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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근 Mar 16. 2020

악기 편력

베이스로 돌아오다

어려서 피아노 치기를 싫어했었다.

지금 와서는 그때 좀 열심히 쳐놓을걸 하는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또 돌아가 본들 그렇게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고학년 때까지 피아노 학원에 다녔으니 피아노를 친 기간은 햇수로 5~6년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여전히 인생의 미스터리다. 아마도 평일 주 3회 이상 한 시간씩은 학원에 다녔던 것으로 기억하는바, 그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가 학원에서 무슨 짓을 했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피아노 학원에는 소년 챔프와 보물섬 같은 만화책들이 많아서 항상 만화를 보곤 했었다. 하지만 합판으로 둘러친 작은 개인연습실 안에는 만화책을 들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연습 시간에는 연습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 방 안에는 오직 거대한 피아노 한 대 만이 자리 잡고 있었고, 다른 물건은 입장이 불가하며 악보와 나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님이 열 번 쳐오라고 동그라미를 열 개 그려주시면, 나는 삼자가 외로이 자리를 잡고 있는 방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한두 번 쳐보고는 곧장 연습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그마한 창문 밖의 시계를 한참을 빼꼼 거리면서 살펴보며 제 때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임박하면 조금 더 치는 척하다, 누가 보는 사람은 없는지 힐끔거리며 동그라미들에 작대기를 그려 넣고 재빨리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기억의 언저리를 되짚어 보건대, 그 시간에 난 아마도 피아노 학원생들의 레퍼토리 1번인 젓가락 행진곡을 간혹 쳤던 것 같고(간혹이 확실하다. 연습 시간을 젓가락 행진곡으로 채웠다면 나는 젓가락 행진곡의 달인이 되었어야 마땅할 테니), 때로 멍하니 앉아 코딱지를 열심히 파며 콧 속을 탐험했고, 아니면 피아노 건반 뚜껑을 덮었다 다시 들어 올리기도 하고(대체 왜?), 발도 잘 닿지 않던 페달을 밟았다 뗐다 하면서 장난을 치거나, 의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 안에 뭐가 들었나 살펴보고, 까맣게 광택이 반질반질한 피아노 표면을 앞서 설명한 그 손가락들로 문질러보기도 하고(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뛰어나와 선생님을 찾았던 아이가 기억에 있는 걸 보니 코파기라는 행위는 비단 나만의 소행은 아니었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정말 극한직업이다.), 영창이니 삼익이니 그때는 잘 몰랐던 영문으로 적혀 있는 피아노 상표의 글자들을 한참 노려도 봤던 것 같다. 그 억겁의 시간들은 희미하여 도저히 정체를 분명히 밝힐 수 없는 행동들로 채워져서 흔적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 결과 나는 당시에도 피아노를 잘 못 쳤고, 지금도 못 친다.

나는 왜 피아노에 흥미가 없었을까? 조성진은 바이올린을 배우러 갔다가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고 피아노를 치면서 적성을 찾았다고 하고, 정경화는 반대로 형제들과 함께 처음에 피아노를 배우다가 바이올린을 접하게 된 뒤 바이올린이야말로 내 악기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낯짝이 살짝 간질간질 뻔뻔하지만 결국 조성진과 정경화도 나와 음악적으로 공통점이 있다. 음악의 천재들을 보더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악기가 있으며, 그러니 내가 왜 특별히 피아노를 더 적극적으로 싫어했는지 머리를 쥐어짜서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난 피아노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구조상 건반을 두드리면 내부의 장치가 작동하여 양털로 된 망치가 현을 때리면서 소리가 나게 된다. 이게 무슨 복잡한 구조람? 건반을 눌러야 소리가 나는 상황이 마뜩지 않았다. 악기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기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마치 파일럿이 계기판을 만지고, 타자를 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처럼. 악기와 스스로의 몸이 함께 느끼는 일체감은 연약했고, 마리오네트를 멀리서 조종하는 듯한 원격 연주가 더 적절했다. 더군다나 피아노는 무겁고 멀리 있다. 피아노 앞까지 가서 앉아야 한다는 게,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연습할 수 없다는 것도 답답했다. 내가 피아노에게 맞춰 줘야 한다. 그래서 재미가 없었다(물론 그냥 구구절절이 다 변명이다).


그래, 피아노는 그렇게 오래전에 떠나갔고.

재작년부터 약 1년 4개월 남짓 클래식 기타 레슨을 받았다. 일렉 기타는 대학 때 밴드를 하면서 많이 봐와서 식상했었고, 기타로 정교하게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성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재미는 있었다. 기타는 확실히 피아노에 비해서 연주한다는 느낌이 난다. 소리의 떨림이 기타 바디의 울림통을 통해 가슴과 배에 그대로 전달되기도 하고, 현의 움직임과 진동 또한 손끝에서 아주 민감하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장비 없이 기타를 품에 안는 것만으로도 쉽게 연주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가볍다. 무게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 좋았느냐? 그건 전혀 아니다. 클래식 기타를 치다 보니 내가 어떤 악기와 연습을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일단 나는 현악기를 좋아한다. 피아노가 별로인 이유는 앞서 설명했고, 관악기는 호흡을 쓰는 게 힘들뿐더러 침을 묻히는 것도 싫고 일단 소리가 매우 커서 집에서 연습하기도 불가능하며 고음으로 갈 때 삑삑거리는 소리도 내 귀에는 거슬린다. 반면에 현악기야말로 악기를 다루고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면서 현의 떨림이 주는 음색과 마찰의 감각 또한 마음에 든다. 다만 클래식 악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박자다. 클래식 악기, 특히 클래식 기타처럼 솔로 악기들은 박자에 대해 실용음악에 비해 좀 더 관대한 경향이 있다.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곡의 뉘앙스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지니 박자 또한 유연하고 덜 엄격한 편이다(박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의도에 따라 박자가 완전히 엿가락 같아지기도 하고, 조금 밀리거나 빨리 들어가기도 한다.

이 점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연습들은 메트로놈 틀어놓고 정확한 타이밍에 연습하는 타임키핑 스타일의 것들이란 걸 깨달았다. 비프음에 맞춰서 박자를 쪼개기도, 합치기도, 비틀기도 하는 연습들. 겉으로 보기에 아주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박자감을 단련하기 위해서 꾸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연습들. 반복적이면서 듣기에 지루하고 장시간의 스태미나가 요구되는 것들. 기타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보다는 악기와 함께 좀 더 리듬을 타고 싶어 하고, 그루브를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치는 현의 떨림이 손끝과 온몸으로 전달되는 순간을 받아들이면서 함께 어깨춤이 추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연주보다는 조작과 조종의 범주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근질근질하다. 리듬의 뼈대를 세우면서 노래를 흔들고 또 같이 흔들리는 것을 원한다고, 다른 악기들이 뛰어노는 판을 깔아주면서 박자의 중심에 몸을 그대로 실어보고 싶다고, 몸이 말하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베이스를 다시 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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