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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Oct 24. 2024

여행, 죽음 충동

Why travel?

 "왜 여행하세요?"


 나는 이 질문을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았다. 허구한 날 기회만 생기면 한 줌의 경비를 들고 이탈리아로 떠나던 20대 때는 주로 질문을 받는 편이었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예민한 사람이다. '내 침대, 내 베개, 내 이불'이 아니면 잠을 못 자는 사람. 엄마는 뭐에 홀린 것처럼 명절과 휴가마다 밖으로 나가는 나를 원망스럽게 몰아붙이다가 어느새 포기해 버린 듯이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노?"


 이 질문을 하는 엄마는 더 이상 늘 떠나 있는 나를,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딸 노릇을 하지 않는 나를 원망하지 않고 있었다. 변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엄마에게 나는 이제 그저 신기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나를 완전히 새로운 곳에, 새로운 환경에 데려다 놓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삶을 배우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나를 다시 발견하면,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져." 


 나는 침대에 나란히 누운 엄마에게 말했다. 20대의 나에게 여행은 혼란의 틈에서 나를 세우고, 그놈의 '자존감'을 일으켜 세워 깊이 박는 작업이었다. 


"나는 여행이 싫어. 사람들이 왜 하는지 이해가 안 돼.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안전하고 좋잖아. 어딜 갈지부터 어떻게 갈지, 가서 뭘 할지까지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난 그게 스트레스야."


 여행을 싫어하던 옛 남자친구는 만난 지 1년이 지나서야 솔직한 마음을 보였다. 나는 마침내 그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털어놓은 이 말이 싫지 않았다. 누구나 여행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여행이, 특히나 '해외여행'이 모두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파고들어, '맛집에서의 근사한 식사'만큼이나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거 잘 모르겠어'라는 의견을 내는 용기가 아름다웠다. 그와 '왜 여행하는가'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나는 여행이 마침내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가면을 벗고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잠시의 시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주로 혼자 여행하는 나는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남의 눈치를 눈꼽만큼도 볼 필요가 없었다. 어디로 갈지부터 여행 중에 내려야 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결정들에 있어서 나는 오롯이 내 주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몇 년을 이어가다 보니 나는 여기에 꽤나 능숙한 편이었다. 나는 대담한 결정을 꽤나 잘 내리는 편이었고, 그 결정들로 인해 한 경험들은 내 삶을 뒤흔들고 확장시켰다. 


"아 진정한 여행에 대한 열망은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세상을 뒤집어 보며, 모든 것들과 사람, 사건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여느 위험한 욕망과 다르지 않다. 더 나을 것도 없다. 이는 계획이나 책으로는 채워지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며, 심장과 피를 바쳐야 한다. 여행을 갈망하는 자들은 대지를 이해하고 그를 경험하려 하고 결국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신을 바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열망은 오직 꿈꾸고 갈망하며 바라볼 뿐, 완전히 성취하거나 좇을 수 없다. 


우리는 남아메리카, 발견되지 않은 남태평양 미지의 만, 지구의 극지, 바람과 강풍, 번개, 눈사태를 이해하는 것에 호기심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 존재의 마지막이자 가장 담대한 경험에 대해서도 끝없는 호기심을 품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인식과 경험 중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만한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여행을 통해 낯선 것을 경험하고, 인류의 이상을 가장 깊은 곳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인간 문화의 의미, 깊은 통일성, 그리고 불멸성에 대한 갈망을 여행 중에 특별히 깊게 느낀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말이다."


 헤르만헤세는 여행에 대한 충동을 죽음 충동에 비유했다. 정신분석에서 죽음충동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체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모든 충동이라고 했다. 일상을, 세계관을, 사고를 뒤집고 해체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하는 여행. 결국에 그 해체와 파괴의 충동 끝에서는 문화와 통일성, 불멸성을 갈망하는 것이 헤르만 헤세의 여행이었다. 


 "결국 에고의 죽음을 위한 것이네. 여행은." 


 헤르만 헤세의 책에서 이 부분들을 발췌해 보내주니 애인은 이렇게 얘기했다. 


"나랑 같이 죽기 위해 여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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