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코로나 시대 이후 영화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by 김덕영

영화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 4일, 이날은 지금까지 영화진흥위원회가 통합전산망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인원이 극장을 찾은 날로 기록되었다. 당일 영화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총 1만 4519명. 등록된 스크린수가 3,015개인 것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극장 한 곳 당 평균 4.8명의 관객들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말 그대로 지금 극장은 거의 텅 빈 상태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해 영진위 보고 자료에 의하면 전년 대비 매출이 70% 가량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비단 우리만의 현실은 아니다. 전세계 영화관 박스오피스 매출 역시 코로나 이전 423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로 72%나 줄었다. 국내나 국외 비슷한 수치로 감소했다는 것은 결국 영향을 미친 변수가 동일했다는 뜻이다. 신작 개봉이 감소되면서 이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이 재개봉되면서 오히려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길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달콤한 팝콘 한 봉지 사들고 연인과 함께 다정하게 영화를 관람하던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한때 직장 다니는 젊은이들은 밤늦게까지 술자리 회식으로 몸을 축내는 것보다 단체로 영화에 가서 회식을 대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지도 별로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젠 더 이상 그런 모습을 극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몰고 온 일상의 새로운 모습이다.


영화제작자 입장에서도 이젠 대박의 꿈을 접어야 할 시점이다. 극장 대신 등장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이 대안이 되고 있다고 하지만, 입도선매 방식으로 개봉 전부터 가격 흥정이 결정난다. 심지어 콘텐츠를 갖고 있는 자가 주인 노릇하기도 어렵다. 극장으로 향하던 영화들이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몰리다 보니 경쟁도 상상을 초월한다. 될만 한 영화가 아니면 설자리도 없다.


그동안 30여 개의 독립영화 전용관을 짓고 기금 지원 등으로 한국 영화의 기초를 다지던 작업들도 다시 리셋되고 있다. 각자도생, 스스로 자기 살길을 찾아서 살아남아야 하지만 상업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을 반갑게 맞아줄 공간은 인터넷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는 이제 영화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실 코로나는 변화된 영화 환경을 좀 더 빨리 앞당겼을 뿐이다. 이미 변화는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부터 '극장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는 의미다. 생활 방식이 변하고 모바일을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의 성장 속에 이미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패턴도 바뀌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극장을 가는 게 아닙니다. 영화관에 갔고, 거기서 시간에 맞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요즘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패턴입니다. 당연히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매표소 앞에 길게 선 줄을 보고 영화를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던 때가 차라리 흥행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배급 쪽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지인의 말이었다.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최근엔 아예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사무실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재택 근무라고 듣기 좋게 말은 하고 있지만, 당연히 연봉 삭감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영화를 위해 밤새워 일하던 시절, 그때의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왠지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는 지금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에 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2019년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제작을 마치고 1년 만에 귀국했을 때가 떠오른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더 있었다. <작지만 강한 축구(Small But Strong)>(미개봉)라는 벨기에와 아이슬란드 축구를 현지에서 직접 취재해서 만든 작품들이었다. 그 작품의 세일즈와 프로모션을 위해서 소위 마케팅 업계의 전문가들을 만나고 다닐 때의 이야기다.


"CGV가 매각될 것 같다고 하네요. 수익성이 감소하고 있나 봅니다."


뜬금없이 'CGV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기 전 얘기다. 영화 <기생충>이 미국 전역에서 개봉을 하면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점이었다. '미키 리'(CJ부회장 이미경)가 구성한 특별지원팀이 아카데미 수상을 목표로 미국 곳곳에서 100번의 화려한 파티를 목표로 뛰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파티 한 번에 1억 원을 쏟아 붓는다고 하니 제작비에 버금가는 비용을 아카데미를 향해 투자한 셈이다. 아카데미 수상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아까운 돈도 아니다. 다만 앞으론 그런 영화제 수상을 목표로 하는 마케팅 역시 쉽게 찾아긴 어렵게 됐다.


그래도 역시 자본은 힘이 세다.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문제는 힘없는 독립영화, 예술영화, 소위 작가주의 영화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가 아닐까 싶다. 뿌리 없는 나무가 오래 버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궁여지책이지만 창작자들에게는 대박의 꿈을 접고 '다품종 경량화'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하기보다는 작품의 세일즈를 먼저 고민하는 기획이 더욱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팔리는 것을 목적으로 영화 제작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사실이 창작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겠지만, 역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영화제의 위상, 영화제의 기능 역시 변화할 것이다. 영화제가 개최되는 시점을 중심으로 간지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는 기존 영화제보다는 연중 계속해서 영화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영화가 살아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개막식의 화려한 레드 카펫에 들어갈 비용을 분산시켜 작가주의 영화들이 생존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영화제가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무대가 아니라 사시사철 관객과 소통하고 영화 제작자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어디선가 시네마 천국의 꿈을 꾸는 자들이 있기에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 영화를 통해 인생의 재미를 느껴왔던 우리들 삶의 패턴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험난한 시대 영화라는 인생의 무대에 오른 그들 앞길에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바란다. 언제나 그랬듯이 행운은 포기하지 않는 자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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