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60세 나이에 새로운 악기에 도전했다
어제는 색다른 경험을 두 가지 했다. 하나는 미래에셋 은퇴연구소가 제작하고 방송하는 팟캐스트 '행복한 은퇴 발전소'라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연습했던 우쿨렐레를 드디어 써먹게 된 일이다. 특히 우리 공간에서 하와이안 훌라 댄스 공연을 벌써 몇 년째 하고 있는 이다 요시코와 함께 훌라 곡을 연주할 수 있었던 일은 낯설면서도 유쾌한 일이었다.
좀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낯선 훌라 곡을 나에게는 낯선 악기일 수밖에 없는 우쿨렐레로 연주하면서 갑자기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 나이 60에 난생처음 리라라는 현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바로 그 소크라테스 말이다.
'역시 이유가 있었어... 어쩌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바로 이 감정을 소크라테스는 60세의 나이에 낯선 악기 하나를 통해 깨닫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사실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PD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사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누빈 건 몇 년 KBS '세계는 지금'이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테러로 망가지고 있는 이라크를 취재한 것이 마지막이다. 그땐 참 용감했다. 물론 요즘엔 '동네TV'라는 걸 통해 서촌 통의동의 골목길 이야기를 담은 동영상을 SNS를 통해서 만들고 있기는 하다. 방송을 제작하는 긴장감이나 어떤 권위 같은 건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동네TV'를 통해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을 전달하는 재미가 있다.
공연을 마무리하는 날이 되면 꼭 우리 가게를 방문하는 이다 요시코 씨. 그녀와 함께 어젯밤에는 훌라 송도 하나 불렀다. 'Pua lililehua'라는 노래로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이번 이다 씨의 훌라 공연 때 내가 제일 감동받았던 곳이었다. 멜로디가 너무 마음에 들고 아름다운 곳이라서 모처럼 우쿨렐레를 꺼내서 큰 맘먹고 연주도 했다. 나중엔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곧바로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주는 게 재밌다. 별 거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생활 속의 작은 발견을 같이 나누는 게 행복하다. 누군가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 재밌게 산다." "어쩌면 그렇게 젊게 사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늙어가는 게 아닐까. 몇 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발견한 뒤늦은 나이에 자신이 진정 바라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도 바로 '나이를 잊고 사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했다. 나이가 주는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자신을 가두는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그게 무엇이 됐든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언젠가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사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무척이나 철학적이다. 좀 무겁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을 성찰한다. 인간이 '시간'의 개념을 인지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시간'과 '나이'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시간'이 성찰을 준다면, '나이'는 짐을 준다. 이유는 '시간'은 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연속성 속에서 파악되는 데 반해서, '나이'는 무조건 과거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떠올리면서 십중팔구 우리는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과는 조금 다른 개념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적어도 내가 발견한 뒤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유쾌하게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 중에는 분명 나이를 잊어버리는 요소가 있었다. 사실 나이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 조금은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불편하다.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렇게 늙어가고 싶진 않다. 나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과거에 비교해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2,30년 동안 인간의 수명만큼 그렇게 급속도로 증가율을 보인 것도 없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은 18세였다. 스무 살 청춘이 곧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기원 후 100년 경 로마 시대는 수명이 25세로 늘어났다.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14,5세기 때는 30대 중반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은 남들보다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인생을 산 셈이다.
1900년 대에는 들어와서도 그리 가파른 상승세는 아니었다. 그 당시 인간의 평균 수명은 대략 47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증가유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금 인류의 평균수명은 71.4세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아니다, 인류다. 어느 나라 사람이 아니라 그냥 이 지구 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평균수명이 그렇다는 뜻이다. 나라 별로는 일본이 83.7세로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82.3세로 11위에 올랐다. 대단하지 아니한가! 앞으로 2020년 경에는 최빈사망나이(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나이)가 80세로 이를 전망이다. 장례식에 조문을 가서 영정 사진에 젊은 사람들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문제는 그렇게 나이 든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으로선 정확히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다.
어쨌든 갑작스럽게 늘어난 인간의 평균 수명 덕분에 좋은 점도 있지만, 동시에 문제도 생겨났다. 인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노년을 준비하지 않으면 삶이 무척이나 고달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참하게 노년을 살아가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재밌게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것은 결국 '자존감'있는 인생을 사느냐 비참한 인생을 사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자존감은 돈과 건강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는가, 아니면 주어진 평균수명 조건에 맞춰서 억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의 여부는 바로 이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요즘 강연을 하러 다니다 보면, 3,40대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비록 이제 겨우 4,50대에 접어든 나이지만, 고민은 본질은 다를 수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미리 미래를 준비하려는 동기가 그들을 강연장으로 이끌고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그들이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다. 은퇴 연령이 낮아지고, 퇴직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한 순간의 선택은 곧 노년기 2,30년의 삶을 결정짓는 변수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뒤늦게 자신의 인생에서 보람과 목표를 찾은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바로 그 순간부터 본격적인 인생의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들은 부동산이나 주식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는 점이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뭐든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선 것이다. 돈이 많아서 한가롭게 여유를 부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78세에 태어나서 처음 붓을 잡고 화가의 길을 걸었던 가난한 농부의 아내 그랜마 모제스는 그림물감 살 돈이 없어서 꽃을 따서 물감을 만들었다. 노란색 꽃을 빻아 노란색 물감을 만들고, 빨간색 꽃을 따서 빨간 색칠을 했다. 순간순간 자신의 인생을 즐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때로는 취미나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직업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거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를 즐기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아나갔고, 사진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사진을 촬영하면서 미학적인 즐거움을 얻어 나갔다. 때로는 그것이 큰 수입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아마추어에 불과한 지식이라도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가도 넘볼 수 없는 훌륭한 전문지식으로 변한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뒤늦게 인생의 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취미나 좋아하는 일에 일찍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글을 마칠 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믿었던 사람들. 우리는 그들 모두의 삶을 다 기억할 순 없다. 단지 인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사람들, 영웅처럼, 때론 별처럼 우리 앞에 삶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인생을 나이의 순서대로 한 번 되돌아보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먼저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인 예술가 미켈란젤로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그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설계할 당시 그의 나이는 55살이었다.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절반밖에 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55살이라는 나이는 무척이나 늦은 나이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63세에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그가 성당 건축을 맡게 되었을 때, 나이가 들어서 노쇠해진 그에게 성 베드로 성당 건축처럼 막대한 비용이 드는 큰 공사를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천재란 곧 끝없는 인내심이다."
덕분에 그는 반대 여론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창조적인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최고 역작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었다. 그의 나이 무려 89세 때 일이었다. 40,50세만 돼도 삶을 마감할 당시에 그는 무려 90세까지 정렬적으로 살면서 창조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이런 인물들은 의외로 많다. 독일의 괴테, <파우스트> 완성 당시 83세.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 1,093개의 특허 출원, 그가 마지막으로 특허를 출원했을 당시 나이는 83세. 벤자민 플랭클린은 노안 때문에 이중초점 렌즈를 개발했다. 당시 78세였다. 그리고 그가 미국 헌법의 기초를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폴란드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95세까기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전 세계에 거미 조각상 '마망'을 설치한 예술가, 루이 부르주아는 99세까지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마사 그레이엄은 78세 다시 무용계에 복귀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가 마지막 역작 ‘판단력 비판'을 쓸 당시, 그는 78세였다. 영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을 당시 나이, 90세. 아이작 뉴턴, 85세까지 연구, 저작 활동 계속함......
인간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늙는다’. 나는 어제 낯선 악기 우쿨렐레와 역시 낯선 노래 하와이안 훌라 송을 노래하면서 그걸 머리가 아니라 몸을 확인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어쩌면 당신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글: 김덕영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뭔가 특별한 인생, 재밌는 일상을 같이 공유하길 원하는 분은 언제든 서촌의 골목길로 발걸음을 한 번 옮겨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