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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빈 Sep 18. 2019

백화점에서 가전제품을 산 이유

알고도 당하는 '호갱'이 되지 않는 방법

백화점의 진실


지난 6월 초 우연히 이사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아내와 나는 가전제품을 사야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 군데 가격을 비교하러 다니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알겠지만 매장에는 물건들에 대한 가격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 때의 가격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직접 매장에서 상담을 하고 가격 할인과 여러 조건들을 조합하여 최대한 낮은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여러 군데 발품을 팔았다. 가전제품 사는 데만 대여섯 군데는 우습게 돌아다닌 것 같다. 그리고 인터넷 최저가도 열심히 검색했다. 그런데 우리가 제외한 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은 원래 비쌀 것이라는 가정하에 제외하고 열심히 찾아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가 생각하던 가격 아래로 잘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냥 백화점에 가서 물어나 보자 하고 백화점으로 갔다.


우리가 사야 할 품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여러 조합을 매장 매니저에게 이야기하고 견적을 뽑고 계산하는데 계산하는 걸 보고 있던 나는 신기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 어... 하다 보니 지금까지 봐왔던 금액에서 앞자리가 달라지는 마법을 보고 있는듯했다. 한꺼번에 사거니와 마침 백화점 할인행사를 하기도 하고 상품권 행사도 넣고 가전사 행사 등등을 포함하니 지금까지 찾았던 금액에서 최저가를 찾았다. 미처 사겠다는 마음에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이한 상황에서 아내는 지금 구매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고, 매니저 역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행사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이런 가격에는 자기도 처음이라고 하면서 달콤한 유혹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발품을 판 노력과 시간에 더 이상 신경 쓰기 싫어 난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여기서 사자.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간 백화점에서 목돈을 결제를 하였다.


집에 와서 아내는 너무 성급하게 가전제품을 구매하지 않았는지, 충동구매가 아니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심시켜주기 위해서 최저가 검색을 하여 그 조합에서 어느 정도 가격이 나오는지 비교를 하였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또 다른 매장 몇 군데 더 둘러보면서 가격비교를 한 이후 비로소 우리의 충동과 같은 구매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난 후 우리 부부는 다른 물건들도 백화점과 비교를 해봤는데 역시나 조금이라도 백화점에서 사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많이 들었다. 다들 자신들의 매장이 최저가이고 좋은 조건으로 구매를 도와준다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비쌀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백화점이 더 싼 것인가?



희망소비자가격의 비밀


앞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보자. 혹시 '희망 소비자 가격'의 존재에 알고 있는가. 어릴 적에 과자 뒤에 보면 항상 희망 소비자 가격이라고 하면서 000원이라고 명시된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격을 구매할 때 어린 나이임에 불구하고 '이 가격은 누가 정하는 것이지?' '소비자 가격이라고 하기는 하는데 나는 이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의 저자 리처드 탈러는 이 희망 소비자 가격은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 가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준거 가격'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매트리스와 같이 품질을 평가하기 쉽지 않은 경우 희망 소비자 가격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가격만큼 품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동시에 '세일 중'이기 때문에 거래 효용 역시 높다는 점을 넌지시 전해 준다.


메이시 백화점은 소비자들이 기존의 잦은 행사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2006-2007년에 걸쳐 가격 할인 수단인 쿠폰의 사용량을 의도적으로 줄였다. 그리고 쿠폰의 남용은 최고급이 아닌 브랜드의 이미지와 비슷해진다고 생각하여 이 제도를 폐지하였다. 그런데 새로운 정책을 시작한 이후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30퍼센트나 줄었다. 이후 결국은 메이시는 다시 그해 휴가 시즌에 다시 쿠폰 사용량을 기존 수준으로 돌려놓았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리처드 탈러가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렇다. 소비자들은 아마도 거래 효용을 가져다주는 즐거움의 원천인 희망 소비자 가격이 가짜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희망 소비자 가격이 비록 높더라고 하더라도 쿠폰 할인을 통한 거래 효용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즉 소비자는 가치 있는 쇼핑을 하고 있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쇼핑에서 쿠폰으로 절약한 돈으로 또 다른 쇼핑을 하기에 백화점 입장에서는 소비자에게 또 다른 소비를 부축이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인 '희망 소비자 가격'과 메이시 백화점의 '쿠폰'은 어쩌면 우리 부부가 백화점에서 가전제품을 산 요인과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맥락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단 백화점 매장에 적혀 있는 희망 소비자 가격을 보고 우리는 대충 가전제품의 가격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매니저와 상담을 하면서 할인행사를 통하여 충분히 낮은 가격을 제공받음으로써 거래 효용을 느꼈던 것이다. 추가로 백화점에서 상품권까지 준다고 하니 이 상품권을 이용하고 내 돈을 어느 정도 들여 어차피 사야 하는 다른 물건을 백화점에서 또 사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어쩌다 들러 본 백화점에서 잡은 횡재 때문에 우리는 거래 효용이 주는 쾌감에 중독된 게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알면서도 속는다


성인이라면, 다이어트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성인이라면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바로 헬스장 등록이다. 오늘부터 살 빼기 위해 먹는 것을 조절하고 운동을 한다는 각오로 헬스장을 등록한다. 그런데 사실 헬스장에 가서 회원 등록을 하는데 조금 고민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헬스장은 야속하게도 하루, 일주일 이렇게 등록을 거부하기도 하고, 운동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장기간 3개월, 6개월, 12개월 이렇게 등록하는 것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하루에 드는 비용을 따졌을 때 이게 더 싸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매일매일 헬스장을 가지 않거니와 한 달을 따져도 가는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이다. 또한 몇 개월이 지나고서는 거의 안 가는 날이 대다수다. 어떻게 보면 헬스장 입장에서는 이것을 노리고 이렇게 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헬스장 등록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등록을 하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운동하러 갈 것이다.'라는 이런 마음가짐이다. 이는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매물 비용'으로서 그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소비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코스트코와 아마존 프라임 회원제는 이런 '매물 비용'을 통해 우리에게 돌아오는 혜택도 많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헬스장 등록과 같은 이런 '매물 비용'은 일정 기간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기억의 블랙홀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사실 위에서 한 나의 백화점 경험과 헬스장 회원 등록과 같은 예시는 우리 생활 속에서 경제 원리, 이론으로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그런 이야기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히려 심리적인 영역이 더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 것도 어쩌면 '희망소비자가격'과 '상품권' 사이의 미묘한 거래 효용이라는 심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고, 헬스장 등록을 하는 이유 또한 열심히 해보자는 투자의 심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소비함에 있어 늘 다 비교하고 따져봐서 완벽한 소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또 나는 어디선가 다른 가게보다 똑같은 제품을 비싸게 샀을 수도 있고, 별생각 없이 거액을 결제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두를 제어할 수는 없지만 일부라도 이런 경제적인 측면을 소비를 하기 전에 5분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그나마 구멍 뚫린 내 주머니를 조금은 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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