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생경한 느낌이 한가득이다.
마치 외국에 와 있는 것 같다.
8년 전쯤 그리스-터키 여행을 할 때였는데,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 않는 이동경로를 택해서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터키 페티예로 넘어갔다.
바로 넘어가는 배가 없어 산토리니에서 로도스라는 그리스 섬으로 갔는데
페티예랑 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그리스의 최동단 섬이었다.
로도스로 가는 밤 배에서부터 1박 2일 머무는 동안
동양인이라고는 일본인 커플을 유일하게 마주쳤던 게 전부였고,
동양 젊은 남자가 그곳에 있다는 게 매우 매우 희귀한 일이었다.
뭔가 섞일 수 없는 느낌, 어울리지 않는 존재
오늘은 10년간 다닌 회사에 출근하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날이다.
마지막 날은 오전에 인사 다니고 금방 나올 거라서
어찌 보면 근무시간 8시간을 채우는 마지막 출근일이다.
출근길에 모두가 각자의 회사로 향한다.
나도 회사로 가고 있지만 이 회사는 더 이상 내 회사가 아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보여도
나만 속으로 느끼는 그 무언가가 있다.
소속감이 없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외로움
거의 한 달간 매일 점심과 저녁약속을 잡아
10년 된 회사생활로 맺어진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인사할 사람보다 인사한 사람이 많아지더니
어느새 오늘 저녁 자리를 마지막으로
내가 인사하기로 했거나 인사드려야 할 사람들을 모두 한 번씩 만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인사할 사람이 없네.. 왜 더 없지? (물론 찾으면 더 있겠지만)
왜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지? 이제 진짜 끝인가?
하는 생각이 점점 커져간다.
이별통보 거창하게 할 땐 언제고
갑자기 마지막에 미련이 남아서는
이제 가면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말하는 상대방에게
제발 붙잡아 달라고 애원하는 심정인가 싶다.
사실 이별통보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의 선택을 번복하진 않을 것 같다.
다만 헤어질 결심을 한 것과 헤어지는 것에는
큰 괴리가 있구나를 깨닫는 과정이 생각보다 더 고통스럽다.
연초라 동료들은 매우 분주히 본인들의 과업을 세팅하고
의욕에 찬 모습 속에서
상대적 고독을 느끼며 투명인간이 되어 숨만 쉬고 하루를 보낸다.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지만,
지금 이 감정은 이때만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감내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오늘 마지막 감사와 작별인사를 메일로 작성하고
회사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에게 전송버튼을 누르고 나면
정말로 마지막 마무리를 짓게 된다.
첫 사회생활이 10년이나 지속되어 5개의 부서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회사에 작게나마 기여했던 소중한 추억들.
그리고 그 추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사물함 속 물건들을
매일 조금씩 백팩에 담아 나르다 보니 이젠 더 이상 옮길 물건이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회사 근처로 올 일이 사라지고
한 번도 출근해 본 적 없는 지역으로 생활반경이 바뀌게 되면
마치 대학교 캠퍼스에 오랜만에 가서 나의 20대를 회상하듯
문득 광화문 광장을 지나다 나의 30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헤어지기 직전까지 꾹꾹 눌러 담는 나의 10년
다시 추억하고 회상하기에 좋은 기억들만 담아
홀가분히 떠나려고 했는데,
그리 홀가분하지 않음에 놀라고
다시 한번 굳게 헤어질 결심을 해본다.
제가 그렇게 나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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