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여행기 마지막 - 길리 이야기
윤식당 촬영지로 유명세가 올라 왠지 가기 꺼려졌던 길리도 이번 여행에 포함했다. 윤식당으로 인한 유명세는 이제 잦아든 듯하고, 다녀온 이들이 작고 귀여운 섬이라는 추천을 하는 바람에 홀랑 넘어가고 말았다. 결론은 '애증의 길리!'.
발리에서 길리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블루 워터 익스프레스를 사전에 꼭 예약하라'는 지인의 말은 역시나 까마득하게 잊었고, 하루 전날 배가 없어서 발을 동동 거리다 결국 우다라 사장님이 표를 구해줬다. 작고 에어컨이 없는 배를 타고 길리로 가야 했다. 다행히 문 가장 앞자리에 앉아 바람을 쐴 수 있었지만 찌는듯한 더위와 파도를 견디며 4시간가량을 가는 길은 즐겁진 않았다.
"길리 에어를 먼저 가는 건지, 길리 티에 먼저 가는 건지 혹시 아세요?"
옆자리에 앉은 금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몰라요. 일단 길리로 가려고 그냥 탄 건데. 정말 모르겠네요. 가보면 알겠죠?"
세상엔 생각보다 계획이 없는 사람이 많구나. 말을 튼 김에 서로 소개를 하고, 발리 어디가 좋았는지, 길리 어디를 갈 예정인지 짧은 대화를 나눴다.
"혹시 길리에서 저녁 같이 먹을래요? 원한다면요."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적극적이고 유연한 성격인 듯하여 나는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 누군가가 멀미를 이기지 못하고 그날 먹은 것을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오 마이 갓..." 나의 '오 마이 갓'은 '아 이 냄새를 어쩌지'하는 의미였다.
"오 마이 갓... 저 사람 얼마나 힘들까요. 아직 갈길이 먼데, 벌써 저렇게 힘들어하다니... 저 사람 너무 안 됐죠."
배를 탄지 두 시간도 안되어 머릿속에 징이 울렸다.
"아, 나는 저 사람 소리를 듣자마자 불쾌해졌는데... 연민의 마음을 더 배워야겠어요."
어렵사리 도착한 길리는 너무 귀엽고 예뻤다. 길리는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가장 번화한 길리트랑와간에 숙소를 잡았다. 제일 큰 섬이지만 그래봤자 섬의 둘레가 7km 남짓 된다고 했다. 힌두 문화가 지배적인 발리와 달리 길리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발리 소속이 아닌 롬복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발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루 다섯 번 울리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부터,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 그리고 발리사람들처럼 무조건 웃고 친절하지는 않은 사람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를 20대 초반에 짧게 방문한 모로코 외엔 처음이었다. 찬란하게 예쁜 바다와 달리 뭔가 어색하게 긴장감이 몸을 타고 흘렀다.
원래는 무인도였던 이 섬들을 개발해 관광지로 이용하게 된 것은 역사가 길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인프라가 매우 부족하다. 식수원이 없고, 쓰레기 처리장도 없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 동력을 가진 이동수단은 금지돼 있다. 길리에서 이동수단은 도보, 자전거, 말. 이 세 가지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전혀 포장되지 않은 길이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자전거가 주요 이동수단이면, 보도블럭이라도 다 깔아놓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면 말의 발굽이 아플 것도 같았다.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자전거가 어려운 곳들은 걸어 다녔다. 마차를 타는 것은 여간 내키지 않아 이용하지 않았다.
길리에서 말은 착취를 당한다. 부두에서 내리면 줄지어 서있는 마차들. 하루 종일 꽁꽁 묶여 옆도 보지 못하게 시야도 막아뒀다. 말들에게선 냄새가 난다. 좁은 도로에서 사람들과 자전거 틈새를 달리며 말들은 혹사당한다. 노을이 유명한 스팟에 가면 돈을 내고 일정 시간 동안 말을 타는 엔터테인먼트 수단이 된다. 노을을 등지고 말 위에 올라서 찍는 사진 한 컷을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서서 말을 탄다. 말을 타지 않아도 길리의 노을은 환상적이고, 걷고 자전거로 이동하기에 크지 않은 섬이다.
길리 섬의 해변은 개발이 잘 되어, 리조트며 식당들이 화려하게 늘어서있다. 그런데 섬의 중앙으로 조금만 이동해 보면 폐허가 따로 없다. 비포장 도로와 무너져가는 집들, 공사를 하다가 중된된 곳들이 즐비하다. 쓰레기도 쌓여있고, 가끔 소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 전에 지진이 크게 났었다고 한다. 섬은 폐허가 되었고, 섬의 관광 자원을 가진 외국 자본은 다시 투자를 해서 복구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대다수는 복구를 결정했지만, 이 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중단한 곳이 많았다. 해변은 관광수익이 높은 곳이니 코로나 이후에 다시 공사를 진행했지만 섬 중앙은 그렇지 못했다. 모두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있다가 섬 중앙에 들어오면 마치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섬의 중앙엔 두 개의 뒷동산 같은 것이 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뒷동산'이고, 다른 하나는 쓰레기 더미라고 했다. 그 쓰레기 더미에서 불이라도 나는 순간 길리는 다시 폐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길리 섬의 회복, 특히 산호 회복을 위해 길리에 자리 잡은 'Gili eco trust' 대표가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했다. 길리에서의 스노클링은 매우 즐겁다. 어딜 특별히 가지 않아도 호텔 앞 해변에서 거북이와 물고기를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산호는 대부분 죽어 하얗게 변해있었다. 해양 환경의 시작은 산호라고 하는데, 기후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지고, 너무 많은 배가 다니면서 산호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는 것이라고 했다. Gili Eco Trust가 산호를 살리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 있는 곳에서는 신기하게 산호색이 하나둘씩 살아나고 있었다. 인간은 이 기후위기를 정말 기술과 몇 안 되는 저런 사람들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주 약간의 희망적인 생각도 하게 됐다. 길리트랑와간에선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Gili Eco Trust와 함께하는 비치클리닝 시간이 있다. 쓰레기를 함께 주우면 맥주도 한 병 준다.
그럼 길리가 이렇게 절망적이기만 하냐고? 길리는 말 그대로 '로맨틱'하다. 해변을 돌며 눈을 어디다 두더라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파도가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는 에메랄드 빛으로 빛난다. 수심이 깊지 않아 어디서든 쉽게 수영을 할 수 있고, 머리만 들어가면 거북이와 물고기들이 종류별로 떼 지어 다닌다. 이 모든 것들을 어디 특별히 가지 않아도, 호텔 바로 앞에서, 섬 어디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크지 않은 섬이니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고, 그래서 긴장을 내려놓고 섬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매일 똑같은 비치 바(Beach Bar)에 가서 코코넛 워터를 하나 시켜 두고 그늘아래 자리를 잡으면 4-5시간은 족히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어딜 가든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하니 계속 몸을 움직이게 되는 장점도 있다. 자동차가 없는 것 치고 공기가 맑은 편은 아니라고 하던데, 내가 있는 기간 동안엔 공기가 매우 맑았다.
길리에 사는 사람들은 로컬(롬복 사람들) 사람들이 조금 있고 나머진 외국인들이다. 갭이어를 위해, 은퇴 후 삶으로 길리를 찾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 어디에도 집을 정해두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는 매일 해변에 앉아 달을 본다고 했다. 내가 그와 같이 달을 본 날엔 레드문이 떴다. 내가 레드문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달이 해처럼 빨갛게 떠올랐다. 한참을 붉은 기운으로 떠오르다 기운을 다 쓰고야 본래 달의 색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와 레드문이 떠서 하얀 달이 될 때까지 별말 없이 조용한 해변에서 달을 봤다.
현지에 수도 없이 많은 로컬 스노클링 투어에 조인해 싼 가격에 세 개의 길리 섬을 모두 둘러보며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은 장점이었지만, 안전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고 승선인원에 비해 스태프가 부족했다. 나는 길리를 떠나기 하루 전 꽤나 비싼 럭셔리 요트 스노클링 투어 프로그램을 한번 더 하기로 했다. 승선인원만큼 스태프가 있고 와인부터 식사, 디저트 등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며, 무엇보다 멋진 요트를 타고 안전하게 스노클링을 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이 요트에서 나는 혼자 투어에 조인한 유일한 솔로였지만, 다행히 미국에서 온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여성 두 명이 나와 함께 놀아줬다. 그들 중 한 명의 생일이었기에 요트에 승선한 모두와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고, 다이빙을 무서워하는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어주겠다는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받기도 했다. 요트 투어가 끝난 뒤엔 내가 묵는 호텔로 함께 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오랜만에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30대 들어 이렇게 낯선 이들과 함께 클럽을 가고, 와르르 웃으며 돌아가며 샤워를 하고, 새벽에 마트에서 라면을 사 먹는 일을 처음 한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제일 예쁘고 제일 재밌어!"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이 말을 외쳐대는 친구의 말이 놀랍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젊음의 활기참이었달까.
혼자 하는 여행의 유일한 단점은 등에 선크림 발라 줄 사람을 늘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길리에 묵은 호텔 매니저는 매일 아침 물질을 나가는 내 등에 꼼꼼히 선크림을 발라줬다.
“매일 이렇게 등을 만져주니까, 꼭 우리 딸 같아.”
“딸이 몇 살인데요? “
“아홉 살. 나중에 크면 혼자 이렇게 씩씩하게 잘 다닐 수 있겠지?‘
혼자 여행하며 여러 번 느낀 건, 여자 혼자 여행하는 나를 ‘용기 있고 씩씩한 사람’이라 생각해 본인의 자녀, 특히 딸의 롤모델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저 혼자 여행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런 ’ 영감‘이 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길리는 비싸다. 길리는 너무 아름답다. 길리는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길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 로맨틱하고 다정했다. 길리는 잠깐만 들어가면 폐허다. 길리엔 희망이 있다.
길리에 다시 돌아갈 일이 있을까? 갈 곳이 너무 많아 자신 있게 “네!”를 외치진 못하겠다. 그래도 애와 증 중에 길리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