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구본형

by 부지러너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jpg


"머리가 알아내기 전에 늘 먼저 보는 것은 가슴이다. 토마스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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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두 문장이 가슴을 때린다. 나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정확히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아나운서가 되라 했었고, 치과의사가 되라 했었다. 부모의 틀을 벗어나 자주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단계에 다다랐을 때에도 안타깝지만 나는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원치 않던 전공을 살려 갈 수 있는 회사들을 지원했고 운이 좋아 여러 회사의 인턴을 해보고 가장 좋은 회사라 생각이 드는 곳에 입사를 했다. 하지만 그건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대가로 20년 정도 보장받는 것이 운이라면 운이겠지만. 왜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내가 원치 않는 일, 가슴뛰지 않는 일을 하며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까지는 아니더라고 자본에 전전긍긍하며 은행 빚을 갚고 있는 것일까?




돈과 자유


돈은 자유와 권력을 준다. 돈이 많이 있다면 '하기 싫은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금 마음 속에 떠오르는 '그 일'을 할 수 있다.
열정을 가지고 평생 그 길을 걸은 사람이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아직 '자신의 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다림을 자신에 대한 신뢰라고 부른다.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세속적 성공을 거둔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학벌이 모자라고 지능이 보통에 불과한 사람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선뜻 고용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비 부자의 모습이었다.
자신에 대한 탐구에는 끝이 없다. 그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그럴 듯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조용히 놓아두자. 평생 그 일만 하며 살았을 때, 그리하여 그 일을 잘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인생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당신이 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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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은 누구나 꾸는 달콤한 이야기다. 로또나 연금복권을 사면서 상상하는 나의 노후 혹은 이른 시절 성공하여 누리는 남들과 다른 윤택한 삶 속에 우리는 행복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돈은 자유를 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번 뒤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도 밥 먹듯 그런 말을 했다. '내가 한 20억만 있으면, 이런이런 거 하면서 살거야.' '내가 로또를 맞으면 제주도에 내려가서 소일거리 하면서 애들 학교나 데려다 주면서 살거야.' 나도 그랬다. 내 스스로 경제적 자유의 조건을 이룬 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경제적 자유에 조금 더 빨리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많아 원하는 것만 하고 사는 YOLO 족의 비참한 최후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다. 다만, 생각해보라. 소이 말해 성공했다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말하는 성공이자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결국 진정 가슴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평범과 비범 사이


미스아메리카 선발대회 왼쪽 손이 없는 장애인의 출전. 그 날 그녀는 입상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천재들의 좌충우돌하는 전횡도 아니고 특이한 사람들의 무협담도 아니다. 한 평범한 사람이 무기력과 좌절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눈물이며 속 깊은 고백이다.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그들은 같은 사람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인생에 대한 태도뿐이다. 내가 아닌 남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승리하기 시작한다.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배운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내는 순간부터 그들은 화려하세 변신한다. 자신에게 투자하면 절대로 잃는 법이 없다.


평범과 비범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어떤 변화'이다. 역사가 인류 변천의 기록이듯, 개인의 역사 역시 변화의 기록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날' 모두 평범에서부터 비범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사실 모든 사람이 날 때부터 뛰어나진 않다. 정말 간혹 천재들이라고 간주 될만한 사람들이 태어나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매우 치열하게 평범함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노력 하면서 산다. 그 노력이 매우 간절하겠지만 노력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다. 평범해지기 보다 비범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맞다. 근데 또 비범해지려는 노력은 남들과 다른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나와 달라진 오늘의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비난 받거나 견제 받지 않으며 할 수 있는 노력이다. 내 자신을 바꾸는 노력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렸다. 노력의 성패는 노력하는 자신에게만 달렸다. 그래서 난 비범한 사람이 되려면 노력을 할 수 있는 근원을 찾고 변화를 일으킬만한 동기를 찾고 목적을 찾고 치열하게 노력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치열한 노력은 지속하기가 힘들어 매번 계획하고 실패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책에서 나는 나에게 미션 대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주어진 미션을 성실히 6개월 수행한 사람과 미션이 아닌 그 자체를 내가 가진 특성으로 만든지 1개월 된 사람 중 누가 더 그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미션은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행하더라도 언제까지나 해야하는 숙제일 뿐이다. 하지만 정체성은 내가 죽지 않는 이상 바뀌기 쉽지 않은 특성이 된다. 나는 매일 5시반에 일어나야해가 아니라, 나는 아침 5시반에 일어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된다.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나는 본디 그런 사람이니까. 억지같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본인의 정체성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신을 탓하라. 해야하는 목적과 이유를 만들면 그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게 된다. 원래의 나를 바꾸면 돌아가는 자리가 내가 원하는 자리가 된다. 해야되는 이유의 적은 무수히 많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이지만. 이유 없이 내 정체성이 된 일들은 그저 묵묵히 하게 될 뿐이다. Just Do It. 참 멋진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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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전체를 주도할 기본 가치관 (의사 결정 기준)을 설정하여야 한다. 깊은 가치관이 없으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으며, 공동체에 기여할 수 없다.
특히 처음 2년 간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지속성의 성패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습관이 되면 새벽 4~5시에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그 대신 저녁에 일찍 자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전문성



학벌과 자격증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과거의 지식체계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전문가 다운 전문가였다.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원리가 훨씬 실용적일 수 있다. 진정한 전문가로 받아들여지려면 그 전문성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첫쨰, 비전문가인 당신의 아내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 명료하게.둘째, 중학교에 다니는 당신 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셋째, 고객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대안 제시




전문성이라는 것은 남들과 나를 구분짓는 핵심이다. 전문성이 없는 순간 내가 가진 가치는 소멸하고 만다. 그럼 그 전문성은 누구로부터 입증받을 수 있는가. 바로 고객이다. 그럼 고객은 그 전문성을 어떻게 검증하는 가. 나도 사실 항상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학벌이나 자격증, 수료증, 경력, 회사, 직함, 직급 등으로 사람들을 판단해왔고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소속을 본인의 소개 앞머리에 둔다. 하지만 '어느회사에서 무슨 일을하는 OOO 팀장입니다.'라는 말은 본인의 전문성을 전혀 어필하지 못한다. 결국 전문성이라는 것은 아는 게 많고 그 아는 걸 실천하고 있으며 실천하고 있는 것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서 우리는 인사이트를 얻고 자극을 받는다. 그런 자극들이 그 사람들에게 전해져 전문성으로 어필 되는 것이다. 나는 많은 강의를 들어봤지만 전문가치고 전문가 답다고 느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알맹이는 가득한데 껍질을 안까주고 먹으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청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강사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청자의 수준을 떠나 그건 본인만 아는 전문성에 그치고 고객에게 어필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면 조금 덜 특별해보인다거나 전문성이 결여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효과는 정반대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 처럼 본인의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시장에 살아남는다. 절대 다수의 고객을 등지는 전문성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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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



직장인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은 자신을 개인 사업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1인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로 승화시킨다. 이들은 자신이 특화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재능에 맞게 다양한 일자리에 능동적으로 지원한다. 기존의 방법 대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과거로부터 답습된 과정을 혁신한다. 이런 직장인들은 피고용자,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서비스에 책임을 지는 개인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자들이며 기업의 파트너들이다.
메세지가 명확해야하고 상징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개인의 브랜드를 잘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



요즘 회사에서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동' Issue'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싶어하지만 조직차원에서는 이동이 힘들다고 하여 구성원의 Pain Point를 키우고 있어 대안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 (역량개발, 커리어관리, 도피성, 사업장 이동)를 들어 본인에게 좀 더 맞는 조직으로 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회사나 직책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관리하는 인력의 Loss가 성과로 직결될 수 있어 이를 매우 Concern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동을 성사시키는 경우는 크게 세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통해 조직차원에서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의해 다른 조직에 차출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슬프지만 저 성과자로 낙인찍혀 대체인력없이도 이동이 가능한 경우이다. 나머지는 매우 나이스하게 1:1로 서로 부서를 교환하는 이동인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은 케이스다. 그렇다면 매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회사에서 생활하기에 그런 이동들이 가능할까? 결국 회사 안에서도 시키는 일에 대해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본인의 역량을 능동적으로 관리하고 회사 내에서 개인을 브랜드화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후자의 경우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조직 밖에서 더 유효한데 회사 이름이나 계급장을 떼더라도 본인의 밸류와 브랜드 만으로도 승부를 볼 수 있는 자신감과 역량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커리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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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고 그 현재가 미래가 되는 사람




지금을 그대로 흘려 보내는 사람에게는 '지금'이란 없다. 그저 '다음'이 있을 뿐이다. 현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는 현실이 없다. 따라서 그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열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체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을 체험한다. 따라서 당신이 열정을 가지고 그렇게 믿게 하면 정말 그 일이 일어나게 된다.



'내일을 사는 놈은 오늘을 사는 놈한테 죽는다'


머리를 멋있게 밀지 않더라도, 원빈이 되지 않더라도 오늘을 사는 사람은 내일을 사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오늘이 쌓여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 난 얼만큼 열심히 살았는가.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가, 조금씩 변화된 순간으로 채워가는가. 흩어지는 나날들도 물론 의미가 있다. 그렇게 사는 순간이 또다른 자양분으로 나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을 충실히 산 사람이 맛보는 몇 분의 휴식과 하루 종일 흩뿌려진 시간 속의 몇 시간의 휴식은 효용가치가 현격히 차이난다. 시장이 반찬이라며 뭐든 맛있게 먹던 순간에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치킨 한 마리를 먹고 나서 먹는 콜라 한잔은 비할바 없는 상쾌함을 준다. 간절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성과나 결과물을 만들지 않아도 그 시간 자체를 충실히 보낸 나 자신에게 주는 자신감이며 존재의 당당함이 되어 오늘을 살게 한다. 지금을 살게 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찾아올 미래를 막연히 기대하는가, 마법사가 되기 위해 마술 도구라고 검색하고 쇼핑하고 있는가?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그 차이를 모른다. 끝까지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모른다. 지금을 사는 그 사람들만이 알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줘봤자 알 수 없다. 직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은 알려줘봤자 의미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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