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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Oct 30. 2022

직관의 배신

 과학이 즐거운 순간 중 하나는 직관이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이다. 그간 경험했던 세상과 키워왔던 통찰을 바탕으로 당연히 그러리라 예측했던 일들이 무너지는 순간. 예를 들면 내게 물체는 멈춰있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은 힘이 작용한 것이고 오히려 힘이 작용하지 않은 물체는 같은 속도로 직선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 같은 것이다. 평생을 내 주위의 모든 입자들과 함께 동일한 중력을 받으며 살아온 나로서는 선뜻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정말요? 제가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지금 무슨 말씀을' 같은 생각들로 전문가에게 덤벼보고 싶었지만 다행히, 생각만 했다. 정말 다행히도 말이다. 무식할 땐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는 게 낫기도 하다.

 등속직선운동이 기본값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는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는 착각이 든다. 어떤 날에는 말이다. 어떤 날에는 여전히 그렇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에 중력은 가장 약한 힘이고(네!!! 그렇다고 합니다. 저는 믿기지 않아요.) 물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주는 거의 텅 비어있으니 멈춰있는 것이 기본 상태로 느껴지는 것은 우주에서 아주 일부에만 적용되는 상황일 것이다. 우리가 그저 일부를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 뿐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옳다고 판단했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 관점에서의 질서가 우주 스케일에서는 아주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그런 순간들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드는 데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뒤통수를 슥슥 문지르며 뭐 신기한 거라도 있나, 때린 손을 쫓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가끔은 과학자들이 날 속이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그들은 동전을 무수히 많이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동일한 횟수로 나온다고 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동전을 꺼내, 자 보시라고 세상이 어디 그렇게 반듯하게 돌아가느냐고 한 시간쯤 동전을 던져 틀렸음을 증명하고 싶으나 그들은 그 반론조차 쉽게 예상하고 말한다. 무수히는 고작 내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정도의 횟수를 말하는 게 아니라고. 좋다. 동전은 고작 면이 2개이고 50:50의 확률이니까, 그리고 과학자들이 나보다 훨씬 잘 알 테니까, 미덥지 않지만 믿어보려는데 그런 내 앞에서 주사위 던지기에도 그것이 유효하다고 하면 내 직관은 다시 발끈한다. 어떻게 6개의 숫자가 마치 짰다는 듯이 동일한 확률로 나오는 게 당연한 것이고 보편이란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왜 기이한 우연이라고 하지 않는가. 무언가 그렇게 딱 맞아떨어진다면 그것은 행운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 나의 보편이고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범주의 무수히 이다. 나는 좀처럼 138억 년의 무수히를 가늠할 수 없다. 실은 그렇게 말하는 과학자들도 막상 6개의 숫자가 똑같은 횟수로 나온다면 신기한 일이니 로또라도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그들은 생각만 하다 말아 천원을 아낄 것 같지만.

 과학이 내 예상을 뒤엎고 충격적이었던 순간을 또 떠올려 보자면 광자에 질량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애초에 나는 빛의 무게 따위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인류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빛 속도에 대해 고찰을 해왔다는데 그 역사를 들으면서도 그들보다 훨씬 많은 과학 지식이 주입된 현대의 나는 그들의 노고에 감탄만 했을 뿐 빛의 무게를 궁금해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그들과 달리 빛이 입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빛은 입자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빛의 입자성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특별히 파동 같이 느껴지지도 않지만 물결도 빛도 만져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동이라는 건 오히려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빛에 무게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빛이 입자라는 게 이상한 일이지. 햇살이나 전등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광량이 많은 여름의 공기가 특별히 더 무겁지는 않다. 아침에는 비스듬한 압력이 가해지다가 정오가 되면 머리가 눌리는 것 같지도 않다. 식물등 아래 있는 내 식물들 역시 등을 켠다고 해서 고개를 더 숙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빛에 질량이 없다는 건 내 직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 문제는 빛에 물리량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광자는 당구처럼 그리고 컬링처럼 나아가 다른 입자를 탕 칠 수 있다고 했다. 무게도 없는데 말이다. 이건 정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질량이 없는데 물리량이 있다니. 0kg인 내가 누군가를 툭 쳐서 타인을 밀칠 수 있다는 얘기지 않은가. 일부에서 무게가 있다고 주장하는 영혼조차 영화나 소설을 보면 아무것도 밀치지 못하고 통과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질량이 없는 것에 물리량이 없다고 여겨지는 건 인간 중에 나만의 감각이 아닐 것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암흑물질이 덜 미스터리 하다. 투명망토를 입은 사람이 남을 밀치고 가는 일쯤이야 있을 법 한 일이지 않은가. 그저 투명망토만 있으면 된다. 질량도 없는 물질이 힘자랑하며 이토록 버젓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그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물질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힉스입자가 발견되고도 5년이나 더. 아니 10년이 된 최근까지도.

 힉스입자는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고 나오는 부산물 같은 거라고 한다. 암만 듣고 찾아봐도 뭔지 잘 모르겠지만 힉스장에 의해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일어나면 물질에 질량이 부여되고 힉스입자가 발생한다고 했다. (힉스입자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라는 말만 흘려도 전공자들 앞에서 뭔가 좀 아는 사람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원래는 모든 것에 질량이 없었다는 거다. 질량이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른 입자를 밀칠 수 있냐고 방방 뛸 일이 아니었다. 원래 그런 것이었는데 힉스메커니즘에 의해 입자들이 질량을 얻은 것이었다. 질량은 그저 추가된 항목이다. 빛이 이상한 괴짜라서 질량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남들은 힉스장과 상호작용해서 질량을 부여받을 때 빛은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고 38만년 후에 자유를 찾았으며 무게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고수해서 우리는 쏟아지는 햇빛에 짓눌리지 않는다.

 그런데 빛에 질량이 있는 우주가 존재한다면 낮에는 키가 줄어들었다가 밤에는 키가 자랄까? 반대로 힉스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가 존재한다면 입자들은 질량이 없을 테고 다이어트 같은 건 아무도 하지 않을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질량이 기본값이 아닌 마당에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생에 단 한 번도 질량이 없는 물질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질량은 너무나 당연하다. 물건이 있으면 무게가 있다. 빛 말고는 모든 것이 그렇다. 그래도 빛의 입자성은 그저 학습된 것이고 진짜 입자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큼이나 괴이한 알갱이로 치부하면 됐었다. 물론 힉스장에 의해 질량을 부여받지 않았더라면 모든 물질이 빛처럼 존재하고 우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 나는 존재하고 다른 것들도 존재하고 그것들은 모두 질량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생의 주기에서, 인류 생의 주기에서, 모든 별 생의 주기에서 질량은 당연하였다. 그런데 우주의 주기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 데나 신을 붙이지 않는 과학자들이 신의 입자라 별칭하는 힉스가 발견됐을 때 그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다시 생각해보니 과학자들도 로또를 사고 천원을 기부할 것 같다.) 잔잔한 호수에 거대한 바위가 시끄럽게 던져진 것처럼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보도했고 맨 처음 힉스입자를 예측했던 피터 힉스 박사는 다음 해 노벨상 수상자로 빠르게 지목됐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뭔지 모르겠는 사람들마저 집중시키는 큰일이었다. 그리고 물결은 계속 퍼져나가니까 결국은 멀리 있던 내게도 닿아 천천히 차근차근 끈기를 갖고 설명해주는 이들에 의해 조금씩 전보다는 더 많이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줬다. 그럼에도, 힉스장이 질량을 부여한다고 들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나는 질량이 없는 물질 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수순인데 꽤 오랜 시간 힉스 메커니즘은 힉스 메커니즘이고 질량은 원래부터 있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힉스입자 같은 것은 어려운 과학자들의 일이고 질량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통합하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이것은 나만의 우둔함일 수 있겠지만. 이 이해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나는 빛이 가장 빠른 물질인 이유도 질량이 없기 때문인가? 하고 천천히 생각하게 됐다. 빛에 질량이 없다는 것은 한참 전에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빛이 가장 빠른 거라 연결 짓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빛이 왜 가장 빠른가에 대해서는 언젠가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설명으로 접했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그것을 꺼내 연결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과학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과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다 보면 가끔은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따로 조립해 둔 다리와 팔, 몸통과 얼굴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로 연결되어 완성품이 되는 모습.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던 것들이 하나씩 윤곽을 드러내고 결국 통일성을 갖추는 모습. 내 것은 비록 아주 낮은 단계의 것이지만 꼭 대단한 것을 만들어야만 기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알고 경험해서 전부인 줄 알았던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 즐겁다. 그런 배신이라면 반발하는척하지만 내심 끌려 기웃거리고 있다.

 아! 그런데 입자들은 각운동량(스핀)을 갖는데 실제로 도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빙글빙글 돌지 않으면서 각운동량은 가질 수 있는 것. 내가 사는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데 입자들의 세계에는 존재한다고 하니 결국 내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좀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고 상상이 불가한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과학이 또 내 뒤통수를 친다. 나만 당할 수 없지. 다들 이 그려지지 않는 황당한 것을 그리면서 머릿속을 빙빙 돌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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