나 조직적 연계 역시 다른 어떤 세대보다 활발하다.
나에게 40대는 마치 인생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던 시간과 공간이기도 했다. 돌아 보면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한 장 한 장 스크랩했던 싸이월드 사진첩밖에 특별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로지 나 자신보다 나의 분신들을 위해서 충실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누구보다 바빴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워야 생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뭐,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40대를 위해 변명, 이 글을 쓰면서 제목을 뭘로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50대 입장에서 40대들에 대한 변명을 할 만큼 그 세대들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오해다. 애초에 그럴 의도 따위도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적지 않은 사회 현상을 경험했지만 이번 보궐선거처럼 독특한 정치 구도가 나타난 것을 본 적은 없었기에 호기심이 들었다. 문득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던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걸 한 편의 글로 옮겨보자는 생각이 오늘 아침 문득 들었을 뿐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고, 반대로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하나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40대 후배들 몇몇과 이야기를 나눴다. 좌절에 이미 오랫동안 익숙했던 40대들이었지만, 진짜 강렬했던 좌절은 노무현의 죽음이었다. 자신들이 완성시켰던 평범한 서민들의 우상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깊은 절망감이 공존했다. 그 마음속 아픔을 우리 중 어느 세대가 제대로 위로해줬을까?
나를 돌아본다. 공교롭게도 주위에 40대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내가 떠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내 곁을 떠난 것인지 때로는 불분명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과거의 어느 한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따듯한 위로의 차 한 잔 같이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부디 그들이 이제 마음의 짐을 벗고 조금은 자유로와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