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문장이 되고 싶어 멈추지 않았던 밤들에 대하여

이름 석 자 위에 내려앉은 활자의 무게

by 얼웨즈 Always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내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 멈추지 않는 움직임 끝에 어느 날 문득 봄이 배달된다."


퇴근길, 현관 앞을 지키고 선 묵직한 택배 박스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주문한 적 없는 물건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송장에 적힌 발신인 ‘창작산맥’ 네 글자를 본 순간, 심장 소리가 귓가까지 차올랐다. 얼마전 소식으로 접했던 ‘신인상 당선’과 ‘등단’이라는 글자가 비로소 실체가 되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차가운 겨울 끝자락을 지나온 내게, 2026년의 봄은 그렇게 종이 냄새 가득한 박스 속에 담겨 가장 먼저 도착했다.




박스를 열자 빳빳한 표지의 ‘창작산맥 2026년 봄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수많은 작가의 이름 사이에서 나의 본명 ‘이호경’을 발견했을 때, 세상의 소음이 잠시 멈추는 기분이었다. 화면 속에서만 부유하던 나의 문장들이 이제는 단단한 종이 위에 박혀 누군가의 책꽂이에 꽂힐 준비를 마쳤다.


블로그에 매일같이 기록을 남기고,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고요한 행위였겠지만, 내 안에서는 매일 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나의 이야기가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들과 싸우며 쌓아 올린 문장들이 결국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심사평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과분한 칭찬 뒤에 숨은 애정 어린 조언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내가 쓴 글들을 되돌아본다. 어쩌면 나는 독자들에게 무언가 정답을 알려주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번 등단을 통해 깨달은 것은, 작가는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길을 걸으며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나를 살린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다시 펜을 잡았던 작은 다짐들이었다"라고. 훌륭한 문장으로 세상을 훈계하기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누군가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을 수 있는 온기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차오른다.


다가오는 3월 21일,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서 열릴 시상식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일렁인다. 오래전부터 동경해왔던 대학로의 그 붉은 벽돌길을 이제는 ‘신인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걷게 될 것이다. 늦은 밤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써도 피곤함보다 충만함이 앞서는 요즘이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꿈이란 어쩌면 멀리 있는 별이 아니라, 매일 퇴근 후 식탁에 앉아 한 줄의 문장을 보태는 나의 성실함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고. 이제 막 첫걸음을 뗐을 뿐이지만,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묵묵히, 그러나 뜨겁게 내 안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으려 한다.




나의 수필 제목처럼,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등단이라는 이름의 훈장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잊지 않겠다. 가전제품 서비스업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목소리를, 꾸미지 않은 진솔한 문장으로 담아내겠다.


나를 살렸던 문장들이 이제는 당신을 살리는 문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혜화동의 봄바람이 벌써부터 달콤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작가로서, 그리고 문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이 떨림을 잊지 않고 꾸준히 써 내려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