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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Feb 16. 2016

'그린존' 을 뛰쳐나와  
'지혜의 집'으로!

이라크 바그다드 리포트

이라크 바그다드 리포트


'그린존(Green Zone)'을 뛰쳐나와 '바이트 알 히크마',  '지혜의 집'으로!


2013년 5월 3일 나는 총성이 멎지 않은 이라크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당시만 해도 바그다드에 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과의 전쟁은 끝났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가 격돌하면서 크고 작은 테러와 국지적 전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나 '이라크의 미래를 위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것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종파적 갈등에서 시작된 것임을 역시 누구다 다 알고 있었다. 불쌍한 건 그 의미 없는 전쟁에 수많은 아이들과 여자들이 희생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그다드 골목길에서 마주친 경호원들

매일 반복되는 이라크 곳곳에서의 크고 작은 폭탄 테러들, 철없는 아이들을 겨냥한 것은 분명 아닐 테지만, 힘없는 아이들은 그 테러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목숨이라도 건진 아이들은 다시 평생을 불구가 되어어 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한다. 그나마 그건 완치가 된 아이들에 국한된 이야기다. 나머지 숫자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수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병원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통을 신음하고 있다.


나의 취재 목적은 테러로 파괴되는 도시 바그다드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과 전쟁이 파괴시킨 문명의 현장들을 리포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취재 포인트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바이트 알 히크마', '지혜의 집'이라 불렸던 이라크 국립도서관이었다. 중세 문명의 암흑기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원전들을 아랍어로 번역해서 다시 르네상스의 바다로 돌려주었던 바로 그곳. '세상 모든 책을  번역하라!'. 공교롭게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예들은 책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 그대로 세상 모든 책들을 번역하려 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 문화의 소중한 유산들은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졌을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의 성지로 생각하는 곳, 바로 이라크의 '바이크 알 히크마', '지혜의 집'이다. 21세기 오늘로 치자면, 이라크 국립도서관이 바로 그곳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 문명의 보고라 불렸던 이라크 국립도서관이 얼마나 파괴되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바그다드 취재는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사전에 허가받아야 할 것들도 많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외교부에서 발급해주는 '예외적여권사용허가서'를 발급받는 일이었다.


바그다드 입국의 필수요건, '예외적여권사용허가서'


'예외적여권사용허가서'란 영어로 표기된 것처럼 'Special Permission to Visit', 즉 '방문 특별 허가서'다. 그걸 그렇게 어려운 말로 써놓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외적'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뭔가 권위적이고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현한 제목임에는 분명하다. 한 마디로 '가지 말라는 금지 구역에 당신이 우겨서 들어갔으니, 우리는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질 수 없다'라는 말을 좀 거창하게 한 것임에 분명하다.


어쨌든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비자를 발급받아 본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여행허가서'를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그것도 '예외적여권사용'이라는 좀 불쾌한 수식어가 붙은 건 더더욱. 이 한 장의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서는 이라크로의 출국이 불가능하다. 만약 이 허가서를  받지 않고 이라크에 잠입할 경우, 귀국과 함께 1년 이하의 징역과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다. 여행과 관련된 법률 중 매우 엄격한 것임이 분명하다.


'예외적여권사용허가서' 발급을 위해서는 사전에 몇 가지 중요한 자료가 첨부되어야 하는데, 그중에는 1억 원 상당의 상해보험 가입 증명서, 이라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비상 상황 대한 책임이 대한민국 정부와는 무관하다는 내용을 담은 서류에 자필 서명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이라크 현지에 도착해서 자신들의 신변 안전을 책임지는 무장 경호업체와 계약한 증명서도 첨부 대상인데, 중요한 건 이 경호업체와 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방문자 한 명 당 1억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론 기간이나 방문 목적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그나마 나의 경우에는 이 한 장의 허가서를 발급받아 무사히 이라크를 다녀올 수 있었지만, 귀국 직후인 2013년 6월부터는 이마저도 발급이 중단됐다. 이라크 정정이 불안해지고 테러가 더욱 기승을 부려 이라크 현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외교부가 판단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라크라는 나라는 들어가는 일부터가 하나의 험난한 여정 그 자체였다.


티그리스 강을 둘러싼 10제곱킬로미터의 성벽, 그린존(Green Zone)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일행을 태운 경호차량 운전사는 공항 고속도로로 진입하자마자 자동차의 액셀을 힘차게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공항에서 바그다드 도심까지 이어지는 공항 고속도로가 한때는 '죽음의 도로'라 불렸다고 관광가이드처럼 친절한 설명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실제로 전쟁 직후 이 도로는 외국 외교관이나 기업인들을 타깃으로 삼아 저격수들이 활동했던 곳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아직도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한 지역이기도 했다. 그의 말을 듣자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언제 어느 곳에서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내가 있는 이곳은 내가 TV 뉴스로만 보던 사진과 비디오 속의  바그다드가 아니었다.


잠시 후 크고 작은 대여섯 번의 검문소를 통과하자  드디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젖줄기, 티그리스 강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강을 둘러싸고 있는 끝없이 이어진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영화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그린존'이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고 역설적이게도 전후 복구와 치안 유지 사업을 맡은 건 미군이었다. 미국 대사관과 이라크 국회, 대통령 집무실 등이 자리 잡고 있는 바그다드 내의 반경 10제곱킬로미터의 지역에는 분단 독일의 베를린 장벽과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설치됐다. 오로지 목적은 각국 공관과 이라크 주요 정치인들을 보호하는 것. 이라크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거의 대부분 그린존 안에 있는 호텔 내에 여장을 푼다. 당연히 우리들 일행의 목적지 역시 바로 그린존이었다.


바그다드에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건 거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중무장 장갑차, 거리 곳곳마다 배치된 군인들, 그리고 건물 곳곳에 설치된 감시초소가 바로 그 증거였다. 그래도  네온사인으로 조명을 밝힌 상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속에서는 활력이 느껴졌다.



여장을 풀고 우리 일행은 바그다드 방문의 첫 번째 목적인 이라크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부상당한 아이들을 치료하는 병원이었다. 그때 커다란 물병을 가슴에 들고 병원으로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다.  처음엔 생수를 배달하러 온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들고 있는 생수통 만한 크기의 물병에 진한 노란색 액체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물병 입구에는 노란색 고무줄이 달려 있는 것도 보였다. 난생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난 노란색 고무줄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결국 고무줄은 아이의 오른쪽 가슴 한복판에 가서야 멈췄다. 고통에 겨워 찡그린 표정을 짓던 아이, 난 그 아이와 시선을 피했다. 적어도 그것이 몸이 아픈 아이에 대한 예의라 여겼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된 치료 시설이 부족한 현실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생명의 줄을 이어가고 있는 한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바그다드는 들어올 때도 힘들었는데, 머물기도 힘든 것일까...



그렇게 하루 이틀의 일정이 흘렀다. 드디어 내 취재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한 '이라크 국립도서관'을  방문하는 날이 됐다. 그날은 이라크 문화부에서 차관급 직원이 직접 현장에 나와 취재진을 에스코트했다. 중무장한 장갑차와 트럭들도 함께 딸려 왔다. 우리나라 의료진과 취재진을 태운 석 대의 차량까지 합치면 십 여대의 차량이 동시에 그린존을 벗어나서 바그다드 도심을 달렸다.


처음엔 우리가 가는 이라크 국립도서관이 꽤 먼 곳에 위치한 곳이라고만 여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려 2시 간을 소요해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늦게 도착했으니 일정 상 취재진에게 부여된 시간은 고작 30분. 그 시간 안에 도서관 안의 정경과 전쟁 때 파괴된 책들을 복원하는 작업, 도서관장 인터뷰까지 다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통보를 통역관을 통해  전달받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도서관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카메라에 영상을 담았다.


파괴된 고문서를 일일이 손으로 이어 붙이고 있는 이라크 국립도서관 직원

예정된 시간이 지나자 멀리서 경호팀 팀장이 직접 달려와서 '빨리 이동하자'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나에게 부여된 30분이란 시간이 너무 아깝고 부족했다. 눈으로 본 이라크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의 현장은 참혹했다.


'시간이 부족한데 30분만 더 있으면  안 될까요?' 아무리 부탁을 해도 소용없는 일. 문화부 차관까지 대동한 일행은 이미 경호차량 안에 탑승해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 어쩔 수 없이 도서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국립도서관장이 밖으로 나와 일행을 배웅했다.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그는 국립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런던에서 목숨을 걸고 테러가 한창이던 때 바그다드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던 터라, 여간 미안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니었다. 손을 놓으려는데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걸 봤는지 그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움켜쥐더니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그때는 그가 건넨 명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한 장의 명함은 다음날 나에게 아주 큰힘이 되어주었다.  


일정을 마친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마음이 불편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책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장의 마지막 인사말이 귓전을 울렸다. 스마트폰으로 꺼내 바그다드 도서관 주소를 입력했다. 그냥 위치라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은 내가 머물고 있는 그린존에서 불과 4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걸 두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니. 뭔가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취재를 방해하기 위해서 일부러 경로를 우회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그날 밤 나는  난 정식으로 이라크 경호팀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를 꺼내 목적지까지 경로를 우회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안정상의 이유' 때문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원론적 답변만 나왔다. 나는 이라크 국립도서관 취재의 부족한 부분을 다음 날 다시 보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경호팀장은 다음날 일정이 이미 약속된 거라서 취소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격론은 새벽 1시까지 이어졌고 결국 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은 원래 계획된 일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는 그린존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린존은 통행증을 지닌 자에 한해서만 통행이 가능하다. 나와 같은 외국인들은 통행증을 소유한 경호원들 없이는 그린존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를 그린존 안에  버려두고 가도 결국 국립도서관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속셈이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난 내일 꼭 바이크 알 히크마, 지혜의 집까지 갈 것이다!'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떤 수로 그린존을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게이트를 통과해서 밖으로 나간다고 치자,  그다음은? 택시는 물론이고 대중교통조차 제대로 운용되고 있지 않은 바그다드에서 무슨 수로 국립도서관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날 밤 나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잠을 설쳤다.


오전 7시, 알람이 울렸다. 침대를 정리하고 서둘러 샤워를 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따듯한 물줄기 아래 서서 오직 '갈 수 있어'라는 말만 뇌까렸다. '방법이 있을 거야', '여길 어떻게 왔는데...'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고 호텔 로비로 나갔다. 이미 일행들은 짜인 일정에 따라 경호차량에 탑승해서 어디론가 떠난 상태다. 텅 빈 것 같은 호텔 로비를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그린존을 빠져나가 '지혜의 집'으로 달려가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때로는 믿음이 현실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날 나를 둘러싼 현실이 그랬다. 나의 간절한 믿음 아래 그렇게 높아 보이기만 했던 그린존의 콘크리트 장벽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렸던 것 같다.


오전 9시. 문득 나는 주머니 속에 구겨져 있던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바로 어제 만났던 국립도서관장의 명함이었다. 명함 속에는 그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신호음이 울리고 휴대폰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그곳에 취재를 갔던 한국에서 온 김PD입니다."


나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그가 약간은 놀란 눈치다. 나는 어제 내가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도서관까지 가는 경로가 일부러 우회되었고 교묘하게 짜인 취재 방해를 받았다는 말까지 솔직하게 꺼냈다. 곧이어 그의 답변이 이어졌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라크 정부는 도서관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목숨을 잃은 사서도 있습니다. 도서관 안에 총알이 날아와서 박혔던 적도 있죠. 정부는 도서관 문제가 커지는 걸 원하지 않고 있어요. 테러와 문명의 파괴가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의 미래에 돈을 투자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지금 정부는 이라크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그제야 어제 갑작스럽게 일행에 합류한 문화부 차관과 무장 경호원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확신이 들었다. 늦었지만 잘못된 걸 되돌리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도움이란 크게 두 가지다. 그린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달라는 것이 첫 번째, 그린존에서 국립도서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을 보내달라는 것이 두 번째였다.


"차량은 저희 직원을 시켜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린존 밖으로 나오는 건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통행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남았다. 그린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도서관까지는 관장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가면 된다. 방법이 생긴 것이다. 나는 다시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린존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내면 된다.


그린존에서 6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국립도서관은 10여 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던 같기도 하다. 만약 그때 무하마드라는 이름을 가진 경호팀 운전자가 호텔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난 밖으로 나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사람에게 진실하게 대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무하마드는 내가 이라크에 도착해서 마음을 터놓고 가장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뚱뚱한 배를 불쑥 내밀고 이마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려 호텔 로비로 뒤뚱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그가 보였던 것이다. 그에게 달려가서 아는 체를 했다. 무하마드 역시 일행과 떨어져 있는 나를 보자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다짜고짜 그린존 안을 구경시켜 달라고 졸랐다.


사실 그린존 안에는 상당한 볼거리들이 있다. 대부분이 독재자 훗세인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든 건축물들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검이 교차하는 상징물에서부터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도 있다.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한다는 미국 대사관도 그 안에 있다. 나는 무하마드의 차에 올라 그린존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있는 군인들을 만나면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을 보냈다. 슬슬 이제 본심을 드러내야 될 때가 왔다. 어떻게든 그린존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무하마드의 손에 달려 있다.


"무하마드, 저기 있잖아. 나 어제 갔었던 국립도서관엘 좀 가야 하는데..."

"거긴 왜?"

"관장님 인터뷰를 다시 해야 해. 어제 촬영한 게 잘 안 됐어."

"거길 어떻게 가게?"

"관장님이 직원을 시켜서 차를 보내주겠대"

"그래?!"

"그래서 말인데. 나 그린존 게이트 바깥에까지만 데려다 주라."

"거긴 왜 가려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너희 나라 이야기를 제대로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무하마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았어!"


세상에! 난 그의 입에서 "안돼!"라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알았어"라는 답변이 나온 것이다. 하긴 그는 그린존을 통과할 수 있는 통행증을 소유한 상태이고 그린존 통과에는 다른 서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직 통행증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무하마드는 차를 돌려서 그린존 서쪽 게이트로 나를 데리고 갔다. 멀리서 무장한 군인과 장갑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었다. 그린존 서쪽 게이트에 내려져 있던 차단막 앞으로 차가 바짝 다가섰다. 게이트를 지키는 무장 군인이 다가왔다. 무하마드가 안주머니에서 통행증을 꺼냈다. 이미 두 사람은 안면이 있는 사이. 서로 몇 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인사를 나눈다. 나도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드디어 차단막이 올라갔다. 무하마드는 도서관 직원 차량과 약속한 바로 그 장소로 나를 데리고 갔다. 무하마드에게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서 다른 차량으로 옮겨 탔다. 도요타 은빛  SUV였다. 옆면에는 '국립도서관'을 알리는 표식이 적혀 있는 차량이었다. 차가 움직이자 고개를 돌려 무하마드를 봤다. 그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서관 직원이 몰고 온 차에 타서 30분 만에 이라크 국립도서관에 도착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어제는 두 시간이나 걸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 관장실로 들어갔다. 어색하지만 반가운 두 번째 악수를 그와 나눴다. 그는 어제 보여주지 못했던 비극의 현장들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도서관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천장에 박힌 총탄 자국에서부터 사서가 살해되었다는 장소, 교전이 벌어져 구멍이 송송난 도서관 벽면까지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문명에 멀어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각성하는 시민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부담이 될 테니까요. 이라크 정부가 도서관 복원을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없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알고 외국 도서관들이 우리를 위해 기금을 보내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누군가 도서관에 불을 질렀다.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동시에 건물 안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수 천 년 문명의 기록을 남겼던 책들이 그렇게 젖었다. 화재로 불태워진 책들도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심지어 돈이 된다고 생각한 고문서들은 약탈범들의 표적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찢기고 불에 그으린 책들을 그냥 버릴 수 없었다.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은 이라크 비극이 감춰진 또 하나의 현장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전쟁은 영웅을 낳는다. 역사는 어차피 승자를 위해서 쓰일 수밖에 수 없겠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이라크를 위해서 도서관을 지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켜낸 것은 인류의 양심이었고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문명 한 페이지였다. 사드 바쉬르 에스칸더 관장과 그와 함께 도서관을 지킨 십여 명의 사서들도 그런 점에서는 용기 있는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에 경의를 보낸다.


2015년 에스칸더 관장을 비롯해서 이라크 국립도서관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아쉽게도 그들과의 재회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전화로 다시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현재 이라크 국립도서관의 복원 사업은 세계 여러 나라들의 지원 속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바이크 알 히크마', '지혜의 집'이 우리 앞에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라크 국립도서관 사드 바쉬르 에스칸더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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