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풍경, 사라진 풍물
사라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마구간 옆 고속도로》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사라지는 풍경과 삶의 흔적을 사진과 글로 담아낸 기록이다. 고속도로라는 발전의 상징과 그 옆에 남겨진 오래된 공간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나온 것들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 책은 단순한 풍경의 기록을 넘어, 사라짐 속에서도 끝내 남는 기억의 가치를 조용히 환기한다.
“사라지는 풍경은 결국, 우리 안에서 오래 남는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더 멀리,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그러나 한정식의 산문집 《마구간 옆 고속도로》는 그 반대편에 조용히 서 있다. 속도를 늦추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끝까지 바라보려는 시선. 이 책은 그 ‘느림의 기록’이자, 동시에 ‘기억의 복원’이다.
책장을 넘기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흑백의 풍경들이다. 빛과 그림자가 분명하게 나뉜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시대의 공기이며, 사라져가는 장소들에 대한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 마구간, 오래된 길, 허물어져가는 공간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스며 있던 삶의 결을 끌어올린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고속도로’라는 상징이다. 고속도로는 발전과 이동, 효율을 상징하지만, 그 옆에 놓인 ‘마구간’은 정지와 머묾, 그리고 잊혀짐을 의미한다. 이 대비는 단순한 공간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어떤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를 묻는다. 결국 이 책은 질문한다. 우리는 어디로 그렇게 빠르게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속도 속에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글은 담담하다. 과장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으며, 그저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사진과 글이 서로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맞물려 독자의 기억을 자극한다. 마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처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이 책의 진짜 힘은 ‘사라짐’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대부분의 기록이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면, 이 책은 사라지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끝까지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이 오히려 더 강하게 남는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한 여운이 남는다.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데, 동시에 무언가를 되찾은 기분이다.
《마구간 옆 고속도로》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 머문다.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에 익숙해진 독자에게 이 책은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이 이 책의 가치다.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지나간 것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태도.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단단한 메시지다.
결국 《마구간 옆 고속도로》는 어떤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지나쳐왔는지를 묻는다. 고속도로는 여전히 앞으로만 뻗어 있지만, 그 옆에 남겨진 풍경들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처럼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정식의 시선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고 절제되어 있다. 그렇기에 더 설득력이 있다. 억지로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사진과 문장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독자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공기 속에서 각자의 기억이 겹쳐지며, 책은 비로소 개인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 책이 오래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순히 ‘사라지는 풍경’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에서, 느림을 선택하는 일은 때로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 용기를 조용히 건넨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 오래된 건물의 벽면, 이름 모를 공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그저 ‘낡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시간을 품고 있던 자리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늘 새로운 것만을 향해 달려가느라, 이미 충분히 의미 있었던 것들을 스스로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다. 덮은 이후에 시작되는 책이다. 어느 날 문득, 낯선 길 위에서 혹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이 책의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사라진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이 책은, 끝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하나의 시선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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