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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어주는 남자 Sep 17. 2015

스카페이스

책 읽어주는 남자의 '내 인생 최고의 영화 시리즈'



1932년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



 

Scarface는 원래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 시대, 얼굴에 상처가 있던 악명 높은 갱 두목 알 카포네를 지칭하는 단어였습니다. ‘언터쳐블’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열연했던 바로 그 배역이기도 합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스카페이스는 1932년 하워드 혹스에 의해 만들어진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이전 작품과는 다른 주인공의 태생을 배경으로 리메이크 작은 새롭게 태어납니다.미국의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차용하고 더 나아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민자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 지니고 있는 모순과 허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인 ‘스카페이스’가 갖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외부인이라는 요소와 함께 알 파치노가 열연하고 있는 역 ‘토니 몬타나’라는 인물이 거쳐 온 삶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어떠한 미래가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그 배경이 쿠바가 아닌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조차 그의 얼굴의 상처는 낙인처럼,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흔적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부각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부’ 이후 10여년 만에 알 파치노가 다시 갱으로 분했는데 ‘대부’의 마이클 꼴레오네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캐릭터입니다. 냉혹하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스카페이스’의 토니는 ‘대부’의 마이클에 비해 훨씬 격정적입니다. 그에 반해 마이클은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격정적이던 ‘스카페이스’의 토니가 있다면, 드 팔마의 또 다른 작품 ‘칼리토’ 는 그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야망과 격정 속에서 스스로의 무덤을 팠던 토니와 달리 칼리토는 출소 후 소박한 꿈을 실현하고 싶어 했는데 세월은 그 누구도 속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와 드 팔머의 작품인 ‘스카페이스’, ‘칼리토’. 더 나아가 조직의 넘버3이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마피아 레프티를 열연한 또 다른 알 파치노의 작품 ‘도니 브래스코’까지, 마치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이 작품들을 비교하면서 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주 초기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는 토니 몬타나



 

1980년 5월,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의 마리엘 항을 개방하면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쿠바 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을 합니다. 당시의 쿠바인들의 이주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 상봉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카스트로 체제에서 오히려 방해만 된다고 생각했었던 죄수들을 미국으로 떨구기 위한 추방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범죄자 혹은 反카스트로 지지자들 중에 알 파치노가 분한 토니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추방된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 조차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방인의 자리에 놓여 있는 토니의 모습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느 사회에도 속하지 못한 외부인의 처지와 그로부터 생겨나는 소외의 무게를 감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승하기 위한 토니의 처절한 몸부림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입국 심사가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따가운 심사관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정치범이라고 외치는 토니. 기회의 땅 미국이라는 나라에 오게 된 토니는 심사과정에서부터 외부인 혹은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자유는 이러한 낙인으로 인해 존재할 수조차 없습니다. 와중에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며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자리에 있던 누구보다 위험인물이 토니 스스로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의 자유는 멀게 보이기만 합니다.앵글은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토니를 다른 인물과 동일한 위치가 아닌 그 사람들의 틈새에 놓여 관찰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니에게 하는 질문과 상관없이 그들은 토니의 외관상 보여지는 얼굴의 흉터와 문신으로만 그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토니가 아무리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해도 그의 과거는 흔적처럼 따라오며, 그의 새로운 시작은 여전히 범죄자라는 낙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목적을 위해서 같이 망명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사선을 빠져나오는 모습, 빠른 성장을 위해 욕망을 표출하는 모습 등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이 다분한 토니의 역은 사실 꼭 알 파치노가 아니어도 더 어울리는 배우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젊은 배우인 포레스트 휘테커나 사무엘 잭슨이 어울릴 법도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한창 반항적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에드워드 노튼이나 제이미 폭스가 더 쿠바 망명인 같은 모습으로 어울릴 듯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욕망은 격정에 이르기 시작합니다. 보스의 애인인 엘비라(미셸 파이퍼 분)에게 노골적으로 추근대고, 보스인 로페즈와 사업 진행에서 마찰을 보이다 급기야 독단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이제부터가 바로 알 파치노 타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스인 로페즈와 사이가 벌어진 뒤 클럽 바빌론에서 혼자 멍하니 술을 마시는 장면부터의 연기는 가히 압권입니다. 암살로부터의 탈출과 복수, 원하던 것들을 이루고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허무감과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심리 상태가 그의 표정 연기에 하나하나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로페즈를 죽인 후 엘비라를 기다리며, 영화의 역설적인 슬로건처럼 느껴지는 ‘The World is Yours.'라는 문구가 흘러나오는 비행선을 교차하는 만감으로 바라보는 연기 또한 압도적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아메리칸 드림, 그것의 서사는 그의 얼굴에 난 상처가 상징하는 폭력을 통해서 전개가 됩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방인으로서의 토니 몬타나가 자본주의 체제의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기회와 돈,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은 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혹은 범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꿈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결국 다른 삶으로 향하는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과거의 흔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범죄자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행동이 전부 자발적인 행동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방인이라는 떼어낼 수 없는 흔적의 조각, 그로인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버리지 않는 그곳. 낯선 곳에서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갱 영화의 일반적인 주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스카페이스 역시 그러합니다. 그럼 왜 이런 자본주의 비판을 그리고 있는 영화들은 항상 파멸이란 주제가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론’을 아십니까? 그 책이 대충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시기에 나왔는지 대충은 알아도 실제 완역본 6권에 달하는 그 책을 읽으신 분은 많이 계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엥겔스의 연구 대부분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책 안에 녹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 졌기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그들이 주장했던 ‘공황론’을 얘기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사이클이 존재하듯 무분별한 소비생활을 거쳐서 불황, 또 공황으로 가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새무얼 랭혼 클레맨스라는 사람을 아시는지요?

바로 풍자와 해학의 아버지이자 허클베리 핀, 톰소여의 모험, 왕자와 거지라는 작품을 보유한 작가, 필명으로 더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의 본명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남북전쟁 시기 이후, 미국의 40년의 세월을 Robber Barron. 즉, 노상강도 귀족이 날뛰던 호황시대라고 비꼬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노상강도란 오늘날의 환율로 환산하면 사망 당시 자산이 260조원에 달했던 석유왕 ‘록펠러’, 해운업과 철도사업의 제왕 ‘밴더빌트’, 금융업자이자 예술품 수집광인 ‘앤드류 멜론’, J.P 모건 그룹의 ‘존 피어폰 모건’, 철강왕인 ‘앤드류 카네기’, 철도업계 거물이자 미국의 주요 산업부문을 장악하고 있던 ‘E.H 해리먼’, 모피산업과 부동산업을 쥐고 흔들던 ‘존 제이콥 에스터’, 철강업계의 대부 ‘헨리 클레이 프릭’, 금융산업을 이끌던 ‘굴드’, 스탠포드 대학의 설립자 ‘리랜드 스탠포드’, 총포상과 철도산업, 건설업을 운영하던 ‘콜리스 헌팅턴’, 철도 산업의 ‘Big Four’ 였던 찰스 크로커와 에드윈 크로커, 침대차를 개발하고 역시나 철도 산업에 뛰어들었던 ‘조지 풀먼’입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금전욕은 항상 존재해 왔지만 세계사에서 자네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처럼 광적인 경우는 없었을 걸.”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불황이 왔고 또 1920년대의 흥청망청 시기를 지나 대공황을 겪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1987년 주가 대폭락, 2008년 금융위기로 되풀이 됐습니다.




 

스카페이스의 주제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장면은 무엇일까요?

바로 위의 얘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돈다발을 끝없이 들고 은행으로 들어가는 장면, 행장과의 이자 문제를 놓고 벌이는 파워게임, 밤새 돈을 세다가 세관에게 적발되는 장면, 그리고 토니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산처럼 쌓여있는 코카인을 들이마실 때 얼굴이 범벅이 되는 장면까지. 씬 하나 하나에서 상징하는 이 영화의 주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과잉’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한 단어로 이 영화의 주제를 표현함과 동시에 그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원색의 남발은 화려함으로, 표현상의 과도한 잔인함 역시 이 영화를 헤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스타일을 단단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숱한 리얼리티의 파괴는 그 자체가 과잉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왜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표현하는 것인가에 대해선 감독의 의도를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의 가치관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표현으로 인한 사회변화는 불가능하며 희망은 불가능하고 작품을 통해서 남겨진 붕괴와 파멸을 최대한 즐기는 것, 아마도 이렇게 그의 작품세계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인간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염세주의.

그의 작품세계는 그렇게 형식과 스타일의 디테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감독의 작품을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 대부분에서 붉은 카페트와 계단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터처블에서의 슬로우 장면, 칼리토에서의 어두운 원색의 남발, 미션 임파서블에서의 스타일, 스네이크 아이즈에서의 화려한 바이올렛의 향연, 최근 작인 ‘패션, 위험한 열정’에서 까지 그의 고집스런 스타일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의 뉴욕영화 학교 출신 동기생 감독들인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을 때, 브라이언 드 팔마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선정적인 B급 영화만 활동의 무대로 삼아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야 겨우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스타일의 확고함이 두드러지는지 알 수 있으며, 세월의 특징을 알 수 없는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시각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접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꾀나 박력넘치는 장면들이 즐비한데 마치 ‘폭력의 피카소’라 불리는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를 떠올릴 법한 강렬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혹은 떠나 보내고 카페인 흥건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무리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연기는 알 파치노가 가진 연기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초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지키지 못했던 스스로의 당혹감과 좌절, 회한이 뒤섞인 분노의 캐릭터를 보여주게 됩니다.


또한 젊은 날의 미셸 파이퍼를 볼 수 있다는 점. 쉴 새 없이 담배, 술, 코카인을 하지만 변하지 않는 도도함은 결코 토니에게 어울리지 않은 삶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키워드로 존재하며, 극중에서는 끝없는 고혹적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궁중악사 살리에르로 열연한 F. 머레이 아브라함의 연기도 접할 수 있습니다.



엘비라 역의 '미셸 파이퍼'



 

뉴 웨이브와 디스코가 울려 퍼지는 해안도시 마이애미에서 벌어지는 쿠바 출신 촌놈의 야망과 좌절이 흥건한 피 잔치 속에서 그려지는 ‘스카페이스’

낙인의 흔적을 안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외부인의 삶의 여정을 보여주며, 결국 그가 맞게 되는 멀어져만 가는 꿈의 흔적과 고립, 외로움, 결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한 개인에 초첨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의 자유가 위선적이며 허구에 가득찬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부정을 저지르며 영위해온 마약 사업을 통해 우회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고도성장의 단면 속에서 수없이 부각되어온 부정적인 모습들. 그 시대를 그리고 표현했던 감독들 누구나 그러했듯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역설적으로 응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시대극을 보면서 늘 생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고도성장을 기반으로 해서 빠르게 성장해오면서 수많은 진통을 겪었음을 말입니다. 추론이 아닌 사실적 근거를 기반으로 해도 너무나 많은 부정들이 저질러진 우리의 역사입니다. 헌번 전문에도 나와 있듯 이승만의 연임을 위한 헌번 개정, 사사오입,박정희를 통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 정수를 1/3 선출하도록 했던 헌법 개정, 전두환의 대통령 7년 임기제,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얼마 전 저도 끌려갔다온 적이 있었는데 전혀 불법집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탄압을 겪으면서 여전히 갈길이 멀었음을 느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역사적 사실들을 접하고 알아가게 되면서 느끼는 것, 그로 인한 갈증은 너무나도 많지만 제가 이 글에서 드리고 싶은 얘기는 그저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한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통렬하게 잘못된 것은 지적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위에도 말씀드렸듯이 전반적인 흐름과 각 영화들이 상징하는 바가 조금씩은 다르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 대부, 스카페이스, 칼리토, 도니 브래스코를 통해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말씀드리면 로버트 드 니로의 작품들인 좋은 친구들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도 곁들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케빈 코스트너의 매끈한 젊은 날을 감상할 수 있으며 역시나 드 니로가 열연한,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알 카포네의 이야기 ‘언터쳐블’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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