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혼자서 늙어갈 것인가?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후편을 준비하며

by 김덕영

'김PD의 인문학 여행' (29)


'상처 난 나무 위에도 새들은 찾아온다.'


솔직히 갈수록 사는 게 별로다. 즐겁고 재밌는 일보다는 지루하고 짜증 나는 일상의 반복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비슷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과와 보상이 따라야 하는데, 요즘 하는 일은 죄다 현상만이라도 유지하면 다행이니... 나이가 들면서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늘어야 한다. 수입이 늘던가, 아니면 지위나 신분이 상승하던가. 둘 중 하나도 늘지 않는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지금 나의 경우도 어떤 면에선 그렇다.


게다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나에겐 부담이다. 나의 경우엔 아침에 일어나서 왼쪽 눈에 안개라도 낀 것 같은 느낌이다. 왼쪽 정강이 근육이 힘을 쓸 때마다 고통이 따라온다. 견갑골도 오른쪽보다는 왼쪽이 쑤실 때가 많다. 오른쪽보다 왼쪽에 문제가 생기는 비율도 8대2 정도로 차이가 크다. 의학적으로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걸까? 논리적으로는 오른손잡이인 나의 경우에 사용비율이나 강도 면에서 오른쪽이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머리를 쓰는 것과 몸을 쓰는 것이 서로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런 문제들이 요즘 나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소한 고민거리들이다.


쓸데없는 소리를 아침부터 늘어놨다. 그 정도로 요즘 별로다. 서촌의 골목길 까페도 하루에 손님이 서너 테이블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인적도 드문 골목길에서 재즈 공연도 하고 신인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는 기특한(?) 활동 덕분에 등 뒤를 묵묵히 밀어주는 단골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간신히 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겨울은 늘 정치의 계절이었던 같다. 아마도 선거가 늘 겨울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머리로 몸으로 학습된 건 그렇게 사람의 무의식까지 깊숙이 스며든다. 올해의 겨울은 더욱 정치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부정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이젠 누굴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때부터가 '자기'가 서는 순간임을 어느 누가 또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혼자서 가야 한다. 어떤 상황이라도 인생은 결국 혼자서 떠나는 외로운 여행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그건 변함이 없다. 혹독한 정치의 겨울을 맞고 있는 걸 혹자는 '정치에 무관심한 탓'이라 하던데, 솔직히 그건 아니다. 우리만큼 정치에 민감한 사람이 또 어딨을라구. 그 힘으로 독재를 이겨낸 것인데. 중요한 건 이웃집 할머니 말대로 '거기서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이 혹독한 시절이 지나간다고 해서 혼자서 늙어가야 하는 시대를 비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멀지 않아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세상이 올 것이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잘 기억해낼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믿을 건 '나''자신'밖에 없다. '나 자신'이 아니라 '나'와 '자신'이라 구분한 것은 의식과 신체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엄격하게 구분하기 위함이다. 모든 실마리는 여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와 '자신'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늙어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 제대로 된 사랑 따위는 아예 모르겠노라 말하는 '사랑 포기론자'도 많다. 당연히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것은 관심도 없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그들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 미술계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인상주의 화가 렘브란트는 평소에 명화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화가가 그림을 수집한다는 게 좀 어울리진 않지만, 어쨌든 렘브란트에게는 그림에 대한 그런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문제는 그가 별로 많지도 않은 돈을 그림을 사는데 탕진하는 바람에 막상 자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렘브란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야경>이란 작품도 당시에는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이것은 초상화로 먹고살던 렘브란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일감이 줄어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마저 사망한다. 실의와 가난이 밀려오는 시기였다. 렘브란트 그 자신이 상처 난 나무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꺾인 나뭇가지 위로 날아드는 새를 나무가 훠이 훠이 쫓아낼 순 없는 법.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틈틈이 그림을 사 모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파산 선고를 하고 가난한 유대인 지구에서 생활할 때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끼니를 굶어가면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은 변하지 않았다. 돈과 명성이 뒤따르는 직업화가로서의 성공은 아니었지만, 그가 인류에 남긴 유산은 지대하다.


그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2천 점의 그림을 그렸다. 가난과 희망이 사라진 세상 속에서도 60 평생을 살다 갔다. 그 정도면 참 잘한 인생이었다. 그래도 난 이해가 잘 안 간다. 그런 궁핍한 삶 속에서 온갖 괴로움을 이겨내며 아름다운 그림들에 몰두할 수 있었던 그의 정신세계가 말이다. 게다가 번 돈의 상당 부분을 그림을 사는 일에 몰두했다니. 나로선 참 믿기지 않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를 힘겨운 인생을 살다 간 인간이라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나의 시선이다. 그가 그런 가난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명작을 사 모은 것으로 봐서 그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인생이 불행했다 단죄할 수 없다.


괴테는 1822년 렘브란트가 그린 '22세의 자화상'을 보고 삶의 방향을 잡아나갔다고 한다. 그는 우울과 방황으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는 생명이 없는 시신과 같으니 살아가지 않느니만 못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힘들고 고단해 보이는 인생도 다른 누군가에겐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의 그림과 삶은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무엇이 됐든 나이가 얼마든 인생을 포기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


NSC20150904_101838_edit.jpg <22세의 자화상>, 1628년


외롭더라도 혼자서 가야 할 길. 할 수만 있다면 잘 살고 가자. 난 그렇게 믿는다.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희망의 씨앗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씨앗을 땅에 심고 가꾸고 열매를 맺기까지 그 오랜 세월을 바람과 폭풍우 속에서도 견뎌내야 한다. 당신은 이제부터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선 한 그루의 나무다. 누군가의 눈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무는 숲이 아니라 언덕 위에 서 있을 때가 가장 신성하다. 성스럽고 아름답다. 누구라도 종이와 연필을 꺼내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홀로 서 있을 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부러진 나뭇가지들에도 새싹은 돋는다. 껍질이 벗겨진 상처 난 기둥이라도 바람을 막을 한 폭의 바람막이가 될 수 있다. 상처 난 나무 위에도 새들은 찾아온다.


나이가 들면서 눈의 희미해져 가지만, 마음의 눈이 빛난다. 기억력이 딸린다고? 대신에 지혜의 눈이 있다. 살아온 경험들이 모아서 분출시키는 직관의 샘에선 매일매일 단물이 솟구친다. 그렇게 늙어가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산책길에서 낯선 사람이라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렇게 홀로 길을 가야 한다.


이런 일상이 곧 우리의 삶이 되고 생활이 된다. 어떻게 할까? 외롭고 쓸쓸한 혼자만의 방에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하나의 작은 행동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평균 21일이 걸린다고 한다. 3주의 시간이다. 뭐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뭘 해도 집중해서 하기만 한다면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아니 우리 앞에 널린 게 시간이다.


방 안에 창문을 내고, 타인의 방들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고 그렇게 마음으로 혼자만의 방을 만들어야 한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든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방, 세상으로 열린 창문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하지만 제대로 산다면야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 조 E. 루이스


글: 김덕영 (작가 / 다큐멘터리 PD)



하루키에겐피터캣(표지).jpg '뭣 때문에 피터지는 레드오션,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하는가?' 인적도 드문 서촌 골목길에서 3년을 살아남은 한 까페 이야기. 자신의 스토리와 콘텐츠로 단골을 만들어라.
뒤늦게 표지.jpg 나이 들었다고 인생을 포기할 순 없다. 오히려 그때부터 재밌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멋진 인생을 살다간 35명의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내가 그리로 갈게 표지1.jpg 중년들의 사랑이야기에는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부제: 뒤늦게 발동걸린 사랑이야기.

김통스 노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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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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