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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Aug 27. 2021

납치, 스토킹, 그리고 초원의빛 (I)

feat. 납치의 기억

          < 매거진 '열정의 온도' 소개 >

'납치, 스토킹, 그리고 초원의빛'은 과거 온라인 카페 활동 당시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시간 카페 활동을 하면서 좋은 인연들과의 만남, 책 출판, 독서 모임 운영자 및 연탄봉사 모임 주관 등 제 인생에 있어 많은 추억과 경험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납치 이후 몇 년 후 또한번의 스토킹을 겪은 후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온라인상에서 글 쓰는 것을 자제하면서 글쓰는 삶과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2년 전 우연한 계기로 초원의빛이란 필명으로 지역 카페에 글을 쓰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초원의빛으로 활동하면서 저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다시 온라인상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겠지요.^^

지역 카페에서 초원의빛이란 필명으로 시민 활동에 앞장서게 되면서 과분하게 '초다르크', 'OO(지역 이름)의 빛'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초원의빛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던 그때 제 나이 마흔셋, 불혹을 넘긴 나이라 인생에 있어 더 이상 열정의 에너지는 느껴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열정적이고 가슴 뜨거웠던 그 순간들의 기억 일부를 이곳에도 기록하려 합니다.
그래서 '열정의 온도'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매거진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제목이 좀 자극적이죠?^^

무슨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어디 기사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일들이 사실 제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참으로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기억이라 머릿속에서 delete 키를 눌러 지워 버리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때의 충격으로 인한 것인지 그 당시의 모든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의 기억만 생생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니 하늘이 나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도우셨구나.. 싶은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저도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경험이었던 만큼 십여 년이 지나도록 이런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 당시 같은 카페 회원이었던 지인 한 명에게 얘기했고, 활동했던 온라인 카페에서 상대방의 탈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카페 운영진 한 명. 그 두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지난봄,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같은 카페 회원이기도 했던 둘째 언니와 남편, 그리고 어머님에게도 과거에 그런 일도 있었노라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납치, 또 한 사람에게는 스토킹을 당했는데 정신적으로 트라우마는 있었을지언정 다행히 신체적으로는 무탈했던지라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전 20대까지는 열정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잔잔하디 잔잔한 삶을 살았습니다. 혼자 책 읽으며 사색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했고, 친한 친구와 지인을 제외하고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술도 즐기지 않아 서른 살까지 술을 마신 횟수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다녔던 직장 대표이사님은 저를 좋게 봐주시고 과분한 칭찬도 많이 해주시곤 하셨습니다. 직업 특성상 여자가 많았던 그곳에서 대표이사님이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우리 직장(8~900여 명)에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던 적있습니다. 여성스러운 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만큼 전 말수가 많지 않고 정적인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의 제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마중물이 되었던 것이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결혼 전, 8년여를 활동하던 카페가 있었습니다. 활발히 활동하던 당시 회원수 70여만 명, 지금은 80여만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재테크 카페였습니다. 28살 우연한 기회에 가입해 글을 하나둘씩 올리기 시작했는데, 2주에 한 번씩 메인에 20개의 글을 뽑는 베스트 글에 자주 선정이 되었습니다.


지금 브런치로 말하면 브런치 인기글이나 다음 메인에 노출되는 일과 같은..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글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들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카페지기님이 제 글을 좋아해 주셨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제 처녀작 '행복산책'은 그 당시 카페 활동(28세~31세)을 하며 올렸던 글을 엮어서 출판했던 책입니다.

< 글 쓰기의 재미를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카페 활동 >




스물아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유독 심하게 이별 앓이를 했습니다. 2월의 어느 날, 겨울의 끝자락에 만나 봄을 지나, 여름을 지나고, 그리고 가을까지 사계절을 함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8개월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만남 동안 사랑을 했던 그 사람.


이별 후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했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지난 8개월 후에야 제 마음에서 온전히 그 사람의 흔적을 비우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했던가요. 그렇게 전보다 성숙해진 제 삶은 변화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6월, 카페 내 소모임으로 직장인 미혼 독서 모임 산책(Living book)의 운영자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에는 발걸음도 잘하지 않던 제가, 형부들이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인사 오던 날 부끄러워 엄마 뒤로 쪼르르 달려가 숨어 한참을 형부들에게 놀림을 당하곤 했던 그런 제가..(어쩌면 그 또한 이별이 제 삶에 주고 간 선물인 듯합니다.^^)


그렇게 독서 모임 운영자로 6년여 동안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우연한 계기로 2년 동안 연탄봉사 모임을 주관해 진행하다 보니 연락처 등 신변 노출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페에는 지금처럼 좋은 메시지, 감동과 따뜻함이 있는 글을 주로 썼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상 글을 단순히 글로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 당시 미혼이었기에 저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생겨서인지 일부 사람들이 이성으로서 관심이 선을 넘어버렸던 듯합니다.

하늘이 도우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한 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성으로서의 마음이 없는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현해 관계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드라이브하며 대화하자고 말했던 그가 자동차 문의 잠김 버튼을 누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란 이 들었습니다. 그 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근처를 드라이브할 거란 예상과 달리 타고 있던 차는 외곽순환도로를 지나 어느새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경기도 용인 수지 오빠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사람과 만났던 시간은 오후 4~5시경이었습니다.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저는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를 향한 자신의 절실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동안 직장 생활하며 저축했던 여러 개의 통장까지 챙겨 왔던 그. 머릿속은 어떻게든 그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통장을 펼쳐 잔고를 보여준 들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습니다.


그렇게 전 두려움을 안고 속초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속초에서 저녁을 먹었는지, 차에서 내렸던 기억은 있는 듯한데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그 당시 두려움과 충격으로 일부분의 기억이 지워진 듯합니다.)


속초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차는 어둠 속을 향해 달렸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어딘가에 도착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은커녕 도로와는 멀리 떨어져 지나가는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 강가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그 사람은 차를 세웠습니다.


다리라고는 하지만 난간이 없는 콘크리트 다리였습니다.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엔 잠기고 마는 그런.. 그 당시 많은 기억이 지워졌지만, 생생하게 들리던 강물소리는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동안 콸콸콸 시원하게 들리기만 했던 강물 소리가 그렇게 서늘하고 무섭게 느껴졌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다리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을 때 들렸던 적막 속에서 들렸던 그 강물 소리. 자칫 잘못하다가는 소리 소문 없이 저 강물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포가 극에 달하니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담담해지고 차분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려면(같이 자고 가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차에서 내려 혼자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란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에 전화 한 통만 하고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전 오빠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성을 유지하고 침착하게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오빠, 나 지금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


오빠는 지역 114에 전화해 물어서 택시를 타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상 더 이상의 긴 통화를 하긴 힘들어 알겠다고 대답한 뒤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 순간 오빠에게 전화를 했던 것은 실제로 택시를 타고 가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최악의 경우가 생기면 위치 추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서 내렸지만, 사실 워낙 늦은 시간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차도 다니지 않는 곳이라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큰 길이라도 가보겠다고 어둠 속을 걸어가던 제 뒤로 그 사람이 천천히 차를 몰고 따라왔습니다.


순간 멈칫했지만 전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앞만 보고 걸어갔습니다. 그 순간 그가 제 옆에서 차를 세웠습니다. 창문을 내린 그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던가 봅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택시 탈 수 있는 곳까지만 데려다주겠다 했습니다.


사실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일이 생길 수도 있단 생각에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람을 자극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뿐. 저는 아무 말없이 차에 올라탔고 그 사람은 저를 다행히 약속대로 춘천역 앞에 세워줬습니다.


차에 올라탈 때처럼 무사히 내릴 때까지도 전 그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차에서 제가 내리자 그의 차는 바로 출발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기사님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극도의 공포의 순간을 경험했던 제게 자정이 넘은 시간 택시를 타고 1시간 30분 이상을 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힘겨운 일이었기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전 무사히 도착했고, 15년여 전이라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집 근처 편의점에서 현금을 인출해 택시비를 지불했습니다. 그 당시 택시비가 8만 원 정도 나왔던 듯합니다.




그 이후 다행히도 그는 제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다음날 전 용서해 주겠노라고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잊고 잘 지내라 문자를 한 통 보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더니.. 하늘의 도움과 그 당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응한 덕분에 전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 대응했다가는 강물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상황을 경험해서 그런지 이후 담력이 커져서 웬만한 상황에서는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는 편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내가 지역 시장님은 물론 국회의원님, 시의원님에게 할 말 다 하고 쓴소리도 하는 걸 보더니 슬며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봉주르~ 당신은 무서운 사람이 없어요?"


"무서울 게 뭐가 있어요. 그분들이 우리 월급 줘서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열심히 일해 세금 내서 그분들 월급 주는 건데. 그리고 없는 말 하는 것도 아니고,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지역과 시민들을 위해서 할 말 하는 건데 뭐가 무서워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죠."


남편은 잘 모를 겁니다. 죽을뻔 하다 살아난 가 두렵고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


여보야~ 나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알아서 충성하세욧~!^^



ps. '납치, 스토킹, 그리고 초원의빛'은 글이 길어 2편으로 나눴습니다.^^

2편에서는 시간이 흐른 후 납치의 기억에서 벗어났는데, 또다시 경험하게 된 스토킹의 경험과 초원의빛이란 필명으로 지역 카페에서 다시 글을 쓰며 활동하게 된 사연이 담길 예정입니다.^^



written by 초원의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차이코프스키의 'Andante Cantabile'

https://youtu.be/68W-ROkShMA



Barbara steisand의 'The way we were'
https://youtu.be/CVC3MZpQn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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