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의 기도

걱정을 없애는 걱정

by 부지러너

평온의 기도

2013년 1월 2일.

태어나서 처음 썼던 정규직 근로계약서.


그리고 10년이 지나

2023년 2월 28일.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

정든 일터를 떠나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작년 이맘때쯤,

아니지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지금은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선택을

나는 멋도 모르고 시작하고 있었다.




이직의 과정은 다른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사실 이번 주 실질적인 마지막 출근일을 앞두고

지난주 새로 다닐 회사,

소위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그곳에서

나와 함께 일할 분들과 인사하고 사전 인수인계를 받았다.


대기업이라는 등 따습고 배 부른 환경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던 내가

두 발로 이불킥을 하게 되었을 때는

그만한 각오와 정신무장을 단단히 했을 터인데도

막상 마주한 현실에 덜컥 겁이 나버린 하루가 되었다.


초등학교만 4개를 다녔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낯선 환경에서 나름 적응하는 방식을 온몸으로 익혀왔다 생각했는데.

회사를 다닌 10년간 5개의 직무를 경험한 나로서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해보지 않은 업무

그런 것들이야 워낙 익숙하게 경험해 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고 몸이 무거워지고 두려움은 더 커졌던 것일까?

마주한 현실보다 더 큰 두려움이 밀려왔다.


외부에서 볼 때 성장세가 뚜렷하고

고객들과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매력적인 회사였는데

내부에서 숫자들을 확인할 땐

성장세, 매출액 그런 것들 보다는

적자, Risk, 투자금 버닝 관점에서만 숫자가 보였다.


망할 걱정 없는 회사에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고 자란

유복한 집의 도련님이 세상 물정 모르고 저잣거리에 나온 느낌이랄까?

'도련님'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를 모르는 철없는 '하룻강아지'같은 처지에서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나왔다는 게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던져진 주사위인 것을

(엎질러진 물이란 표현은 지양하고 싶다. ^^)


사실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적인 쇼크로 망각해 버렸던 것 같다.


지난 주말 독서모임에 나가 '페스트'라는 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3년간의 긴 코로나를 겪고 실내마스크가 해제되기 하루 전에

'페스트'라는 책을 선정하고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많은 사람들이 흥분되어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마지막 마무리 소감을 돌아가면서 할 때,

나는

'페스트는 어쩌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질병이 아닌

인생에서 순간순간 닥쳐오는 위기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위기를 어떻게든 헤쳐나가려는 마음가짐, 그리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소설에서처럼 또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측면에서 제가 자주 읽고 인생의 만트라로 여기는

기도문을 공유합니다.'


평온하지 않을 때 되뇌어 보자


사실 비슷한 문구로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이 없겠네'

라는 탈무드의 구절이 있다.




맞다.

결국 사업의 성과나 회사의 안위

그리고 나아가 성장곡선에서

내가 숫자를 본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막연한 두려움에 떨며

내가 당긴 활시위를 멈추기엔

이미 활이 튕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잘 해낼 것 같은 일을

최선을 다해 충실하고 성실히 해 나가며

책임을 다하고 역량을 길러

회사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잠시나마 불안과 걱정에 떨며

다가오지도 않은 실패를 상상했던 나를 용서하고

언제나 그랬든

부지런히 열심히 충실히 성실히

한 걸음씩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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